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글이 누군가의 유서가 된다면 [도서/문학]

삶에 대한 고뇌와 죽음에 대한 아름다움
글 입력 2024.07.0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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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삶은 하나의 가설이다. 늙어서 죽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합체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를 생각할 때는, 네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이 따라온다. 너는 가능성의 집합체였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

 

["너의 자살은 네 삶에서 네가 던진 가장 중요한 메세지였는데, 너는 그로부터 어떠한 결실도 얻지 못했다."] - p.16

 

 


어쩌면 누군가의 마지막 유언

 

당신이 무심코 읽었던 흐드러진 글이 사실 누군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면 과연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 에두아르 르베의 책, ‘자살’이 바로 그 이야기다.


애정하는 친구의 소개로 접하게 된 책, ‘자살’은 자줏빛 표지에 흰색 띠지. 그 위에 차분한 검은 글씨로 간결한 생김새를 띄고 있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묘한 냉기와 조우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제목이 다소 명료하고 직관적인지라 그 자줏빛이 푸른 핏빛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에두아르 르베


 

이 저자, 에두아르 르베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저자는 사진과 글을 주요 매체로 삼아 활동한 프랑스 작가로 1965년의 시작, 1월 1일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의 비극적이면서 짧은 삶은 2007년 10월 15일, 파리에서 마감되고 이듬해 이 책이 발간되며 세계를 충격으로 물들였다.

 

따라서 이 책은 자전적 요소가 짙은 에두아르 르베의 마지막 작품으로, 출간되고 며칠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비극적 삶과 고독한 운명을 함께 담고 있는 강렬한 이야기이다.


["너는 공허를 발견할 위험을 무릅쓰고 행복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죽었다. 우리는 네가 찾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혹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침묵과 공허라면, 더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 위해서."] - p.36


["너는 누군가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이 네 한계를 넘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너는 부모가 너를 가졌을 때 너의 오늘날보다 더 이성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선택의 이기심과 경솔함을 생각하는 것은 너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너는 그들이 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들이 네가 되리라 생각한 모습보다 덜 원했으리라고 믿었다."] - p.96

 

 

 

'너', 그리고 '나'


 

이 책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읽는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일기 또는 일지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너’라는 인물의 일상을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글을 읽는 내내 저자가 죽은 옛 친구의 일상을 상상하며 그리워하는 시점이라 생각하고 읽어냈다. 그러나 읽다 보면 주인공이 르베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네가 되기도 하며 모호해지기에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읽게 된다.

 

그의 필치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르베는 문장 하나하나에 강렬한 감정을 덤덤하게 담아내어 독자들이 마치 주인공 '너'가 된 것처럼 홀린 듯이 그 상황을 따라가게 한다. 특유의 매우 섬세한 묘사법이 마치 눈앞에 상황들이 그려지는 듯 생생했다.

 

이 독특한 서술 방식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에 단숨에 긴 호흡으로 읽게 되는데, ‘너’의 입장에서 적어 내린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후미에서 저자가 이 글을 쓴 뒤 생을 마감했다는 구절을 읽은 많은 이들은 주인공이 저자라는 사실에 더 큰 놀라움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삶에 의해 쓰였다


 

르베는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을 조명하며, 인간 존재의 의미와 자기 삶의 무게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다. 글을 읽으며 이내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과 ‘죽음’ 역시 구분하는 게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소 덤덤하게 풀어낸 그의 철학적 풀이는 독자에게 더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글에서 건조함과 우울감이 크게 느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아 나 역시 ‘우울’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하기도 했다. 삶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미지에 대한 확신이 있어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던, 어쩌면 그곳이 살아있는 세계인 이곳보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르베의 초연함이 느껴져 먹먹해지는 것이다.


["행복은 나를 선행하고

슬픔은 나를 뒤따르고

죽음은 나를 기다린다"] - p.113


이 작품은 르베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이자,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이다. 뚜렷한 전개가 있지 않기에 흥미로운 기승전결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르베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생’에 대한 짧은 메시지는 매력적이고, 그의 비극적 선택과 맞물려 더욱 붉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 속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첫 장을 열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가 느꼈던 삶에 대한 고뇌와 죽음에 대한 아름다움을 함께 곱씹으며 이만 글을 줄인다.

 

 

[안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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