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생에서 영화 처방이 필요한 순간 - ‘엔딩까지 천천히’ 이미화 작가

글 입력 2024.07.0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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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영화’를 논하기란 참 어렵다. 인생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그때 좋았던 영화가 남은 인생 내내 좋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생 영화’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딱 필요한 영화가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영화 처방사'로 불리며 오랫동안 영화를 곁에 두고 글을 써온 이미화 작가는 인생에 영화가 필요한 순간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신간 『엔딩까지 천천히』로 돌아왔다. 총 25건의 고민을 읽고 쓴, 섬세하고 사려 깊은 영화 처방 편지가 담긴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원래 알고 있던 영화라도 새롭게 보고 싶어지고, 이미 지나온 나의 고민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생이 막막한 어느 날 영화 한 편을 버팀목 삼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지난 6월 24일 '작업책방 씀'에서 이미화 작가를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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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에세이 작가이자 책방 운영자인 이미화입니다. 예전에 ‘영화책방 35mm’를 운영했었고, 지금은 망원동에서 동료 작업자랑 함께 ‘작업책방 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 속 저자 소개에는 ‘영화 처방사’라고도 나와 있어요. 이 호칭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2020년에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라는 책을 썼어요. 그때 ‘사적인 서점’에서 책 처방사로 활동하시던 정지혜 대표님이 추천사를 쓰시며 저를 ‘영화 처방사’라고 칭해주신 게 시작이었죠. 일본 드라마 <나기의 휴식>에 미도리 할머니라는 캐릭터가 나오거든요. 맨션에 사는 청년들의 고민을 들은 후에 영화를 틀어주며 위로를 건네는 인물인데 제 책을 읽고 나서 미도리 할머니네에 머물다 온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 저를 영화 처방사로 '임명'해주셨어요. (웃음)

 

 

이번 책을 쓰기 위해 왓챠피디아에서 영화 처방 이벤트를 열었다고 들었어요. 이벤트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200편 이상의 고민 사연 중 25건을 채택해 제가 영화 처방전을 보내드리는 이벤트였어요. 영화 처방을 담은 편지를 한 분 한 분께 우편으로 직접 보내드렸죠. 우여곡절 끝에 편지를 다 드리기까지는 2년 가까이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고민이 사라지거나 해결된 경우도 많았어요. 책을 보내드리기 위해 최근에 주소를 다시 여쭤봤을 때 주소가 바뀐 분들도 꽤 계셨고요. 어떤 분은 자신이 어떤 고민을 보냈는지도 가물가물하다고 하셨죠.

 

 

고민이 사라지거나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반가웠을 것 같아요. 처방 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 온 경우도 있었나요?

 

짝사랑으로 고민하시던 분이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전하셨던 게 기억나요. 짝사랑하던 분과 이제는 제가 추천해드린 영화를 함께 본다고 해요. 가족과 관련된 고민을 보내주셨던 한 분은 주변에 조언을 구할 어른이 없었는데 제 편지를 받고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며 고맙다고 메일을 주시기도 했어요. 번역가 지망생이었던 분도 지금 고3이 되어 입시를 그쪽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근황을 알려주셨죠.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입니다.

 

 

‘엔딩까지 천천히’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는데, 어떻게 정해진 제목이고 의미는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엔딩까지 천천히’는 우리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 같아 울적하다는 사연의 처방 편지에서 가져온 표현이에요. 삶에서 엔딩이란 죽음을 의미할 텐데, 엔딩이 오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든다면 그 순간을 곱씹는 동안만큼은 시간이 잠깐 멈춘다고 믿어요. 그러니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엔딩까지 최대한 천천히 가자는 내용의 글이었어요.

 

그 사연의 맥락을 모른다 해도 엔딩이라고 하면 보통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모습을 떠올리잖아요. 누구나 좋아하는 영화가 늦게 끝나지를 바라죠. 그렇게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되어도 좋을 것 같아 ‘엔딩까지 천천히’가 제목이 되었어요.

 

 

 

영화가 끝나도 궁금해지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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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작가가 동료 작업자와 함께 운영하는 '작업책방 씀' 풍경

 

 

각자에게 맞는 영화를 처방하기 위해서는 많이 보는 것 이상으로 잘 기억해야 할 것 같은데, 작가님만의 영화 감상법이 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집에서 OTT로 볼 때가 많은데, 좋은 영화는 보면서 여러 번 멈춰요. 멈춰놓고 마음에 와닿는 대사를 받아씁니다. 그러면 나중에 확실히 그 대사를 중심으로 영화가 기억에 남거든요. 그러다 보니 대사가 좋았던 영화에 잘 꽂혀요. 반대로 연출이 화려한 영화는 기억하기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보신 영화를 어떻게 기록해 두는지도 궁금해요.

 

영화 처방사로 활동하면서부터는 엑셀에 제목과 핵심 주제, 주요 대사까지 정리를 해둬요. 나 자신, 결혼, 인생, 가족, 어른, 아픔 등 여러 키워드가 있죠. 그렇게 기록해둔 영화가 약 200편 되는 것 같아요.

 

 

영화를 언제부터 좋아하셨는지 기억하시나요?

 

돌이켜보면 영화를 특히 좋아했다기보다 이야기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때그때 좋아하는 매체가 조금씩 바뀐 셈이지요. 어릴 때는 그림책을 좋아했고, 중학교 때는 만화책에 푹 빠졌다가 그 흥미가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갔어요. 대학생쯤 되어서는 영화에 빠져서 매일 영화만 봤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쭉 좋아하는 중입니다.

