[에세이] 사랑은 건강에 좋다 [사(私)랑에 대하여]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버팀목은 결국 사랑이 아닐까
글 입력 2024.08.0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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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사사로울 사)랑에 대하여'



 

필자의 첫 에세이자 총 6편으로 구성될 예정인 <私랑에 대하여>는 크고 작은, 다양한 사랑에 관련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스스로 잃어버린 사랑 감도를 찾기 위한 여정이자, 사랑에 관한 저의 고민을 나누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싶은 바람이 담긴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타자를 치는 기분이 생경할 정도로, 노트북 앞에 제대로 앉아 있었던 것이 오래 전 일이네요. 글력은 근력과 비슷하다는 말이 있죠. 자주 써야 더 나아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판을 두드리지 못했습니다. 생각은 많았으나 정제된 언어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제쯤이면 쓰는 게 익숙해질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어렵사리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이야기들을 꺼낼 타이밍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글감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서요.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몇 번이고 이어가고자 시도해 보았으나, 지난한 삶 속에서 자주 사랑을 잃고 살았습니다. 그것들을 끄집어 내어 적을 수 없었던 것이 2년 만에 해당 시리즈로 돌아온 이유입니다.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는 말일지라도 이 사실을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거짓된 마음으로 쓰는 글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사랑을 자주 잃었다는 말은 꾸준히 사랑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더군요. 오히려 푹 빠져있는 순간은 그것에 매몰되어 사유할 시간이 부족해 글로 변환할 틈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이제라도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시리즈를 재개할 수 있었던 건, 여전히 제 삶의 중심이 사랑이라는 점을 대변하는 것이겠지요. 이전과 마찬가지로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사랑에 대해 잔뜩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세 번째 에세이, 시작하겠습니다.

 

 

 

ep. 3 : 사랑이 건강에 좋은 이유



에세이 3화.png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노희경 작가의 책 제목처럼,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사랑이 아닐까요? 사랑은 언제나 인류에게 중요한 양분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며, 성인이 되어서는 어렸을 적 받은 사랑을 나누고 또 다른 이들에게 받으며 살죠. 제 삶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요한 양분이었으며, 늘 중요 아젠다였죠. 사랑을 빼놓고는 지금까지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니까요.

 

최근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늘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서도, 지금껏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란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저 남들보다 자잘한 정이 좀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죠. 그래서 이번 기회에 깊게 파헤쳐 보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어릴 때 호기심이 많던 저는 새로운 세계에 발 들이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여기저기 기웃대며 읽고, 보고, 만지며 세계의 경계를 점차 넓혔죠. 그런 제게 세상은 늘상 재밌는 곳이었습니다. 알면 알수록 두근대고 기다려지는 것들 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면들만 봤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주변 친구들로부터 ‘별 걸 다 안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것이 듣기 좋았습니다. 일종의 잡지같은 사람 포지셨이었죠. 그저 좋아해서 자연스레 알게된 것들이 많아졌는데 좋게 봐주니 신이 날 수밖에요. 그렇게 저는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재밌게 마주했을 것만 같은 제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랑하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아픈 순간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남들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알게 된 것입니다. 이건 제 성향과도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원체 정이 많아, 만난 사람들 모두에게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대하기 일쑤였거든요. 아무튼 좋아하는 것을 더 이상 향유하지 못할 때, 좋아하는 것이 사라질 때, 좋아하기 때문에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어느 순간 모종의 이유들로 멀어질 때,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아픔의 시간을 꼭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늘 많던 어린 시절, 숱한 이별의 시간을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아프고 괴로웠지만,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왜냐면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법,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강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그래서 사랑이 왜 건강에 좋은데?” 하고 물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해보겠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그리 건강한 사람은 못됩니다. 십 수 년 간 슬픔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원래부터 우울이 기본값인 사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것에서 벗어나려 꾸준하게 그 반대에 있는 사랑을 외쳐왔기에 지금껏 살아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이것은 제가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란 이유일 겁니다. 사랑은 나약하고 슬픔에 축축하게 젖어있던 저를 지탱해준 삶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사랑이 건강에 좋다고 이야기할 수밖에요.

 

철학자 스피노자는 자신에게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사랑이라 말합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은 분명한 것이기를 원하고 “사랑은 외부 원인에 대한 관념에 수반하는 기쁨.”이기에 그것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p. 25,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발타자르 토마스) 우리가 사랑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힘을 실어주는 이야기이지요?

 

그의 사상을 통해 알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대상 혹은 순간이 생긴다는 것은 삶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한 번 쯤은 겪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취미 생활을 가지라고 하는 것도, 사랑의 중요성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꼭 연애 뿐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의 덕질을 하거나 운동 같은 활동이 주는 기쁨은 크니까요.

