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대(舞臺)의 무(無), 무(務)언의 소통 [공연]

공연 취소 시에도 관객과의 신뢰를 지키려면
글 입력 2024.07.0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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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eschlager Gisela>의 한 장면

©Komische Oper Berlin

 

 

지난 6월 27일 저녁, 독일 베를린의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코미쉐 오퍼(Komische Oper Berlin)의 뮤지컬 <Messeschlager Gisela>를 보기 위해 알렉산더 플라츠로 향했다. 코미쉐 오퍼의 공연은 오랜만이었고, 특히 이번 공연은 본 공연장이 아닌 알렉산더 플라츠 앞의 텐트형 원형 극장 ‘Zelt am Roten Rathaus’에서 열려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기차가 연착되어 공연 시간이 임박하자 걸음을 재촉했다. 공연 시작 10분 전이었다. 급히 가방을 맡기고 프로그램을 구매하려 했는데, 안내원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조명 문제로 공연이 15분 연기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여유롭게 행동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로비에서 음료와 빵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거나, 공연장 밖 분수대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어느덧 15분이 지나고, 한 직원이 나와 종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로비로 들어갔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는구나!" 신나는 마음에 얼른 객석 입구로 달려가 줄을 섰다.

 

하지만 잠시 후 관객들이 모이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늘 공연이 결국 취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티켓은 다른 회차로 변경하거나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공연장까지 왕복 3시간 거리에 사는 필자는 차마 새어 나오는 탄식을 막을 수 없었다. "아, 오늘은 왠지 그냥 집에서 쉬고 싶더라니."


이처럼 공연은 종종 예기치 못한 이유로 취소된다. 어떤 이는 필자처럼 공연을 보기 위해 먼 길 발걸음을 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기 위해 어렵게 시간을 냈을 것이며, 또 어떤 이는 비싼 티켓 비용을 겨우 마련해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최 측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관객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지속적인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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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독일 베를린의 Zelt am Roten Rathaus.

공연 시작이 지연되어 사람들이 공연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최민서 에디터

 

 

 

무대(舞臺)의 무(無)대: 공연 취소의 주요 원인들


 

공연이 취소되는 다양한 원인은 크게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나뉜다. 이 중 외부적 요인으로는 천재지변이나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전염병 확산 또는 범국가적 애도가 요구되는 사건사고 등이 있다. 이러한 경우 관객이 취소 사유를 쉽게 납득하기 때문에 불만이 비교적 적다. 따라서 여기서는 주최 측의 책임이 있는 내부적 요인을 위주로 논하겠다.


공연 취소의 내부적 요인은 다시 기술적 문제와 출연진 문제로 나뉜다. 우선 공연 직전 무대 장치에 기술적 결함이 발생했으나 이것이 공연 시작까지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 주최 측은 불가피하게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2020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조명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해 공연을 취소했으며, 2022년 맨체스터 오페라 하우스의 <백조의 호수>는 음향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30분간 지연되다가 결국 취소되었다.

 

한편 출연진과 관련해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첫째로 건강 문제다. 2022년 링컨 센터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당일, 지휘자 주빈 메타(Zubin Mehta)의 건강 이상으로 공연이 취소되었다. 2023년 미국 가수 모건 월렌(Morgan Wallen)은 미시시피 콘서트 오프닝 직후에 목소리 문제로 공연을 취소했다. 취소 사실은 공연장 스크린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되었으며, 관객들은 매우 크게 실망했다.

 

둘째로 가족의 사망과 같은 개인적인 이유다. 2021년 베를린에서는 도이치 오퍼의 주역 소프라노가 갑작스러운 가족의 사망으로 공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체 출연자가 없어 공연은 시작 직전에 취소되었고,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며 티켓 환불이 진행되었다.

 

셋째로 사회적 논란으로 인해 공연 출연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2018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는 주역 테너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출연이 취소되었고, 해당 배역은 다른 테너 가수로 대체되었다. 가수 변경을 희망하지 않는 관객들에게는 티켓이 환불되었다. 주최 측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통해 관객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추가로, 공연 단체가 여러 지역을 투어하는 경우 항공기 결항이나 지연으로 인해 공연장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2019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비행기 결항으로 인해 일본 도쿄 공연에 2시간 늦게 도착했으며, 이로 인해 관객들은 무료 음료와 간식을 제공받으며 기다려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지만, 일부 관객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아티스트를 데려오지 못한 주최 측에 책임을 묻기도 하기 때문에 세심한 배려와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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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eschlager Gisela>는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에 따라

한 회차를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Komische Oper Berlin Instagram

 

 

 

막(幕)을 내리니 막(漠)해지는 관객: 공연 취소 대응 실패 사례


 

오래전부터 고대하던 공연이 시작 직전에 취소되었을 때 관객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서 주최 측의 대처가 미흡하여 크게 비난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뮤지컬 <햄릿>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지만, 제작사는 공연 시작 시간으로부터 50분이나 지난 후에야 공연 취소 소식을 전했다. 제작사는 전액 환불과 함께 관객들이 원하는 날짜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으나, 미흡한 대응으로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해 영국 로얄 셰익스피어 극단의 공연 역시 조명 시스템 고장으로 공연이 중단되었다. 문제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려 공연은 결국 취소되었고, 취소 공지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대응이 미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극(劇)한 상황, 극(極)복의 순간: 공연 취소 대응 성공 사례