 

 

좋아하는 영화들 사이 공통된 결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주인공의 삶이 궁금해지고 계속 신경 쓰이는 영화를 좋아해요. 내 삶과 맞닿아 있는 영화가 주로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생각나는 건 <프란시스 하>인데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라 비슷한 고민을 할 때마다 생각이 나죠. 그런 식으로 제가 일상에서 계속 떠올릴 수 있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가 취향에 맞아요.

 

 

많은 분에게 영화 처방을 해 주셨는데, 작가님이 지금의 자기 자신에게 영화 처방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영화를 처방해주고 싶나요?

 

사실 저는 매번 새로운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영화가 내게 어떤 처방을 내려줄지 기대하면서 봐요. 최근에는 영화는 아니지만 <내 이야기는 길어>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요, 카페 운영하던 주인공이 폐업하며 이야기가 시작돼요. 엄마 집에 얹혀살면서 카페에 있던 물품들을 처리하지 못해 방 안에 쌓아 두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엄마한테 모닝커피 한 잔을 내려주는 인물이죠. 그걸 본 누나는 미련이라면서 동생에게 화를 내고요. 아직 초반인데, 분명히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면 저한테 어떤 처방이 내려질 것 같아 기대 중입니다.

 

 

 

바라는 게 없어서 더 즐거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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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등 영화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쓰셨는데요,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생각이나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진짜 다행인 게, 영화 보는 건 일로 안 느껴진다는 거예요. 볼 때마다 새롭게 좋아요. 한동안 드라마만 보고 영화를 잘 안 찾게 되는 시기도 있긴 한데, 그러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불이 붙으면 예전에 보려고 생각해뒀던 영화를 며칠 동안 몰아서 봐요. 영화는 제가 닿을 수 없는 것이라 꿈 같아요. 그래서 더 애정이 식지 않나 봐요. 글 쓰는 것과는 좀 달라요. 글쓰기는 제게 분명히 일이거든요.

 

 

영화와 관련된 글을 오래 쓰시면서도 계속 영화를 좋아할 수 있다니, 책에서 <요요현상>을 다룬 꼭지가 생각나기도 해요. 거기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셨는데, 좋아하는 일과 함께하는 작가님의 마음가짐은 어떠한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그렇게 쓰긴 했지만, 저는 사실 각오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웃음) 각오를 하는 데에도 시간과 마음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각오를 할 시간에 그냥 하는 걸 선택하는 사람이거든요. 각오라고 하면 너무 비장하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결과들을 감당 가능한지 정도를 생각하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큰 각오가 없더라도 그냥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원동력 같은 게 있나요?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려면 그걸로 뭔가를 바라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실제로 영화로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영화 한 편 보면 그 자체만으로 저한테 너무 좋은 경험이거든요. 하지만 글에는 제가 바라는 게 많아서, 좋아하는 마음으로 쓰긴 하지만 글 때문에 괴로운 순간도 참 많아요. 무언가가 나를 괴롭게 한다면 내가 거기에 무언가를 너무 많이 기대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바라는 것 없이 즐겁게 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또 소개해 주세요.

 

2014년부터 ‘무브드바이무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영화 촬영지에 가서 그곳을 배경으로 영화 속 한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는 프로젝트죠. 돌아다닐 때는 정말 힘든데, 헤맨 끝에 영화 속 장면과 똑같은 장소를 실제로 마주하면 진짜 너무 행복해요. 어떻게든 잘 찍고 싶어서 애쓰고요. 힘들어도 즐거운 건 제가 이 프로젝트로 바라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에요. 한때는 이 프로젝트로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걸 내려놓았더니 그냥 내게 인생의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6년 전에 이 프로젝트로 책을 썼는데, 최근에 이 책으로 북토크를 할 기회가 생겼어요. 오래전에 쓴 책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강연 자료를 만들기 위해 다시 읽었는데, 정말 즐거웠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이 프로젝트를 좋아했구나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고요. 요즘도 여건이 될 때마다 프로젝트를 하러 떠나는데, 이 프로젝트는 평생 할 수 있겠다는 것을 최근에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영화를 보는 건 내가 살아볼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 경험하고, 그걸 통해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가님에게 나로 산다는 건 무엇인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사실은 나로 사는 것보다 나로 살지 않는 게 더 어렵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오히려 내가 너무 나라서 괴로울 때가 많거든요. 영화 속 주인공들도 자기가 너무 자기 자신이라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할 때가 많고요.

 

그래도 나로 산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면,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먼 미래는 가늠이 잘 안 돼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주인공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정도죠. 그걸 보며 나로 산다는 건 그냥 오늘 하루 ‘오늘의 나’로 산다는 걸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우울하다면 우울하게 살고, 문제가 생겼다면 그걸 해결하려 하고. 뭔가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그냥 오늘 하루, 이 상황 이 장면만을 나로 사는 것이죠. 일단 오늘을 나로 살 수 있어야 그다음도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독자분들한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목차를 쭉 보면 ‘이 중에 네 고민 하나는 있겠지’ 할 정도로 다양한 고민이 있어요. 고민이라는 건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그러니 한 번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고민이 생길 때마다 들춰볼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털어놓기 힘든 고민을 나누는 친구 같은 책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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