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맥락과 함께 책을 이해하고, 사람을 헤아려 봅시다. [도서/문학]

영화와 책으로 함께 보는 ‘호밀밭의 파수꾼’
글 입력 2024.07.0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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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일련의 사건으로 채워지는 과정이다. 우리 모두 수천 번 넘어지고 일어서며 성장한다. 시간의 흐름을 거부할 순 없기에 때론 현대인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갖고 주어진 오늘을 살곤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하고 묻어 두고 사는 감정을 보듬어 주는 책이다. 과격한 언어 사용과 적나라한 청소년 일탈 묘사로 19세기 출판 당시엔 금서로 지정되었다. 현재 이 도서는 시대와 국경을 불문하고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라는 고정적 위치에 있다. 우리가 깊이 숨겨둔, 정상 트랙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의 굴곡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이야기는 비단 성장기 청년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위대한 책을 읽으면, 작가가 생전 보낸 모든 시간은 독자를 울리는 책 한 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존재했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한 것 같다. 그 덕분에 우리 독자는 녹슬지 않는 위로와 영감을 책을 통해 얻을 수 있게 된다. 어떤 생을 보냈길래 작가는 우리의 어두운 동굴 속 감정에 빛을 비출 수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작가 J.D 샐린저의 삶이 궁금해진다.


19세기의 고전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과 작가의 생을 다룬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Rebel in the Rye, 2017)’를 함께 보며 작가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맥락 속에서 인물 이해하기 – 책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읽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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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판된 시기는 전쟁으로 얼룩진 1950년대이다. 전쟁은 젊은이들의 숭고한 정신과 열정을 앗아갔다. 남겨진 것은 산 사람들의 어지럽고 황폐해진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사회라는 유기체가 개인의 맥락을 간과한다고 비판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순수함’에서 ‘앎’의 시대로 넘어가는 성장의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란 단어를 풀이한다. 인간은 청소년기를 제외한 나머지 인생을 성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앎’이 지속됨으로써 이전의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상처는 고통으로 남을 수 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을 이해한다면, 책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알지 못함에서 오는 순수함을 붙잡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유일무이하게 사랑하는 어린 여동생 ‘피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드러난다. 그는 피비에게 깃들어있는 순수함을 보호해 주고 싶어 한다. 성장에는 좋은 뜻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행동하지 않는 가식적인 사람들의 일면, 일정한 기준에 따라 항상 평가하는 사회, 부정과 지저분한 욕설, 잔인함 등 보이지 않던 사회의 부정적인 일면도 성장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 인지하고 감수하는 것이 성장의 일부라면, '호밀밭의 낭떠러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이 순수한 본성을 잃지 않도록 단지 잡아주는 역할이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홀든을 독자는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른의 역할을 제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홀든은 유난히 가식적인 것을 경멸한다. ‘멋지다’라는 말은 지나치게 과장된 말이고, 술집에서의 오고 가는 사람들 간의 대화는 가식적이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진심이 아니라며 싫어한다. 그가 오직 진짜 연기라며 좋아했던 건 햄릿 연극 중 철없는 어린 조카가 장난을 치며 눈치 없이 행동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통해 홀든은 악의가 없는 순수함에서 비롯되는 진정성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위에서 진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현대인은 진심으로 꿈꾸기보다는 먹고살기 위해 현실적인 범주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고른다. 사회생활 속에서도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형식상의 말인지 구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책 속 주인공 홀든이 전쟁 속 혼란을 겪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장하면서 가식적인 세계를 조금씩 인지하게 되는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홀든의 말과 행동은 “방황하더라도, 모가 난 행동이더라도 진심에 따라 움직였다면 괜찮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사회에 던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홀든이 겪은 것은 개인적인 ‘반항’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반항’이다. 그는 아직은 미성숙한 학생 신분으로 성숙하게 되는 과정에 있기에 정착지가 아닌 갈림길에 서 있다. 그는 나이만 같고 내적으론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 또래가 있는 공간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정해진 과정과 평가 방식에 의해 자신을 재단하는 학교에도 뜻을 두지 못한다, 대신 호기심의 공간인 동시에 경멸하는 금지된 미지의 영역을 은닉하고 싶어 한다.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심리, 보통의 기준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 그리고 전쟁을 겪은 충격이 우리 무의식에 혼재되어 있다면 우리 모두 홀든처럼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을 걷기 쉽다. 하나의 부정적인 결과가 더 큰 화마가 되어 자아를 새로운 더 나쁜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를 하면 '탈선'이라고 외쳐야 하는 수업은 홀든과 같은 ‘반항아’에 대한 사회의 평가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일관성을 가지고 간결하게 말을 해야 함을 강조하는 선생님과 대조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있는데 말입니다.”라고 말하는 홀든에게서 독자는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맥락이 있고 특히 개인의 성장통에 한해서는 인과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행정과 평가의 편의를 이유로 개인의 맥락에 대한 이해는 배제하며 공정한 과정을 양산하고자 한다. 홀든이 오직 필요로 했던 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의 맥락을 이해해 주고자 하는 진정한 어른들의 ‘마음의 형태’였을 것이다. 어린 남동생을 영영 하늘에 떠나보내게 된 슬픔을 어루만질 시간과 틀에 박힌 교육을 받기 전에 그의 성장통을 이해해 주려는 어른이 그에게 있었다면 홀든은 아마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더욱 건강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한 인간의 탈선을 교육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오직 ‘퇴학’이라는 행정과 직결된 간단한 단어로 치부해버린 것이 안타깝다.


