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이라는 박물관의 니케 [미술/전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인생은 승리했다
글 입력 2024.07.0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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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여행은 많은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예기치 않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고, 경유지에 발이 묶일 수도 있고, 경로를 모두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여행과 같은 우리 인생에서도 불확실성은 발생하고 때로 우리는 이것을 실패의 징조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떠난 당신이 파리에 도착한다면 루브르 박물관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방문자들은 모나리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거대한 계단을 오른다. 양방향으로 펼쳐진 넓고 높은 계단은 마치 하늘로 향하는 길 같다.

 

그 계단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은 승리의 여신 니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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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트라케의 니케는 뱃머리 위에 발을 살짝 올리고서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로도스섬의 전사들을 환영하고 있으며, 두 날개를 활짝 펼쳐 앞으로 진격한다.

 

설명할 수 없는 이 조각의 기세와 강인함은 아름다움뿐 아니라 신적인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고개를 든 방문객들은 평생 실존함을 믿지 않았던 여신을 숭배하는 것 같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조각은 기원전에 만들어졌지만, 투명한 흰 천에 비치는 배꼽과 바람에 날리는 망토의 세세한 주름을 보여주는 등 놀라운 기술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리스의 사모트라케섬에서 처음 발견될 때 조각의 훼손은 심각한 상태였다. 이후, 루브르는 승리의 여신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복원해 계단 끝에 위치시켜 그녀를 보려는 모두가 고개를 들게 했다. 그리고 니케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계단을 올라오는 모두에게 2000년 전 전쟁에서 이긴 것과 같은 승리를 선언한다.

 

필자도 계단을 올라 니케를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녀가 선언하는 승리는 사실 나의 인생에 선언하는 승리였음도 기억한다.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파리에 뜻하지 않게 도착했고, 또 누군가에겐 파리가 최종 목적지였으며, 또 누군가에게 파리는 단순히 경유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 앞에선 불시착 여행자들도, 단순한 경유자도 모두 승리자일 뿐이었다.

 

여행과 같은 인생을 사는 당신도, 어디로 떠나든 좋으나 그 여행이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 있음을 믿길 바란다. 니케가 계획 없이 파리에 도착한 여행자들에게도 승리를 선언하는 것처럼 불확실성을 실패의 예고가 아닌 경험 자체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니케가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도 보살피는 것처럼 인생의 작은 기회들도 환영하기를 바란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인생이라는 박물관의 니케를 보러 계단을 오르는 순간일 것이다.

 

 

[김은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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