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전공자로 음악하기 [음악]

글 입력 2024.07.07 07: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안녕하세요, 기타치는 임지우입니다.


 

IMG_0338.jpg

 

 

나는 ‘비전공자’ 기타리스트다. 갓 데뷔한 어느 인디밴드의 리더이자, 드문드문 세션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본래 전공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이다. 전공 따라 취업하는 이 하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기타가 좋아서 하루 종일 붙잡고 살았다. 딱히 뮤지션이 되리라 마음먹어 본 적은 없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무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반인과 음악인의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했다. 함께 발을 담근 지도 모른 채, 그들은 나를 프로의 세계로 안내했다.

 

 

 

비전공자로 음악하기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한 프로듀서의 스튜디오에 방문했다. 첫 녹음에 잔뜩 겁먹었던 기억이 있다. 비전공자에게 레코딩이란 공포 그 자체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기타를 배워본 적이 없다. 스스로의 연주를 평가할 잣대는 관대한 두 귀뿐이었다. 하지만 컴퓨터는 거짓말을 치지 않는다. 심지어 난 화성학을 모른다. 작곡가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분명히 내 실력이 들통나리라 걱정했다.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긴장한 탓에 쉬운 연주도 틀리기 일쑤였다. 가장 난관이었던 것은 영감이 떠올랐다며 계획에 없던 것을 작곡가가 말하기 시작했을 때다. 그런데 건반을 더듬거리는 그에게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본인이 어떤 계이름을 누르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알고 보니 그 역시 음악을 배운 적이 없었다.

 

꽤나 잘나가는 프로듀서도 악보를 볼 줄 모른다니. 묘한 동기부여로 다가왔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학원을 알아보는 등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울 수도 있었다. 직감을 따라 연주하는 것이 재밌었기 때문에 굳이 찾지 않았을 뿐이다. 한 전공생 지인은 내게 “독학하다 보면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라며 실용음악과 입시에 도전할 것을 권유했다. 주변에 수많은 예비, 혹은 현역 연주자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비전공자 뿐만 아니라 전공자들도 다른 학교로 재입학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고민의 본질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전공을 해야 할까?’가 아니다. 그들은 음악을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것이다.

 

 


실용음악과, 무엇이 다를까


 

애초에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만큼 실용음악에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존재한다. 교과서적으로 전해지는 연습법과, 르네상스 시대부터 축적된 방대한 화성지식을 배우게 된다. 전공자들과의 작업에서 종종 오픈북 테스트를 방불케 하는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이들이 소리를 펼쳐놓고 필요한 것들만 골라 쓰기 때문이다. 화성학과 앙상블로 대표되는 시스템이 나침반처럼 쓰이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전공자들이 거쳐가는 커리큘럼이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특히 아티스트를 꿈꾼다면 객관적인 실력과는 별개로 ‘개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연습 환경과 끊임없이 주어지는 실연의 기회 속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찾는 것은 오직 본인 몫인 셈이다.

 

비전공자들은 여기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 레슨을 받지 않는 이상 처음부터 이론이나 메트로놈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덕분에 좋아하는 노래를 카피하는 것이 보통 연습의 시작이다. 연습 방법은 개인마다 가지각색이다. 공통점이라면 무엇을 참고하든 우선 누르고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각의 영역에 가깝다. 그렇게 습관이 생기고, 실연자마다 예측할 수 없는 스타일을 가지게 된다. 물론 개성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필수다. 비전공자들이 실용음악 방법론을 고민하는 이유다. 한국의 실용음악 전공생이라면, 국내 입시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경쟁률을 뚫어낸 장본인들이다. 엄청난 연습량에 기반한 실력을 비전공자들이 따라잡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IMG_0339.jpg

 

 

 

문화예술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지금껏 임의로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구분해 보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음악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다. 좋은 음악에 대한 기준이 모두 다른 것처럼 음악적 역량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작자가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판단은 오직 청자에게 맡겨진다. 음악을 막 시작했을 땐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괜히 기가 죽어있었다. 자격지심일 뿐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일념 아래 지금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다. 문화예술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듯, 음악이 좋다면 마땅히 누구든 뛰어들 수 있다.

 

음악, 그중에서도 인디 음악이라는 비주류 문화계에 속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조언을 구할 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제가 뭐라고요"라는 겸손이었다. 예술에 우열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많은 팬을 거느린, 혹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들도 한결같았다. 조언을 구한다는 것이 무례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지금도 음악을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많은 뮤지션들이 있다. 아마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고민이지 않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등수를 매길 수 없다면 즐기는 것 밖에 더 있는가.

 

 

[임지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