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카프카적 상황의 현실적 재현 -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글 입력 2024.07.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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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할 때 이 책-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로 표상되는 것들 앞에서 끝없는 자기 비난과 심리적 위축에 고통스러워했다는 것뿐이었고, 소설 '변신'이 그러한 우화 중 하나라는 정도였다.

 

다른 한 때에 카프카를 인용문으로 들은 적 있다. 그는 "나의 몸은 문학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에 그가 했다는 이 문장은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경솔해 보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하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 기원한 걸까?

 

카프카는 사람이 되지 않고 문학이 됨으로써 무엇을 생각했을까? 거대한 세계로 자신을 표상할 만큼 오만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거대한 세계의 한 조각으로 떠도는 고독한 인간이었을까? 나는 여전히 그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므로 아직도 그가 왜 스스로 문학을 자처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확실히, 책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을 통해 상상한 카프카는 이런 '알 수 없는 기분이야말로 적절한 해석인', 그야말로 아이러니하고 기묘한 작가였다.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문학적' 삶을 상상했다. 이 책에서 내내 카프카의 원고가 그러했듯이, 중간마다 드러나는 카프카는 삶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있는지, 있을지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표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을 독인일으로도, 유대인으로도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으며, 문학에 대한 갈망이 큼에도 직장 생활을 완전히 관두지도 못했다. 하물며 사랑에서도 숭배와 도피 속에서 명확히 선택하지 못했다. 그는 진실로 "고독과 공동체 사이의 경계지대에서 머무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명확하게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삶을 '연설'이나 '지식'으로도 정의하지 않고, '문학'으로 남겨두었다. 문학 속에서 카프카는 외압이나 내압으로 인해 다양한 생물로 변화한다. 친구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던 이 작가에게 문학으로 구성된 삶이란, 한편으로는 자조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무한한 세계를 끌어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카프카를 둘러싼 원고의 분쟁은 '카프카적이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앞서 기술했듯, 카프카는 문학을 지향하고 명확히 규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을 어디에고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스스로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남은 작품들을 가까운 친구인 브로트에게 불태워달라고 부탁하였고, 브로트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 원고를 남겨 자신의 비서에게 모두 넘겨준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사후 원고의 소유권을 규정짓기 위해 카프카는 '누군가'가 반드시 되어야만 했다. 이 논쟁에 카프카를 유대인 작가로 정의하고 싶어하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독일 작가로서 편입시키고자 하는 마이바흐 아카데미, 브로트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받은 것뿐이었고 딸 호프가 관여했다.

 

책의 저자는 놀라운 솜씨로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카프카와 브로트의 사적인 관계, 카프카의 개인적인 성격과 성향, 카프카의 유대적 성향과 시오니즘에 대한 경계, 브로트의 열광과 그만의 카프카 해석, 유대인 학살로 인한 이스라엘과 독일 사이의 갈등, 막스 브로트의 후기 삶과 호프 가문의 삶에 대해 비춘다.

 

소송과 관련된 것뿐이었고 놓치지 않는 끈기 있고 날카로운 저자의 글은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각 등장인물에 대한 동정심을 잃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카프카의 사후 원고의 소송과 그 소송을 이토록 예술적인 수준으로 완성한 이 책이 카프카의 또 다른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서술 속에서 독자들은 각 장면에서 카프카가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착각에 시시각각 사로잡힌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서는 그 속에 카프카의 의견이 없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 소송 자체가 정말 '카프카적' 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한 사람이 어느 날 알 수 없는 죄로 처벌당한다는 그의 소설처럼, 그의 삶은 그의 의지와 별개로 심판받고 규정되어야 했다. 어느 때부터 카프카는 '누군가'가 되어야 했을까? 카프카가 가장 신뢰했던 친구인 브로트는 튀코 브라헤와 케플러에 각각 자신과 카프카를 대입하여, 카프카의 문학적 재능을 광신에 가깝게 열광했던 인물이었다.

 

브로트와 카프카가 서로 신뢰하는 절친한 사이였음은 분명하지만, 둘에게는 좁혀지지 않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브로트가 공동체 속에서 자신과 집단의 명예를 찾고, 종교적 계몽에 주의를 기울이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작가라면, 카프카는 내향적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종교, 사회, 내면을 표현하는 작가였다. 하지만 브로트는 카프카 사후 카프카의 원고를 수정하고 해석하면서 자신과 카프카 사이에 있던 묘한 차이를 과감하게 좁혀버렸다.

 

브로트는 아내와 애인을 잃은 후 친밀하게 지낸 에스테르에게 카프카의 유산 처리를 부탁한다. 에스테르는 카프카의 원고를 경매에 내놓거나, 높은 금액을 받고 원고를 읽게 해주는 등, 개인적인 유산으로서 카프카의 유산을 대했다. 에스테르는 한평생 카프카의 원고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고, 거의 신경증적으로 그것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그녀의 딸인 호페는 아버지로서 경험한 브로트의 유산이자 어머니의 온 에너지를 쏟아 소유하려고 했던 카프카의 유산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언제든 카프카의 원고를 뺏길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고, 국가와의 연속된 소송 과정에서 너무 큰 비용을 지출하여 가난하게 살았다.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이은 일종의 이미지 쇄신으로서 프라하 출신의 유대인 작가의 원고를 상속받길 원했다. 독일어를 아름답게 구사할 수 있었던 카프카는 분명히 독일 문화권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미 독일의 많은 연구가가 카프카에 대한 해석들을 내놓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슬람 국립 도서관은 카프카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치의 가스실에서 살해당했음을 지적하며, 독일이 카프카의 유대성을 배제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프카는 죽기 전에 유대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으며, 명확하게 자신을 유대민족과 연관시키지는 않았지만, 그의 소설에서 유대문화의 유산이라고 할 것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브로트는 카프카를 유대인의 예언자로 표현할 정도로 유대적 해석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은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공개하는 조건으로 이 소송에서 승리하였다. 카프카는 자신의 사후 연구에 대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도 카프카의 목소리는 이 소송에서 실재하지 않았다. 소송 중에 카프카의 문학과 이야기들이 숱하게 인용되었지만, 그것은 어떤 입장에서 해석된 카프카였을 뿐이다.

 

브로트의 열광과 소유욕, 에스테르의 물질로서의 집착과 호페의 개인적이고 복잡한 감정, 독일과 이스라엘의 문화 역사적 맥락은 카프카를 무언가로 만들었다. 갑자기 멀쩡하게 일하던 회사원이 벌레가 되어버린 것처럼, 벌레가 죽음으로써 한 가족의 죄책감으로 얼룩졌지만 아이러니한 희망의 계기가 된 것처럼. 카프카는 죽은 후에도 끝없이 변신했다.

 

카프카의 유산은 아카이브 과정에서 어떤 맥락을 가질지언정, 안전한 공간에서 보관되며 디지털화된 자료가 되어 또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것이다. 나는 카프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카프카 역시 자신의 원고가 어떻게 될지 몰랐던 것처럼 후대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이해될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사후 원고를 둘러싼 소송은 부조리하고 카프카를 희생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소송은 우리에게 어떤 감상을 안겨준다. '문학'이라는 무한한 상상력과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끝없이 변신한다는 사실만 인지한다. 카프카의 문학이 그러하듯, 소송도 그렇다. 이러한 결론은 현실을 외면하고 고뇌를 회피하는 비겁한 회피가 아니라, 아이러니한 현실 세계에서 진실을 가리키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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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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