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모임] 삽질하는 사람들

글 입력 2024.07.0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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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나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큰 소녀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상처를 주고받아야 함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타인과 다른 의견을 냄으로써 굳이 미움을 받거나 상처를 주게 되는 과정이 늘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나에게 늘 강한 개성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떤 담론의 장이 펼쳐졌을 때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들은 날에는 (앞에서는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 “대체 왜?”를 수십 번 외치며 그것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수집하고, 더불어 그 사람의 입장마저도 이해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어느새... 독서모임 광인이 되어 있었다.


이십 대 초반부터 여러 모임을 전전하며 책을 매개로 누군가와 소통했던 경험은 나를 더 이상 미움이 두렵지 않은 사람으로, 아니 두렵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왔다. 또한 어떤 정치적 논제 앞에서는 나의 슬픔이 줄어들수록 또 다른 누군가의 고통은 심화될 수밖에 없는 삶을 인지하고, 그 역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써버릇 하는 습관도 가져다주었다. 자아의 해상도가 점차 선명해지자 누군가의 공격성 짙은 발언도 포식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부풀리려는 슬픈 짐승의 표효처럼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던 수많은 문학과 예술, 사람들에게 늘 감사했다.


아트인사이트에서 오프라인 전시 모임 소식을 듣고 참여했던 것은 그 이유였다. 예술작품을 해석하는 것엔 개인의 삶이 관여할 수밖에 없기에 예술을 매개로 소통을 하면 그 사람의 삶에 대해 더욱 쉽게 알 수 있고, 그렇기에 그만큼 단도직입적이고 깊이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나 나 자신을 잊고 타자의 세계로 망설임 없이 확장되고 싶었다. 게다가 어떤 모임이 지속되기 위해선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믿었던 모임들도 상대방과 너무 친해서, 체계가 없어서 망했던 모임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아래는 내가 참석했다가 망한 모임들의 특징이다.


<망한(망할) 모임의 특징>

1. 모임의 일원들이 처음부터 친하다.

(ex)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의 지각을 봐주었더니 나중엔 모두가 지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훗날에는 수다 모임으로 변질되었다.)

2. 공통 관심사의 부재 (취향의 교집합이 없어도 너무 없다.)

3. 열정 과다 vs 전 그냥 바람 쐬러 나왔어요... (모임을 이끌어가는 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열정의 비율이 한쪽으로만 쏠려있으면 그 사람이 지치기 마련이다.)


모임이 순조롭게 유지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적당히 어색한 분위기’와 ‘미지의 세계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는 정도의 다름과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는 취향’, ‘비슷비슷한 열정’이 존재하는 듯했다. 마침 그것을 우리 조는 이 조건과 정확히 부합했고, 타인과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눈동자들을 무시하는 법을 도무지 모르는 나는 이들과 최근 관심사와 고민거리들을 나누며 빠르게 가까워졌다.

 

 


같은 전시를 봐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전시를 보는 방식에 있어 정답은 없겠지만, 주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취향을 알게 되는 순간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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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모임 때 우리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린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 전시를 보았다. 높은 층고와 세련된 분위기의 미술관이 쾌적하게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왔다. 스티븐 해링턴은 비비드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일러스트와 조형물로 전시장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전시가 끝난 후, 우리는 함께 전시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사실 감상을 나눈 것은 극히 일부고, 서로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차차! 우리 후기 써야죠. 하며 나눈 이야기들은 아래와 같다. 현장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문장을 다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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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는 전시를 볼 때 특유의 습관?! 감상법이 있다면, 오디오 도슨트나 해설 등을 나중에 보려고 한다는 게 있겠네요. 가끔 도슨트나 해설이 감상자의 해석을 가둔다는 느낌도 받아서, 해설 자체에 대해서 이 부분이 꼭 필요했을까? 생각도 해봐요. 열려 있는 해석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요. 개인적으로 리움의 카텔란전의 도슨트가 저에게는 생각해 볼 지점들을 열어두었다고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전시는 공부하듯이 배경과 작가에 대해서 파악하며 보는 반면 어떤 전시는 작품 자체를 처음 봤을 때 드는 감정 자체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느끼려는 시도도 하는 것 같아요! B 님은요?


B: 일정한 저만의 감상법이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 전시장에서 작품을 볼 때는 작품의 장르적 특성이나 전시 환경, 큐레이팅 같은 걸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전시가 오늘 이곳에서 진행되는 맥락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오늘 본 전시는 대중 친화적인 예술 장르를 통제적인 분위기에서 본 게 좀 모순적이기도 하고 독특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작품이 알록달록하고 캐릭터 위주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정말 많았는데 정작 엄숙한 미술관이 유지되기 위해 아이들이 맘껏 보지는 못하더라고요. 스케이트보드 같은 스트릿 문화를 조용한 대형 미술관에서 본다는 것도 재밌었고.. 여러 가지 모순이 느껴졌는데 그게 나쁘다기보다는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A: 평소 사진전에도 관심이 많다고 하셨잖아요.(A는 B님과 최근 감상한 구본창 사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사진을 볼 때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시나요?


