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향토(鄕土)의 색을 찾아서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7.0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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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란 무엇인가? 향토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땅을 의미하며, 향토적인 것은 고향이나 시골의 정취가 담긴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향토란 어떤 것일까?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향토라 하면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나 물비린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비린내를 머금은 바람을 한껏 맞으며 해변을 걷고 있으면 바닷가의 카페, 펍, 식당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나에게는 향토적인 것이다. 이처럼 이제 향토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자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되었지만, 이 향토가 미술의 획일적인 기준이 되었던 시기가 있다.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제의 문화 통치가 시작되면서 조선에도 조선미술전람회가 창설되었다. 일본의 제국미술전람회를 모델로 삼아 식민지인 조선의 미술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긴 했으나 당시 조선인 화가들에게는 조선인 작가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이러한 전람회는 23년간 존속되어 조선 미술을 넘어 근대 화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1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을 차지한 김중현의 <춘양>은 한옥 내부를 배경으로 여성들이 집에 모여 채소를 다듬고 식사를 준비하는 소박한 일상이 묘사하고 있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한국적이고 향토적인 느낌이 잘 살려내고 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 당시 화가였던 김종태는 “골동품의 진열, 풍속 전람, 무지 방문, 댕기 머리, 마른 신, 붉은빛, 누런빛, 푸른빛 하나하나가 제각기 향토색을 표방하고 있다. … 이국 사람이 이국의 정취를 골동품에서 찾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본토인으로서 그 나라의 향토성을 어디서 느낄 것이냐. 작가가 향토색으로 발견한 모든 골동품을 미학적 구성으로 무던히 종합하여 일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는 그 대담과 노력을 찬양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당시에는 향토색이 무엇이든 간에, 향토색은 좋은 것이었고 이를 작품에 잘 녹여내 표현하는 것이 조선미술전람회의 입선에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이 대부분 동경 미술학교 등 일본인 작가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이러한 평가 기준이 단지 심사위원들의 취향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에게 조선의 향토색이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조선미술전람회 자체가 일본의 제국미술전람회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고 조선의 미술을 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의 미술 형식과 생각을 이식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토색을 권장하는 행위가 순수하게 조선의 것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식민지 지배의 명분과 정당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되었던 일본에게 ‘향토색’이란 또 다른 식민지 지배의 명분이 되었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은 조선이 조선만의 독특한 성향을 지녀야 하고 ‘조선만의 독특한 성향’이란 곧 향토색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향토색’이 느껴진다며 뽑은 조선미술전람회의 입선작들을 보면 이들이 말하는 향토색이란 원시적이고, 미개하고, 낙후되어 자연 그대로인 상태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작가들에게 이러한 ‘향토색’을 표현하도록 권장했다. 이처럼 조선에 ‘향토색’ 이미지를 씌움으로써 일본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식민지 조선이 총독부 덕에 발전했다는 명분을 얻고자 했다.

 

이처럼 일본이 조선에 씌우고자 한 야만, 미개, 원시와 같은 이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적 있는 이미지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서구가 비(非)서구를 침략하며 말하는 이분법적 질서를 일본은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자신을 서양, 조선을 비(非)서구에 대입해 식민지 종주국과 식민지, 발전하고 문명을 갖춘 나라와 미개하고 원시적인 나라, 남성과 여성이라는 위계적인 서양의 시선을 내재하고 있었다. 물론 일본이 저지른 여러 역사적 사건은 존재하지만, 서양에 침략당했던 나라가 다시 이웃 나라를 침략하며 이 이분법적인 위계질서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은 꽤 비극적인 이야기라 생각한다.

 

 

 

조선에게 조선의 향토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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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욱 비극적인 것은 한국 작가들 또한 예술 이미지 속의 위계질서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일본의 시선을 재생산하게 됐다는 점이다. 일례로 김종태가 그린 <포즈>를 보면 작가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다. 또한 아이의 치마는 필요 이상으로 내려가 있고 아이는 순종적인 자세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이가 남성, 화면 속 아이가 여성이란 점까지 고려했을 때 화면 내의 여러 설정은 화면 밖의 관람자와 작가 그리고 화면 속 아이 간의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곧 식민지 종주국과 식민지인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이 관계는 지구 전체를 관통하는 서구와 비(非)서구 간 위계질서를 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모두 조선인 작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당시 조선미술전람회는 화가로 등단할 수 있었던 유일한 등용문이었다. 조선인이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식민 지배를 당하는 입장임에도 식민지를 지배하는 자의 시선을 가져와야 했다. 절박했던 그들에게 왜 일본이 권장하는 대로 그림을 그렸냐고 비난하기에는 그들이 처한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과연 조선인 작가들은 속으로도 일본처럼 조선을 미개하다고 생각했을까? 한편으로는, 이인성을 비롯한 몇몇 조선인 작가들이 일본이 권장하는 향토색을 재생산했다며 비판하는 입장이 있지만, 조선인 작가들이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조선적인 것이 소박하고 자연적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린 것이 일본인 심사위원이 보기에는 향토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일본인의 시선을 따라 그림을 그렸으나 이후에는 정말 원시적이고 미개한 것을 조선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해석과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애초에 미개하고 원시적인 것과 소박하고 자연적인 것이 무 자르듯 양분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그 언어가 의미하는 바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은 시간이 멈춰 그대로 존재하지만, 작품에 대한 해석은 계속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의 우리에게 향토색이란


 

이인성 다알리아 (1).jpg

 

 

3년 전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을 보러 갔을 때 이인성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처음 이 작품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굉장히 이국적인데?’라는 생각이었다. 이인성이 작품을 제작하던 당시에는 다알리아와 풍경이 소위 ‘한국적’인 것이었지만 현대를 사는 나에게는 ‘이국적’인 모습이 되었다. 이는 곧 ‘한국적’, ‘이국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동하고 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작품 자체는 이인성이 <다알리아>를 그렸을 때부터 변형되지 않았지만, 작품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바뀌고 시대도 바뀐다. 그러니 당시에는 한국적이라고 해석되었던 작품이 현대인인 나에게는 이국적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에서는 이인성이 그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나에게 한국은 장독대가 늘어져 있는 시골의 이미지보다 고층빌딩이 밀집된 도시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에 이인성의 이런 작품들을 보면 한국적이기보다 동남아의 필리핀, 태국과 같은 ‘이국적’인 이미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즉 이런 다알리아와 시골의 풍경은 더 이상 나에게 ‘향토’가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향토’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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