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당신의 후이늠이란 - 2024 서울국제도서전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7.0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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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계획이라곤 기차의 간이 테이블을 책상 삼아 끄적여둔 몇몇 개의 출판사와 책 제목이 다였다. 역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와 성심당 빵을 우적이며 급하게 부스의 배치도를 훑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맑은 햇볕이 창문에 내려진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왔다.

 

서울 국제 도서전이 열리는 첫날이었다.

 

도서전에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다짐만 했던 계획을 실천하고자 꽉꽉 들어찬 일주일 치 스케줄을 비집고 애써 틈을 만들어 보니 바로 다음 날밖에 시간이 나지 않았다. 당황할 여유도 없이 급하게 기차표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다행히 누군가가 포기한 취소 표를 금방 잡을 수 있었다. 도서전을 방문할 수 있는 약간의 운이 따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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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동문으로 들어가 1층에서 미리 예매한 온라인 티켓을 보여주고 입장권 팔찌를 받았다. 샛노란 색의 도서전 문구 ‘후이늠’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긴장과 설렘으로 고조된 듯 보이는 무리를 따라 어디인지 모를 입구로 향했다.

 

3층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밋밋한 입구가 보였다. 간단하게 입구라는 팻말이 세워진 클래식한 디자인의 문. 별 기대하지 않는 담담한 마음으로 들어서자, 시야에 광활한 실내가 펼쳐졌다. 그리고 스쳐오는 다양한 향 내음이 코를 타고 전해졌다.

 

시각보다 먼저 반응한 후각에 의해 주위를 둘러보자, 도서전의 주빈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부스가 보였다. 도서전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다소 이국적인 광경이었다. 낯섦에 빼앗긴 이목을 다시 한번 집중시키고 독립출판사와 아트북을 구경하기 위해 우선 D홀로 이동했다.

 

 

 

책마을의 정겨움


 

독립출판사와 아트북 판매 부스가 줄지어 존재하는 Q2는 전시장 가장 안쪽의 D홀에 위치했다. ‘책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일렬로 세워진 책상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작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협소할 수도 있는 좁은 공간을 출판사의 분위기에 맞도록 아늑하게 꾸며놓은 것이 인상 깊었다.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하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느낌이 들었다.

 

"똑똑. 저 아무개 친구인데요, 혹시 들어가도 될까요?"

 

부스는 대체로 작가 본인이 운영하거나, 책방지기가 직접 온 경우가 많았다. 일명 책마을의 주인장들은 매우 활발한 태도로 작품에 흥미 있어 보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밝은 목소리로 작품을 소개하는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보다는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정중한 초대처럼 느껴졌다. 표지가 어떤지만 봐야지, 마음먹었던 나도 ‘한번 펴보고 가세요. 이번에 나온 신작이에요.’ 말을 들으면 갈대같이 마음이 흔들리며 책 속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특히 직접 책을 쓴 작가와 마주하면 매대 앞에 놓인 책을 잠깐 훑어보더라도 조금 더 집중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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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의 분위기


 

책을 구경하다 불현듯 깨달았던 것은 그렇게 광활한 공간이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것이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다기보단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집중력이 유지되기도 했다.

 

시간을 잊은 채 문장에 집중하다 고개를 들어 좌우를 둘러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파에 쓸려 자칫 혼잡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모두 손에 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잔잔한 말소리와 발소리가 백색소음처럼 이어졌다.

 

이따금 정적을 깨고 반갑게 누군가를 맞이하는 인사말이 들려왔다. 예전에 닿았던 인연을 다시 밝은 얼굴로 맞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나도 모르게 덩달아 반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책마당


 

오후 2시 30분이 다가오자, 미리 알아봐 두었던 김연수 작가와 강혜숙 작가의 주제 강연을 보기 위해 D홀의 뒤편에 존재하는 책마당으로 이동했다. 평소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감명 깊게 읽어왔던 한 명의 독자로써 김연수 작가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소중했다.

 

강연은 이번 도서전의 주제인 후이늠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새로운 걸리버 여행기의 작업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진행되었다. 탁 트인 강단에 작가들과 사회자가 위치했고, 미리 강연을 예약해 둔 약 90명의 관람객이 마련된 좌석으로 이동했다.

 

무대의 뒷부분은 개방되어 있어 제한된 정원 외에도 지나가던 관람객이 함께 청강하기 좋은 구조였다. 강연을 예약하지 못한 나는 한동안 뒷 편에 서서 북토크에 집중했다.

 

소리가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폐쇄적인 강당 구조가 아닌 탓에 마이크 속 음성은 금세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다수가 사회자와 작가의 말에 경청하며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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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살펴보니


 

북토크에서 빠져나와 C홀로 이동했다. 전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홀은 대형 출판사와 중·소형 출판사, 여러 전시장, 그리고 참가국의 다국적 부스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대형 출판사는 다양한 컨셉과 충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넓은 전시장에서 갈 길 잃은 관람객의 마음을 현혹했다.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놀이동산에 처음 와본 아이처럼 설렘으로 가득 차서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구와 가깝다는 위치적 이점과 멀리서 보아도 눈에 뜨이는 화려한 시각적 효과로 제한된 공간에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그렇기에 취향에 맞는 책을 일일이 추천받거나 차분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책을 맛볼 여유는 책마을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꼈다.

 

다소 아쉬울 수도 있었지만, 대형 출판사만의 각양각색 이벤트와 부스의 컨셉에 맞게 꾸민 포토존으로 부족한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메워졌다. 독자들이 행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이점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젊은 독자층을 겨냥한 것 같은 감각적인 부스 디자인이 새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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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이나 독서를 생각하면 전문적이고 잡학 다식한 지식인이 연관되어 떠올랐다. 동시에 다가가기 어렵다거나 정적이고 지루할 것만 같다는 이미지가 체화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취미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이미지와 다르게 관람객의 상당수는 또래의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 대다수였다. 모두 책에 대한 열정을 가득 안고 진중한 표정으로 책을 살펴보며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거운 쇼핑백을 두세 개씩 짊어지거나, 심지어 캐리어를 끌고 전문적으로 책을 사냥하는 분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독서와 친숙한 연령층이 낮아졌다고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나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도서전이 어땠는지 묻는다면


 

만약 누군가가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어땠냐고, 내년에도 방문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순하고도 확고하다. 당연하지!

 

사실 우리 주위에서 책을 접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다. 몇 번의 클릭이면 주문이 완료되어 당일 배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온라인 서점부터 집 주변의 독립 서점, 대형 서점, 혹은 도서관 등등.

 

하지만 결이 맞는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즐기는 축제는 도서전이 아니고서야 찾아보기 힘들다. 취향 공동체를 만났다는 안도감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주는 소속감에 고취되다 보면 그 많은 인파 속의 익명성에 스르르 기대게 된다.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가 일어나고 공감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벌어져 정신적으로 곤두설 수밖에 없는 현재에서 떨어져 나와 비로소 마음의 편안을 느껴본다. 가끔은 이렇게 현실 감각을 잃고 책 속 세상에 푹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몸짓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꼭 필요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만 보 넘게 찍힌 걸음 수와 몸을 짓누르는 책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서전 속 공간을 거닐고 싶은 원동력이 나에게 주어진다.

 

 

[조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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