B: 사진 볼 때는 작품마다 다른 것 같아요. 작가와 연결 짓지 않고 딱 작품에만 감탄하면서 감상하기도 하고, 보도 사진 같은 경우는 사회적인 부분을 연결 지으며 보곤 해요. 구본창 사진전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다 보니 그 작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보는 것 같아요 대체로 작가가 이렇게 봐라! 하는 게 있다면 대체로 그것에 초점을 맞춰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영감을 받는 부분은 기록해두기도 해요.


C: 저는 그림이나 클래식처럼 작품에 여백이 많은 예술을 감상할 때 애를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해설에 더 의지하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필요한 배경지식만 알고 나머지 여백은 제 생각대로 채우는 게 좋더라고요. 이전에 본 클래식 공연에서 진행자가 자신만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해 줘서 전시도 제 마음대로 상상력을 더해서 감상하는 편이에요! 이번 전시는 심오한 의미를 파헤치는 것보다 작가의 유쾌한 상상력을 따라가는 게 더 좋다고 느껴져서 편하게 느낌대로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로 전시 공간도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공간이어서 전시라는 게 단순히 작품만 보는 게 아니고 공간도 함께 만끽하는 활동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삽질하는 사람들



여러 전시를 보았으나 마지막에 모임 때 관람한 전시가 가장 취향에 부합했다. 소마 미술관의 개관 20주년 기념 드로잉 특별전인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라는 전시였는데, 오랫동안 예술을 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갖게 된 시니어 예술가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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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 작가의 작품들. 수세미와 손가락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그녀는 영국의 사실주의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그림(Paint)는 고통(Pain)에 T를 붙여주는 것이다."

라는 말을 인용하며 T를 Therapy, 즉 치유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숏폼 콘텐츠의 유행으로 우리는 다양한 정보들의 맥락을 읽지 못하고, 축약해서 소비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돌아보기 어려워진 시대에 예술과 철학은 능동적인 사고를 돕는다.

 

마침 읽던 책에서는 벤야민을 빌려 행복을 찾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우리와 함께 산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숨 쉰 그 공기 안에서만 상상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행복의 표상은 (...) 구원의 표상과 공명한다. (...) 우리의 삶은 역사적 시간 전체를 수축시킬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근육과도 같다. 또 다른 말로 하자면, 역사적 시간에 대한 진정한 개념은 구원의 이미지에  온전히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행복은 하나의 시점에 국한되는 사건이 아니다. 행복은 과거까지 닿아 있는 긴 꼬리를 갖는다." - 『서사의 위기』, 한병철

 

그리고 또 이런 말도.

 

"우리는 과거의 구제를 수행해야 한다. 과거를 현재에 끌어내어 엮고 현재 안으로 계속해서 작용하게  하는, 즉 소생하게 만드는 서사적 장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행복은 구원과 공명한다."

 

과거에 갇혀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을 유독 미련하게 여기는 습성이 있다. 삽질 좀 작작하라는 말은 자기혐오에 절어 있을 때 유독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외침이다. 그러나 과거가 없다면? 현실의 영감이 우연히 다가와도 결코 울림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명하는 순간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서사적 장력이 없으리라는 이야기는 왜인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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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 전시관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 만났다. 안규철 작가의 드로잉 <노 / 삽>이다. 작가는 삽을 우리가 잊고 있는 과거를 발굴해내는 도구이자 땅을 가리키는 화살표로 보았다.

 

벽면에 기대고 있는 물체는 한쪽은 삽으로, 다른 한 쪽은 노로 구성되어 있다. 신나게 삽질해서 과거를 파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삽은 노가 되어 미래로 가고 있을 거라고. 그 삽질이 어느새 너의 패들링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노를 젓다 보면 양 팔 가득 생기는 잔근육이 그 삶을 버티게 해주는 장력이 되어줄지도 모른다고. 무거운 삶을 버티기 위해 벽에 기대어 있는 세 명의 삽들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전시장의 영상으로 만난 이진우 철학자는 draw의 뜻이 '그리다'보다도 '끌어내다'에 가깝다고 역설한다. 무언가를 끌어당긴다는 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 가장 과거와 어울리는 단어다. 쌓인 것들이 있어야 끌어당길 수 있는 것들도 생긴다. 끌어와야 또 나아갈 수 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에디터 분들도, 이곳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를 허투루 날려보내지 않고, 일상에서 마주친 무수히 많은 것들을 글감으로 사용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마주하고 싶어 삽질하는 사람들에게, 그 삽질은 결코 무용하지 않다고, 당신이 끌어낸 과거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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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insdo
    •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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