 

제가 느끼기에 사랑한다는 것은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몰입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헝가리 출신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이란 개인이 활동에 완전히 빠져 환경이나 잡념에서 벗어나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는 경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몰입은 활동 자체가 주는 보상만으로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상태는 창의력, 성취감, 자아 강화 등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사랑과 닮은 점이 많지 않나요?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는 대부분 대가 없이도 지속 가능하다는 점에서요.

 

다시 사랑 이야기로 돌아가 덕질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주중에 열심히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 근무를 하거나 학업에 열중하고서 하루 일과가 끝난 후 혹은 주말에 좋아하는 사람과 연관된 영상을 찾아 보거나 공연에 가는 등의 시간을 생각해 봅시다. 피곤하지만 이 활동으로 인해, 고단했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순간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운동은 또 어떠한가요.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키우기 위함도 있겠지만, 더 크게 보자면 결국 생산적이고 건강하며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운동에 몰입하다 보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발산되는 걸 느낄 수 있죠. 또한 몸을 단련하다 보면, 정신도 함께 건강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다르게 말하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은 꼭 해야 합니다. 바로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 다름 아닌 정신 건강이기 때문이죠. 정신이 온전해야 뭐든 할 여력이 되니까요.

 

그렇기에 운동을 한다는 것은 곧 마음의 힘을 기르겠다는 것과 동의어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음의 힘을 기르고자 노력하는 건 삶을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행위죠. 마음이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면, 해야 할 업무나 자신을 가꾸는 일 등 모든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런 순간이 반복되며 원래있던 무기력함이 심화되고 동시에 좌절감을 자주 느꼈습니다. 무언가에 몰입할 여유 또한 없었죠. 무거운 짐이 가득 찬 마음에 무얼 채울 수 있을까요. 힘듦을 비워낸 빈 자리에 비로소 즐거움이든 행복이든 자리할 수 있지요.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줄 여유조차 없는 마음으로 남을 어떻게 안겠어요. 그렇기에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정신과 태도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어서 사랑은 하면 할수록 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마음은 대체 뭐길래 이토록 우릴 생동감 넘치게 만들까요? 사랑은 대체 어떤 힘을 갖고 있길래, 지치고 힘든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 움직이며 기운을 차리고자 애쓰게 만드는 걸까요? 지금부터는 영화 속 인물을 살펴 보며, 사랑이 주는 힘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우진.png

 

 

사랑은 건강에 좋다는 제목의 글을 쓰기로 한 이상, 이 영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인데요. 해당 작품은 한 남자의 복수 여정을 그린 액션 영화입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주인공 오대수가 오랜 시간 감금이 되었다 풀려난 후, 자신에게 고통의 시간을 안긴 가해자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인데요. 이번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건 주인공과 대립 구도에 있는 이우진이라는 인물입니다.

 

우진에게는 처절하게 지키고픈, 아름답고 빛나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과는 애초에 이루어져서는 안 될 운명이었지만 둘은 뜨겁게 사랑한 사이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서로를 아꼈죠. 하지만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그 사랑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됩니다. 사랑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던 간에, 그것을 잃은 자는 언제나 견디기 힘든 슬픔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우진은 어긋난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됩니다. 소중한 것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린, 사건의 원흉을 찾아서 똑같은 아픔을 되갚아 주겠노라 다짐하죠. 그리하여 치밀하게 구상한 것을 살벌하게 실천합니다.


그렇게 우진은 사건의 시발점이 된 인물을 찾아서 사설 감옥에 그를 가둡니다. 먼 옛날 우진이 아무런 예고 없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녀를 떠나 보내야만 했던 것처럼, 대수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은 상태로 비좁은 방 안에서 매일 같은 음식을 던져주며 오랜 시간을 지내게 합니다. 그리고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어떤 날에 갑작스레 오대수를 풀어줍니다. 그렇게 대수는 오랜만에 현실로 돌아 오는데요. 하지만 실상은 감옥보다도 더 한 곳에 내던져진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우진이 촘촘히 짜둔 시나리오 안의 등장인물이 되고 말죠. 대수는 우진이 그랬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하게 되고 이후 그것을 지키고자 온갖 노력을 하게 됩니다.

 

영화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두고, 지금부터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앞서 우리는 영화 속 인물을 통해 사랑이 주는 힘을 생각해 보고자 했습니다. 우진을 통해 제가 짚어 보고 싶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진은 대체 무얼 위해 복수하는가?”,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던 이들에게 똑같은 형벌을 살게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진의 행동은 과연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할 것인가?”. 그리고 “진정한, 성숙한 사랑의 힘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원하는 방식은 과연 어떤 것인가?”