퇴학과 탈선은 한 사람의 맥락을 들여다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단어다. 전쟁의 참담함을 겪은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트라우마를 겪는지는 행정적인 절차로만 계산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박물관에 다시 가게 된 홀든은 박물관이 좋은 이유에 대해 전시품들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변하는 것은 우리지만 단순한 나이의 문제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전에 함께 왔던 짝꿍이 지금은 없다든지, 오늘은 다른 옷을 입었다든지, 어제 안 좋은 일을 겪고 난 다음 날과 같이 하루하루의 맥락이 달라서 우리가 변한다는 것이다. 이는 변화에 있어서 부재한 ‘맥락’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홀든이 방황하는 이유가 그의 ‘맥락’을 헤아려주려는 어른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성인에 가까워질수록 사회는 개인이 처한 맥락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실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라고 말하는 홀든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사회는 탈선과 퇴학으로 정의되는 홀든이 처한 성장통의 맥락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독자만큼은 홀든이 주장하는 ‘있는 그대로’의 뜻을 반추해보 며 그를, 또는 비슷한 현대인을 위로해 줄 수 있다.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Rebel in the Rye, 2017)’를 통해 작가에 대한 맥락 고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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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이 하나의 연극인 듯이, 책이 출판되기 전과 후 백스테이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커튼 뒤에 있던 작가의 삶을 조명한다. 작가 지망생에서 첫 출판을 해내기까지 샐린저의 열정에서부터 어쩌다 참여하게 된 전쟁에서 쉬이 극복하지 못한 그의 트라우마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그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샐린저가 전쟁을 겪은 이후엔, 그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집필하기 시작한 계기와 출판 과정이 그려졌다. ‘홀든 콜필드’는 전체 이야기를 얻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그의 지도 교수 ‘휘트 버넷’의 말로 ‘호밀밭의 파수꾼’ 여정은 시작하게 된다. 책에 대한 사회의 반응에 그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또한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영화감독 대니 스트롱(Danny Strong)은 ‘호밀밭의 반항아’는 책의 전개 방식을 따라가며 충실히 작가의 삶을 묘사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책의 저자이자 영화 속 주인공인 샐린저는 영화에서 “나의 지루한 삶을 통해서 나는 항상 현실보다 허구가 더 진실함을 발견한다. 나는 이 모순을 인지하고 있다. (Through the course of my fascinatingly dull life, I've always found fiction so much more truthful than reality-and, yes, I'm aware of the irony).”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그의 삶과 작품을 관통한다. 어느 대목에서는 홀든 콜필드와 작가는 평행선상에서 함께 달리고 있는 거 같다. 


그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출판함으로써 얻은 것은 작가로서의 명성이 아니었음을 영화를 통해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출판 후 책의 성공에 따른 성취감과 승리감을 누리지 않았다. 오히려 서점에 전시된 그의 책을 보며 어색함을 느낀다. 외적인 성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담감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그의 내면이 보인다. 실제로 사적인 생활은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삶을 추구한 작가의 실재와 일맥상통한다.


언뜻 보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작가가 가진 고통이 만들어낸 작품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가둔 오두막, 즉 자신만의 결계에서 책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을 겪은 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일상생활로 복귀한 후에도 사람들에게서 위선을 느끼며 방황했다. 그래서 그는 은둔생활을 선택해 책 집필에만 매진했다.


중요한 것은 작가는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가 ‘홀든 콜필드’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완성해낸 이유가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고, 사회가 개인에게 부과한 고통을 치유하는 데 있음을 영화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 호밀밭의 파수꾼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사실은 그의 내면의 거울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샐린저가 ‘글쓰기’라는 방식으로 고통을 정면 돌파해 외로운 싸움에서 승리한 한 개인의 이야기였다.


세상 모든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다. 결국 작가가 우리에게 원한 것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자신만의 싸움을 묵묵히 이겨내라는 작가의 바람이 책에 담겨 있는 거 같다. 작가 인생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작품 자체를 넘어서 작가와 사회에 대한 배경지식과 함께 책을 파악하는 읽기 방식을 외재적 관점이라고 한다. 책과 연관된 다른 텍스트와 함께 향유하며 읽어내는 것은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 용어들을 독자 자신의 삶에 먼저 적용해 보라고 전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 자신의 맥락을 고려하며 영화와 함께 책을 읽어보길 권유한다. 이로써 모든 문학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신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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