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6명의 농인 배우와 4명의 소리꾼 - 맥베스 [연극]

글 입력 2024.07.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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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4년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기획공연으로 국립극장 달오름에 <맥베스>가 올랐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강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맥베스는 끝없는 욕망으로 파멸하는 인간의 처절한 비극을 담고 있다. 이번에 김미란 연출가의 연출로 각색된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왕위 찬탈 전이었던 원작의 배경을 현대로 옮겨 열여섯 대목으로 압축했다. 또한 스코틀랜드 왕가였던 배경을 정육점 가게를 운영하는 한 가족이 가게의 소유권을 놓고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각색했다.

 

 

 

맥베스: 멈출 수 없는 시작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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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맥베스), 리(레이디 맥베스), B(뱅쿠오), M(맥더프), 코더는 어린 시절 친척의 장례식에서 부모님들을 비롯한 일가친척이 한날한시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 장례식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딱 한 명, 이들의 큰엄마인 KING(던컨왕)이었다. 이후 친척들이 함께 운영하던 정육점은 KING의 소유가 되었고 어린아이들은 정육점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나간다. 주인공 막은 칼을 잘 다루어 짐승 정형을 맡았고 그녀의 언니 리 역시 짐승 정형을 한다. 막·리 자매의 사촌이자 절친 B는 짐승 머리를 삶고 말없이 게임에만 집중하는 M은 고기의 피를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KING의 정육점은 머리를 전문으로 다룬다. 이 머리가 짐승의 머리인지 인간의 머리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밤, KING이 정육점의 손님을 채가던 ‘아무개 씨’의 머리(살인)를 주문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코더가 시체로 돌아온다. 오래전 모두가 죽어 나간 그 장례식처럼, 코더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또다시 죽음이 쌓여간다. 코더의 죽음 이후 첫 죽음은 막과 리가 KING을 살해한 것이었다. 원작에서 맥베스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던컨왕을 죽인 것이 비극의 서막을 연 것과 그 맥을 함께 한다. 그 살해에는 의도가 없었지만, 우연과 우연이 겹쳐 운명이 되었다. 이를테면, 막과 리는 KING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단지 코더의 사망으로 인해 상속받은 엉성한 트럭으로 KING을 치는 차 사고가 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KING은 억압적인 인물이었고, 사고가 난 이상 그녀를 완전히 죽이지 않는다면 막과 리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또한 해당 살해 장면을 목격한 B 역시 살려줄 수는 없는 셈이었다. KING은 세계의 중심이었고 그 중심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 그것을 해하는 어떠한 것도 용인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비웃듯 벗어나 있지만 동시에 모든 비극을 주조하는 예언의 존재는 흥미롭다. 원작에서는 마녀였고, 이번 맥베스에서는 마녀로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들의 미래를 예언한다. 예언이란 미래의 일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자기 선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전한 예언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원작의 마녀는 맥베스가 왕이 될 것이며 뱅쿠오의 자식들 역시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한다. 처음에는 그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맥베스도 영주가 된 이후에는 마녀의 예언을 신뢰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의존하게 된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번 맥베스에서 마녀는 무당이 되어 무대에 단 두 번 등장한다. 비 오는 날 우산과 함께 등장하는 무당은 원작과 같은 예언을 하게 된다. 마녀와 무당의 말은 결과적으로 틀린 말이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틀린 말이 되지 않는 과정은 어쩐지 은밀하다. 숨기고 은폐해온 욕망에 대해 이성을 벗어난 존재가 건내는 예언은 그 누구라도 붙잡고 싶은 선언이기 때문이다.

 

 

 

6명의 농인 배우와 4명의 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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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월에 국립극단 달오름에서 진행된 <맥베스>가 관심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현대적 각색을 넘어선 새로운 연출의 시도 때문이다. 이번 <맥베스>를 연출한 김미란 연출가는 이전 연극에서도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재단되지 않는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온 바 있다. 이번 연극에서는 시작에 앞서 음성과 지면을 통해 농인 배우와 소리꾼이 함께 무대에 서게 된 연출 의도를 소개한 바 있다. “한국에는 두 개의 공식 언어가 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수어 역시도 공용어로서 인정받고 있다. <맥베스>은 한국어와 한국수어가 대등하게 무대 위에 올라가는 공연이다.”


국립극단에서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기존의 연출 방식에 대한 반성을 담아 휠체어 객석 마련,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 및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배치 등(일부 회차에만 진행 중이다) 여러 시도를 해온 바 있다. 개인적으로 국립극장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 회차에 우연히 참여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동작 해설이 관극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던 염려는 연극 중 동작과 지문에 대한 새로운 이해 가능성으로 바뀌었고, ‘연극을 보다’는 행위가 다양하게 번역되는 과정에 대한 흥미를 유도했다. 이번 <맥베스>은 극에 보조 장치를 설치하는 것 이상으로 언어를 적극 활용한 연출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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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한국수어가 대등하게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은 ‘단어 대 단어’ ‘소리 대 소리’의 일대일 대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관람자는 판소리의 언어 혹은 수어의 언어 중 하나를 통해 다른 대상까지 이해할 수밖에 없다. 비청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수어는 배우들의 연기력, 판소리와 함께하며 리드미컬한 언어로 다가왔다. 근래에 본 어떤 연극보다 몸을 잘 쓰는 연기라는 감상을 받았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며 파멸로 나아가는 맥베스의 줄거리와 적절히 조응하여 빛을 보였다. 무엇보다 판소리를 통해 상황 이해는 가능하나 배우가 하는 말을 나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하는 관극에 스미는 긴장이 좋았다.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공감하고 이입해 버리곤 하기에, 두 언어의 공존에서 오는 긴장감은 감정을 유도하고 동시에 이를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짧은 공연 기간만이 아쉬움으로 남는 <맥베스>였다. 원작의 문제의식에 따른 충실한 각색과 연출이 돋보였다.

 

 

[진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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