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모임] 나의 2024년 상반기를 채워준 전시의 순간들

글 입력 2024.07.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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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스스로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영화, 공연, 도서, 강연 등 오프라인으로 행하는 문화 활동엔 빠지는 일이 없는 나지만, 전시만은 예외였다. 종종 친구와 함께, 때로는 혼자서 흥미로운 전시를 보긴 했지만 책, 공연, 영화처럼 내 삶의 일부인 느낌은 아니었다. 오프라인 모임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번에는 좋아하는 거 말고 경험하고 싶은 활동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전시였다.

 

이 모임을 통해 총 세 번의 전시를 봤다. 세 개의 전시는 각각 다른 색깔의 경험을 선물했고, 덕분에 나의 다사다난했던 2024년 상반기가 조금 더 알록달록해질 수 있었다. 그 소중했던 경험을 이 자리를 통해 나누고자 한다.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


 

첫 번째 본 전시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린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 전시였다. 익살스러운 매력이 가득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스티븐 해링턴의 전시로, 그의 페르소나인 ‘멜로’를 그림뿐만 아니라 조형물의 형태로도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은 엄숙함 대신 생기로 가득 찼다. 예술이라고 하면 고상하고 진지한 태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즐기는 마음으로 임하며 대중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예술가들도 많다. 내게는 스티븐 해링턴이 그런 예술가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티븐 해링턴이 여러 기업과 협업한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모습이었달까. 시작은 분명 아주 평범했는데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기업의 본래 이미지가 더해지니 작가와 기업의 통통 튀는 개성이 조화된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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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나는 긴 휴식을 마치고 진로 고민에 방황하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이날 전시는 관람객이 아닌 예술가 지망생의 태도로 보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건 예술가의 삶이었지만 그러기엔 개성과 고집이 부족했고, 현실과 타협하는 삶을 택하기엔 자아를 절제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오로지 글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지금까지 온 나는 그날 전시를 보면서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자신의 색채를 잃지 않는 스티븐 해링턴이 너무나 부러웠다.

 

내게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 전시는 예술가에 대한 전시였다. 그의 페르소나 멜로는 납작한 뮤즈로만 나오지 않고, 자신이 자신을 그리는 창작자로도 나온다. 스티븐 해링턴의 세계에선 뮤즈와 창작자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 본인이 작품의 주제인, 뮤즈와 창작자가 합일된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스티븐 해링턴은 ‘멜로’라는 귀여운 캐릭터를 통해 본인의 솔직한 예술적 고민을 무겁지 않고 밝게 드러냈다. 그 고민에 동참하는 일이 무척 재밌었다. 평생 아마추어로만 여겼던 내게도 예술가의 고민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다음 전시는 5월 말의 비 오는 날에 이뤄졌다. 그라운드 시소 서촌에서 진행된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전시가 그 주인공이었다. 힙노시스(hipgnosis)는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전설적인 록 명반의 LP 커버를 작업한 스튜디오다. 스톰 소거슨과 오브리 파웰로 구성된 이 스튜디오는 당대의 틀을 깨는 실험적인 커버 아트로 크게 주목받았다.

 

내게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는 복습 시간과 같았다. 그 전 달에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는 그들의 상징적인 작업물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자세히 설명되었는데, 전시에서는 그렇게 힘들게 만든 작업 결과물이 전시되었다. 말하자면 영화를 통해 과정을 미리 공부하고 전시로 그 결과를 확인한 것이다.

 

피로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을 보면서 찌든 어른의 삶에서 벗어나 10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만끽했다. 고등학생 때 남무성 음악평론가가 연재한 만화 <만화로 듣는 올 댓 록>을 보고 록의 세계에 발을 담갔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또래 친구들이 아이돌 그룹을 좋아할 때 혼자 비틀스와 롤링스톤스, 퀸, 너바나, 데이비드 보위 등을 들었다. 닭장 같은 기숙학교에 지내면서 나만의 세계가 절실했던 그때 록 음악을 들으면 오래전 예술가들과 소통하며 즐겁게 고립될 수 있었다.

 

전시를 보면서 내가 그 음악들을 사랑한 것에 LP 커버의 영향도 적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음악을 시각화한 그들 덕분에 그 뛰어난 음악들을 시각적인 이미지와 함께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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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기억에 남는 LP 커버는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들이었다. 다른 록 밴드의 경우 음악이 기억에 남는데, 핑크 플로이드의 경우 LP 커버가 너무 예술적이어서 이미지가 강렬하게 각인된 밴드였다. 영화를 통해 어떻게 핑크 플로이드와 만났고, 어떻게 그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는지 이해하고, 전시를 통해 그 결과물을 확인하며 몇십 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예술의 아우라를 느꼈다.

 

이날 전시를 본 뒤 핑크 플로이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과연 힙노시스의 창작물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구현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Rock Will Never Die. 내 안의 록은 1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


 

마지막 전시는 소마미술관에서 진행된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다. 화창한 여름날 올림픽공원을 가로지르며 전시장을 향하는 순간부터 이미 내 마음은 들떠있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본 전시는 내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혔다.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는 9명의 화가가 그린 그림과 그에 대한 2명의 철학자의 해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철학에 큰 관심을 보인 나로서는 철학과 결합된 전시라니,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철학과 그림이 어떻게 전시장에서 조화를 이룰까 궁금한 마음으로 전시를 봤는데, 해설자의 인터뷰 영상이 그 핵심이었다. 압도적인 아우라를 자랑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보다 마주친 철학자들의 영상은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할 시간을 마련했다.

 

두 철학자는 입을 모아 ‘예술가와 철학자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철학자는 자신의 사상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고,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결과물의 형태가 다를 뿐, 본인의 내면을 밖으로 표출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최근 나는 철학 공부를 전보다 소홀히 했다. 현실적인 문제는 턱 끝까지 차올라 나를 압박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정복할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같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먹고 사느라 생각할 여유를 잃은 것이다. 철학자들의 말에 귀 기울인 20여 분의 시간 동안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평온해지고, 오랜만에 적극적으로 사유하며 머리가 단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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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의 말을 듣고 난 뒤 그림을 감상하니 더욱 진지한 태도로 관람에 임하게 되었다. 이 전시에서 특별히 좋았던 점은 기본 4-50년 동안 활동하신 연륜 있는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었다는 점이다. 감히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그림 한 점 한 점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 압박감에 압도되며 그들이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본인의 삶과 내면을 이 캔버스에 토해냈는지 생각했다.

 

일찍이 예술과 철학을 결합하고 싶은 욕구를 품고 있었다. 철학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유효한 삶의 문제를 논하는데, 권위 있는 지식인만 향유할 수 있다는 인식을 타파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많은 이의 삶에 스며든 예술이 효과적인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전시를 보면서 생각을 고쳤다. 예술과 철학은 처음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난 예술을 즐기는 모든 순간에 나만의 방식으로 철학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

 

모임의 주된 목적인 전시도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전시 관람을 마치고 카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무척 소중했다.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며 전시를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서로의 고민에 공감하며 위로받기도 했다. 바쁜 일정으로 긴 시간 함께하진 못했지만, 무척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눈 덕에 큰 아쉬움은 없었다. 이런 대화의 순간들 덕분에 2024년 상반기를 끝내는 나의 마음도 크게 아쉽지 않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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