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쟁의 잔혹성, 그 모습을 드러내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7.0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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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작가의 <아버지의 땅>은 전쟁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그 전쟁에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았든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한평생 한 사람만을 기다리게 만든다.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기다리게 만드는 것. 나는 이러한 점이 전쟁의 잔혹성을 잘 드러낸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대체할 수 없는 가족의 부재를 자각할 때마다 느꼈던 상실감과 슬픔이 잘 그려져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던 작품이었다.

 

 

 

1. 과거와 현재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과거서부터 주인공에게 상처로 남았던 아버지의 부재는 현재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그의 곁에 상처로 남아있다. 소설의 과거서부터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는 전쟁이 남긴 상처이다. 전쟁이 가져온 상처는 과거에만 머물러있지 않는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눈빛이 깊고 어두운 아이’가 되어 살았고 어른이 된 시점에서도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어머니와 다툰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남편의 부재로 인해, 노인은 형의 부재로 인해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를 잊지 못한 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아간다. 이렇게 전쟁의 상처는 각기 다른 형태로 개인의 삶에 스며들어 흔적을 남기고 그 인물들의 삶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린다.


다만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천천히 흐름으로써 달라진 것이 있다면 ‘누군가의 부재를 그리며 생각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적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자, 아버지에 관한 대화를 회피하려 든다.

 

소설 속 노인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노인은 전쟁으로 인해 형을 잃고 형의 유해를 찾지 못했지만, 산속에서 발견된 신원 모를 유해를 정성껏 닦고 묻어준다.

 

 

“원통한 넋이니 죽어서라도 편히 눈감도록 해야지, 암. 그것이 산 사람들의 도리요……” 임철우, 『아버지의 땅』, 121쪽.

 

 

노인의 대사를 통해 전쟁이 지나간 후 현재에 남겨진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노인이 유해를 정성스레 닦은 후 치렀던 음복과 중심인물의 어머니가 ‘아침마다 소반 위에 떠서 올리곤 하던 하얀 물사발’은 모두 전쟁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떠난 이들을 그리며 생각하는 일로 귀결된다. 노인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가 묻혀있을 땅을 떠올리는 주인공은 이제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를 그리며 생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 냉혹함

 

소설에서 금속성을 나타내는 것은 ‘총알’, ‘소총’, ‘철줄’이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의 몸과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산속에 묻혀있던 유해는 철삿줄로 온몸이 묶여있었고 삽을 들고 땅을 파던 군인들 역시 소총을 들고 다녔다. 이러한 것들의 속성은 ‘냉혹함’을 드러낸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사람의 몸을 관통했을 총알과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데 쓰였을 소총, 살이 썩을 때까지 몸을 결박했을 철삿줄은 전쟁이 끝나고도 썩지 않은 채 지속되었다. 차갑고 시린 물건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 쓰였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는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모두 이러한 것들일 것이다.

 

 

“금방이라도 쩔걱쩔걱 쇳소리를 낼듯한 철사줄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살을 녹이고 뼈까지도 녹슬게 만든 그 오랜 시간과 땅밑의 어둠을 끝끝내 견뎌내고 그렇듯 시퍼렇게 되살아나오는 그것의 놀라운 끈질김과 냉혹성이 언뜻 소름끼치도록 무서움증을 느끼게 했다.” 임철우, 『아버지의 땅』, 122쪽.

 

 

‘살아 있었다’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는데 결국 살아남은 전쟁의 잔상이 죽은 사람을 놓지 않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후 소설에서 노인이 철사로 된 줄 묶음을 멀리 내던지고 나서야 신원 모를 유해는 비로소 온전한 잠에 들 수 있었다.

 

전쟁의 잔혹함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전쟁 중에서만 보이는 것일까?

 

전쟁의 잔혹함은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다. 더 이상 피가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전쟁의 잔혹함이 사라진 것 또한 아니다. 전쟁의 잔혹함이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죽은 사람들을 편히 눈 감을 수 없게 만들고 그들을 결박시키는 것이라고 읽었다. 나는 금속성을 지닌 물건이 섬뜩하게 그려졌던 장면을 통해 전쟁이 한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얀 눈이 내리며 세상을 뒤덮는다. ‘잿빛의 풍경’ 위로 ‘눈’이 쏟아져 내려 풍경을 하얗게 지워가는 장면은 주인공이 깨달음을 통해 바뀌어나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거대한 산의 몸뚱이마저도 하얗게 하얗게 지워가고 있었다.” 임철우, 『아버지의 땅』, 130쪽.

 

 

위 문장은 어딘가에 묻혀있을 아버지의 땅 위로도 하얀 눈이 내린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눈이 내리면서 어둡고 적막했던 산과 땅은 하얗게 뒤덮일 것이고 주인공은 눈 덮인 겨울의 풍경을 보며 아버지를 그리며 생각할 것이다.

 

 

[김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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