 

자, 우선 우진의 이야기에 주목해 봅시다. 사랑을 잃은 이후부터, 온통 증오와 분노에 휩싸여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것만 바라보며 달려온 삶이라는 것을 세세한 부연 설명 없이도 관객들은 잘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어느 미치광이가 15년 동안이나 매일 같은 메뉴를 복수하고자 하는 인물에게 제공하면서 감금하겠어요? 이러한 설정만으로도 우진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또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사랑의 힘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영화 중반, 우진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삶에 동기를 주어 열정적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건강에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수심은 부정적인 마음 아니겠어요? 부정적인 것이 건강에 좋을리가요. 무언가를 애정하는 편이 몸에 긍정적이니 훨씬 좋을 것입니다. 또 애정을 쏟는 것이 단 하나라도 없으면 사는 게 다 무의미하고 가치 없어지기 마련인데, 우진은 모든 에너지를 복수에 쏟고 있었기에 그것들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어 허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 겁니다. 허나 복수 이후엔? 이건 우진 스스로 아주 잘 증명했습니다.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는 말 이후의 대사인 “복수가 다 이루어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잊고 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 걸?”, 그리고 우진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요. 그토록 원하던 목적을 이루고서도 끝내 공허한 눈빛으로 스스로 머리에 총을 겨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우진의 마지막 장면이거든요.

 

이렇게 떠날 거면 우진은 왜 그 긴 시간 괴로운 사건을 되뇌며 복수를 준비했던 걸까요. 똑같은 형벌을 가해자에게 준다고 해서 후련했을까요. 우진의 그녀를 대신해서 되갚은 고통은 과연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맞을까요. 복수심이 정말로 건강에 좋은 거라면, 이렇게 비참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과연 맞은 결말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성숙한 사랑의 결말은 고통까지 모두 끌어 안은 모습입니다. 그래서인지 몇 번을 다시 봐도 우진의 결말에는 공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개인의 삶으로만 보자면 참으로 안쓰럽지만,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그렇게 치졸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되갚으면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어린 시절,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해버렸고 그 사랑은 그에게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우진은 십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복수라는 키워드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랑을 했더라면 복수심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써놓고 보니, 사랑은 양날의 검과도 같은 것이네요. 나쁘게 마음을 먹으면 타오를 듯한 복수심이 되고, 좋게 마음을 먹으면 뜨거운 관심과 애정이 되니까요.

 

*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막 웃음이 나오고 설레고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죠. 생각해 보세요.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이처럼 건강한 도파민을 생성시키는 것 중, 사랑만한 게 또 어디있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음악, 책, 향수와 같은 것들이 있어서 참으로 감사한 순간입니다. 그것들로부터 얻은 작고 소소한 행복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으며, 힘들던 시간을 지날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도록 저를 지탱해주었으니까요.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을 발견했을 때 순간적으로 행복하듯이, 일상 속에서 자주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주었거든요.


어떤 날엔 사랑 때문에 많이 힘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린 언제까지나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곧 의미를 잊어버리고 산다는 뜻이고, 의미 없는 나날들은 결국 일상의 황폐화를 가져올 테니까요. 또한 우진처럼 나쁜 마음을 먹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앞서 본대로, 분노는 더 큰 절망을 불러올 뿐이니까요.

 

사랑을 해본 적 있는 이라면 무척이나 좋아했던 대상이 갑작스레 사라졌을 때의 허망함을 아시겠지요. 이제는 더이상 볼 수도, 만질수도 없는 대상이 이따금 생각 날 때면 가슴 한 켠이 아려옵니다. 그러나 일상의 시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철저히 홀로, 고독하게 그 감정을 추스려야만 합니다. 사랑이 없어져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것을 사랑하는 편이 건강에 좋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제가 많은 것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를 잃어도 나머지 것들이 있으므로 인해 버틸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언젠가부터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건강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기꺼이 품고 즐길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체력은 곧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 나오는 것이니까요. 또한 좋아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삶을 더욱 열심히 굴릴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오래오래 향유하고 싶은 욕심때문에, 지속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게 되더라고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전과 같이 사랑을 줍고 나눕니다. 한 번도 잃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구는 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바보같이 보일지언정, 계속해서 저는 이러한 형태의 삶을 살겠지요. 아무튼, 사랑은 건강에 좋다는 것,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버팀목이 사랑이라는 것이 이번 화의 결론입니다. 다들 자주 더 많이 사랑을 주고 받는 삶을 살기를 바라요. 모두들 사랑하세요, 건강한 삶을 위해! 더 자주 행복한 나날을 위해! 더 깊이있는 자신을 위해!

 

 

 

윤화 전문필진.PNG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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