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소개가 아닌, 영화관 소개 [공간]

영화와 관계 맺는 나만의 방식, 그 과정의 매개체가 되는 영화관을 소개하는 독특한 글
글 입력 2024.07.0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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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서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문화예술 에디터가 영화를 멀리하면 어떡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문장의 핵심은 '영화'가 아닌 '집'이다. 나는 오가는 시간과 노력을 감수하고서라도 집을 나서 영화관에 가 영화를 본다. 물론 세상에는 가장 편한 자세로 볼 수 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OTT 플랫폼이 존재하지만, 이는 만성 집중력 부족을 지닌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다.

 

온 심혈을 기울여 영화를 골랐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알림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집고 응원하는 야구팀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염려스러워 알트+탭을 눌러 영화에서 계속 벗어나려 한다. 그렇기에 나는 두 시간 분량의 영화를 산 넘고 물 건너, 반나절 동안 보는 참사를 방지하고자 산 넘고 물 건너 -물은 건너진 않지만, 산 같은 건 진짜로 건넌다- 영화관으로 향한다. 상영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만질 수도 없고 화장실도 주변 관객들의 눈치를 보며 다녀와야 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영화관은 영화가 가장 우선인 공간이며 그것을 방해하는 행위는 철저히 제한된다.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을 특정 공간에 감금하는 행위. 보통 독서실이나 입시학원에 가는 동기이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나 자신을 상영관에 가둔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온전한 나의 공간. 그곳에서 나는 영화를 매개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며 스스로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성찰의 장소가 되어주는 소중한 공간인 영화관, 그중에서도 나의 최애 영화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넓고 어지러운 대로변을 빠져나와 경희궁 옆 골목으로 쭉 오르면 보이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예술영화관. 에무시네마를 당신에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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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찍은 에무시네마 전경.

흐린 하늘 때문에 우중충한 느낌이지만

실제로 보면 세련되고 감각적인 건물이다.

 

 

에무시네마는 3호선 경복궁역과 5호선 서대문역에 인접해 있다. 편한 호선을 이용하면 되나 초행길이라면 서대문역에서 내리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길 찾기에 자신 있다면 경복궁역에 하차해서 굽이굽이 골목길을 지나도 된다. 서대문역에서 내렸다면 경희궁 옆 골목으로, 경복궁역에서 내렸다면 축구회관 옆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드디어 복합문화공간 에무에 도착하게 된다.

 

영화관인 에무시네마가 이 건물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건물의 모든 층이 영화관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2층과 3층이 상영관이고 1층 카페에서 예매와 발권을 받을 수 있지만 지하 공간은 공연장으로 사용되기에 처음 방문 했을때 헤매지 않도록 주의하길 바란다. 예술영화관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지탱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우위를 나눌 수 없지만, 예술영화관 홍보 차원에서 에무시네마가 지닌 특별한 장점 몇 가지를 선정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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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와 카페가 결합된 독특한 북카페.

<로봇드림>의 로봇의 얼굴이 꽤나 귀엽다.

 

 

첫 번째 장점은 1층 북카페다. 에무시네마를 찾은 관객은 시간을 착각해 상영 시간보다 빠르게 영화관에 왔어도 전혀 당황할 필요가 없다. 카페에서 원하는 책을 골라 읽고 에무시네마에서 상영 중인 영화에 모티프를 따와 제조된 음료를 마신다면 누구보다 슬기롭게 잉여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볼 영화가 없더라도 에무시네마의 북카페에 방문해 통유리창 너머로 우거진 수풀을 바라보길 바란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솔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흔들리는 녹음은 혼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특효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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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내 방 사진.

일본 영화 포스터가 무려 네 장이나 붙어있다.

 

 

두 번째로는 포스터, 스티커, 파일첩 등 다양한 굿즈와 7개의 도장을 모으면 영화 한 편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쿠폰을 주는 등 관객 친화적인 상품 제공을 꼽고자 한다. 실제로 굿즈는 예술영화관을 방문하는 관객들의 중요한 동기 요인이다. 인기가 많은 영화의 경우 금세 포스터가 품절되기도 하며, 종류 별로 굿즈를 모으기 위해 같은 영화를 여러 회차 관람하는 매니아 관객도 존재한다.

 

이렇게 영화 굿즈는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진 훌륭한 부산물이다.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를 모아 찬찬히 방을 꾸며 나간다면 평범했던 방도 금세 시네필의 아지트로 탈바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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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상영관 내부

 

 

영화관, 그중에서도 예술영화관은 영화를 담는 그릇의 역할을 넘어 영화를 골라 관객에게 제시하는 편집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의성에 어긋난 영화는 걸러내고, 현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의미의 다채로운 확장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발굴하는 기능. 이러한 부분이 예술영화관의 핵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많은 씨네필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감독 기획전과 장기 상영을 마지막 장점으로 선정하고자 한다. 에무시네마는 신작 영화 이외에도 감독 기획전, 장기 상영을 통해 과거에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를 다시 스크린에 내걸어 다양한 시대에 걸쳐 영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는 필자가 에무시네마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현재는 [중경삼림],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 장기 상영 중이고, [녹색광선], [해변의 폴린]으로 대표되는 에릭 로메르 감독전이 진행 중이다.

 

서촌 근처에서 일정이 있다면, 일정을 잡을 예정이라면 한 번쯤 에무시네마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처음에는 우연히, 누군가와 같이 방문하겠지만 에무시네마의 매력에 흠뻑 젖은 당신은 이내 일상적으로, 홀로 영화관을 찾게 될 것이다.

 

이 글에 미처 적지 못한 장점과 특징도 많다. 광고 따위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정시에 상영한다던가, 서울 한복판이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를 갖췄다는 것들... 하지만 아무리 귀에 대고 떠들어 봤자 가벼운 발걸음을 이기지 못하기에 그저 많은 이들이 예술영화관을 찾아주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나는 영화관을 통해 자기 대화와 성찰을 즐긴다. 그러나 모두 같은 방식으로 영화관을 대할 필요는 없다. 자유분방하게, 각자의 방식대로 영화관과 관계를 맺고 추억을 쌓았으면 한다.



[김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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