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달간의 아침 러닝 도전기 [운동/건강]

하루의 영점을 나에게로 맞추는 일
글 입력 2024.07.0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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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그 하루는 무엇이 다를까?


어느 날, 이 질문이 궁금해졌다. 살면서 러닝이 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러닝은 나에게 늘 재미없고 힘든 운동이었다. 단순하게 두 다리를 번갈아 움직이는 행위를 굳이 왜 하나 싶었다. 더군다나 나는 체중 관리나 체력 증진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궁금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토록 러닝에 빠져드는 이유가. 아주 단순한 운동이기에 내가 기피하는 이유가 사실 두려움뿐이라고도 생각했다. 달리면 숨이 차고 버겁다는 두려움. 수많은 지식인이 러닝을 예찬한 이유도 궁금했다.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묘비명에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써달라고 할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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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6월 한 달, 나도 한번 뛰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간대는 아침이면 좋을 것 같았다. 잘 산다는 건 지구의 리듬에 순응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나는 늘 그러지 못했다. 예전에는 새벽에 글을 쓰면 잘 써지는 기분이 든 적도 있지만, 이제는 새벽을 믿지 않는다. 새벽에는 힘이 없다. 해가 뜰 때 일어나고, 해가 질 때 잠들고 싶었다. 아침에 러닝을 하면서 습관처럼 굳어진 생활 패턴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러닝 코스는 바로 집 앞에서 출발했다. 노량진역에서 대방역까지 왕복하는 3km 코스. 첫째 날은 한강을 달리고 싶다는 로망으로 노들섬까지 다녀왔지만, 생각보다 너무 멀고 중간중간 신호등이 많았다. 러닝은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다.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단순하고 일상적이어야 했다. 코스의 장점은 가는 길에 신호등이 없어서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길 뒤쪽으로 1호선 지상철이 다녀서 상가도 없고, 유동 인구가 적었다. 무엇보다 집 밖으로 나와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바로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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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뛰었다. 오전에 일어났고 별일이 없다면 무작정 나갔다. 6월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짧게 스트레칭하고, 잘 가꾸어진 조경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도심 속 작은 자연을 만끽했다. 달리면서 보는 풍경은 걸을 때와는 달랐다. 세상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늘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대방역에 내 두 다리로 10분도 안 돼서 도착했다. 넓디넓은 세상이 전보다 나의 것이 되는 기분이었다.


러닝화도 하나 구매했다. 그냥 달리는 데 장비가 중요한가 싶었지만, 장비는 중요했다. 러닝화를 신고 뛰니 죽을 것 같았던 3km 달리기가 수월해졌다. 다 뛰고 나서도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상태가 아침에 일어나 나갈까 고민하던 나의 망설임을 덜어주었다. 또 어느 날은 달리다가 누군가 증정용 물티슈를 내 손에 쥐어주기도, 러닝이 끝나고 나를 위한 보상으로 집 앞에서 옥수수를 사 먹기도 했다. 때로는 맨홀 작업이나 조경 식재 때문에 길이 막혀 러닝이 정체되기도, 도심 속 사육사 한 분 때문에 비둘기와 사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간이 내게 색다르고 소중한 아침이었다.


아침 러닝을 직접 해보니 처음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다. ‘아, 진짜 너무 하기 싫다.’ 그래서 더더욱 이유를 찾아야 했다. 달리는 도중에 포기하지 않을 이유, 오늘 달렸지만 내일도 달리러 나갈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나 역시 한 달간의 아침은, 나만의 ‘아주 적은 이유’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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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처음 느낀 건 작은 성취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빈둥거리며 무기력하게 하루를 시작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일어나자마자 나가서 목표한 키로 수를 달리고 들어오니 확실히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아침의 태도는 하루 전체의 태도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뿌듯함을 느끼며 시작한 하루가 실패할 가능성은 적었다.


또한 아침 러닝은 기분의 마지노선을 높이는 행위와도 같았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유 없이 울적한 날도, 일단 나가서 몸을 움직이고 나면 기분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아주 단순하고, 몸과 마음 역시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따로 있다. 우리에겐 방해꾼이 너무 많다. 평소의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연락을 하고, 연락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서 필요도 없는 도파민을 채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며 아침부터 소소한 좌절을 느낀다. 일어나기 전에 오늘 할 일이나 가야 할 곳을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의 시작부터 자기 내면보다 우리 외부의 것을 먼저 생각한다. 정작 그 삶의 주체인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러닝은, 뇌가 어려워하는 그 일을 몸의 도움을 받아 해내는 일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러닝을 하면 나의 두 다리와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존재와, 내가 생생히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지금 이곳에는 나와 세상, 단둘뿐이다. 아침부터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아침 러닝은, 하루의 영점을 나에게로 맞추는 일과 같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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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말했던 ‘아주 적은 이유’를 나는 찾았을까. 나에게 러닝은 ‘잘 살 준비’를 하는 일 같았다. 숨이 차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굳이 할 이유는 없지만, 그럼에도 내가 러닝을 할 이유는 오늘 하루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적지만 아주 거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여름이다. 맹렬한 더위에도 내가 러닝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잠시 쉬어가더라도, 6월의 아침은 내 기억 속에 영영 남아있다. 단 한 달간의 노력으로 평생 곁에 둘 친구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도전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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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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