 

한편 위기 상황에도 발빠른 대처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례도 있다. 2023년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햄릿>에서는 공연 시작 직전 조명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으나, 즉시 대체 조명을 준비하여 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관객에게는 상황 설명과 함께 사과가 이루어졌고, 공연은 큰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주최 측의 대응이 관객과의 신뢰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또 같은 해 에드 시런(Ed Sheeran)의 라스베가스 콘서트는 기술적 문제로 공연 한 시간 전에 취소되었으나, 빠른 공지와 대체 일정 제공으로 관객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드레이크(Drake)의 밴쿠버 콘서트도 새로운 비디오 장비 설치 과정에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해 공연이 시작 두 시간 전에 연기되었지만, 신속한 대처 덕분에 팬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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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eschlager Gisela>의 한 장면

©Komische Oper Berlin

 

 

 

공연(公演)의 공(空)백, 공(共)감의 시간

: 공연을 취소하고도 관객의 마음을 얻으려면


 

이상의 여러 사례를 통해, 공연이 취소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공연장이나 제작사 측이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주최 측은 근본적으로 관객이 해당 공연에 얼마나 큰 기대와 비용을 투자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관객은 공연을 보기 위해 단순히 티켓 값만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수많은 비용을 공연 관람으로 얻을 수 있는 편익과 교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객이 지불하는 비용에는 티켓값을 비롯해 공연장까지의 이동 비용, 공연 전후의 식사 및 여가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시간적 측면에서는 사전에 공연 정보를 알아보고 예매하는 시간, 공연장까지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공연을 위해 다른 스케줄을 조정하는 노력 등이 들어간다.

 

관객이 이러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또는 작품을 보는 경험이 자신이 지불한 비용 이상의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최 측은 관객이 기대한 가치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 그들이 투자한 비용에 대해 충분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관객의 불만을 해소하고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할 때, 그 방법과 절차가 간편해야 한다. 취소된 공연에 대한 환불 또는 교환 절차가 복잡하다면 관객은 더욱 큰 불만과 스트레스를 느끼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연장 현장이나 온라인에서 즉시 쉽게 환불 또는 교환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한 공지와 친절한 안내가 필수적이다. 이는 어쩌면 전 과정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관객 입장에서 티켓값은 그대로 환불받을 수 있다고 해도 손해 본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공연 참석 여부는 관객의 다른 일정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공연이 불가피하게 취소될 경우 이를 재빠르게 알리고 환불 및 대체 일정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공연 취소 후에도 관객과의 지속적인 소통으로 그들의 불만과 요청을 적극 수용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를 통해 관객과의 신뢰를 유지하고, 향후 공연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다섯째, 비슷한 상황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해당 사례의 원인과 처리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또다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처 방법에 대한 매뉴얼을 확립해야 하며, 차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내부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공연예술 상품은 타 상품들에 비해 돌발 상황에서 고객의 불만을 처리하는 것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이는 공연예술이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만 생산 및 소비되고,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는 경험재(experience goods)의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프로덕션과 출연진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라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각 회차마다 다른 부분이 존재하는 가변성도 지닌다. 따라서 모종의 이유로 특정 회차를 꼭 관람하고 싶어하는 관객 혹은 모든 회차를 반복해서 관람하고자 하는 회전문 관객에게 공연 취소 소식은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서비스 상품의 일종인 공연은 재화를 A/S해주듯이 단순히 상품 교체 혹은 환불과 같은 물질적 보상을 해줌으로써 소비자의 불만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나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에서 주최 측이 앞선 성공 사례들처럼 신속하게 대처하고 관객이 기대하는 보상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면 이는 관객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며, 나아가 해당 공연장 혹은 제작사의 공연 상품에 대한 신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여담으로, 베를린 코미쉐 오퍼에서의 공연 취소 공지 후 한 가지 놀랐던 사실이 있다.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안내가 끝나자, 로비를 꽉 채워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그다지 불평불만이 있는 기색도 아니었다. 직원에게 특별히 따져 묻는 사람도, 짜증 섞인 얼굴을 하는 사람도 없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아마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의 여느 공연장에서 벌어졌다면 자신의 시간과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왜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 걸까?"

 

처음에는 독일 관객들의 반응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이내 그 충격은 그들의 성숙한 태도에 대한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필자가 공연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어 무대 뒤 공연을 만드는 이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알기 때문일까. 공연 한 회차를 취소하는 것은 주최 측에게 어마어마한 손해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공연 취소를 결정하는 것이 관객보다도 아쉽고 마음 아플 것이다.

 

독일 관객들이 보낸 박수에는 기술적 결함을 해결하려 진땀 흘리며 애쓴 이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다음 회차는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는 격려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물론 주최 측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손해를 감당하면서까지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도 헤아려, 과도한 비난은 삼가는 것이 어떨까.

 

 

[최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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