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박하지만 전부인 세계 - 모리의 정원 [영화]

글 입력 2024.07.0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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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모리의 정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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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지저귀고 풀벌레들이 땅을 일구고 잎새가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원이 있다. 바로 모리의 정원이다.


쿠마가이 모리카즈는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그 명성이 자자해 자국의 문화훈장을 받을 기회까지 얻는 인물이다. 하지만 모리는 명예욕과 물욕이 없어 그조차 거절한다. 모리가 가장 좋아하는 말도 ‘무일물(無一物)’. 그래서인지 덥수룩한 흰 수염과 고깔 모양의 모자와 나무 곰방대, 두 지팡이를 지니고 다니는 모습이 마치 산신 같다.


모리는 30년 동안 자신의 정원을 거의 나가본 적 없다. 그가 하는 일 대부분은 정원을 돌아다니며 생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가끔 식물에게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라 하기도 하고, 고양이에게 “이보게”라며 쫓아가기도 한다. 또 어디서 온 지 모를 작은 돌에게 “어디에서 날아오셨나?”라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정원의 모든 것을 관찰하다 보면 모리는 어느새 연못이라는 목적지를 까먹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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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경이로이 바라보는 모리. 몇 시간을 땅에 누워 개미를 관찰하거나 돌을 바라보곤 하는 그는 주로 ‘사마귀’와 동일시된다. 아니, 사실 정원의 모든 생물과 동일시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게 중 사마귀와 겹쳐 보이도록 하는 의도적인 편집을 자주 이행한다. 왜 사마귀일까.


모리는 어묵 한 조각도 커서 가위로 작게 잘라먹으며, 거동이 불편해 양손에 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이다. 이때 모리가 걷는 모습을 보면 딱 사마귀 같다. 낫처럼 생긴 날카로운 두 앞발을 탁탁 짚고 나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 밖에도 사마귀는 나뭇잎 색과 유사해 제 몸을 쉽게 숨긴다는 특징이 있다. 모리도 제 몸을 무성한 나뭇잎 속에 숨기기도 한다. 마치 한 몸처럼. 그럼 카메라는 모리를 슥- 지나친다.


이 정원은 모리의 지난 30년이자 모리 그 자체이다. 그곳은 모리가 30년간 흙을 파 만든 땅굴 속 연못이 있고, 또 매일 함께 바둑을 두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가꿔온 추억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로운 모리의 정원에 난감한 일이 발생한다. 바로 집 앞에 아파트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이 아파트는 정원에 한껏 쏟아지던 해를 정면으로 가리고 만다.


이쯤에서 다시 사마귀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면, 사마귀의 수명은 대략 1년을 사이클로 한다. 봄 즈음 태어난 사마귀는 겨울에 그 생을 다한다. 그리고 생을 마감한 사마귀가 남긴 알에서 새로운 사마귀가 봄에 태어난다. <모리의 정원>은 사마귀의 생과 같이 ‘소실-재생’을 말한다. 그러한 것을 담은 것이 바로 ‘연못’이다.


모리의 정원은 아파트로 인해 이제 더는 해가 들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리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바로 30년 전부터 땅굴을 파 만든 연못을 다시 메우기로 한 것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리의 정원에 유일하게 볕이 드는 곳 연못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모리는 아파트 건설업자와 소박한 계약을 한다. 모리는 그에게 아파트 건설로 인해 연못을 메우게 되었으니 그 연못 속 물고기를 책임지고 키우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림을 좋아하는 건설업자의 아들에게 보여주고 그리게 하면 될 것이라 한다. 그에 건설업자는 연못을 메우기 위해선 대량의 흙이 필요하니 그 흙과 교환하겠다고 한다.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아파트 건설과 일조권 침해로 인해 불거지는 심각한 갈등 상황보다 마음을 울렁이는 ‘교환’ 상황을 제시한다. 아파트로 인해 연못을 메우게 되어 그에 필요한 흙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건설업자들. 또 어떠한 꾸밈없이 작업자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저녁 식사를 하는 모리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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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는 아내와 바둑을 두며 이러한 말을 한다. “자네는 마치 군인 같아. 이기는 법만 생각하잖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늘 이기는 법만 생각하는 것 같다. 득실을 따지며 서로에게 상흔을 남긴다. 그 자리에 자라날 싹이 있을까. 영화처럼 서로 한 발짝 양보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령 아파트가 완공되고 후지타(모리의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무언가 깨달은 듯 아파트 건물 옥상으로 향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후지타는 옥상에 올라 이제껏 상상으로 가늠하며 그려왔던 정원의 구조를 한눈에 마주한다. 그리고 벅차오름과 함께 그 모습을 촬영한다.


옥상에서 내려다보기 이전까지 모리의 정원은 드넓은 미로처럼 다가온다. 영화 초반에 정원을 관찰하며 모험을 떠나는 모리의 여정을 통해 정원이 그렇게 보이도록 연출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옥상에서 바라본 정원은 생각만큼 거대하지 않다. 정원은 모리에게, 그리고 아내 히데코에게만큼은 넓은 공간이다. 우주보다 넓은 하나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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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는 아귀의 등불을 단 한 남자가 나타난다. (영화 중간중간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등장한다) 그 남자는 모리에게 연못이 드디어 우주와 연결되었다며 좁은 정원에서 벗어나 더 넓은 우주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모리는 거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정원은 저에게는 지나치게 넓습니다. 이곳이면 충분합니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우리 집사람이 더 피곤해질 테니까요. 그게 제일 곤란합니다!”  그에 남자는 알았다는 듯 결심과 초연 그 어느 사이의 표정과 함께 뒤돈다. 그에 모리는 잘 가라는 듯 인사하고, 남자는 등불과 함께 연못 땅굴 아래로 사라진다. 그렇게 연못과 작별 인사를 하고 모리는 잠에서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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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지 않게 된 상당 부분의 해보다 작은 공간의 햇볕을 먼저 생각한 모리. 그 덕에 연못을 메운 흙 위로 싱그러운 새싹이 솟아오른다. 이처럼 소박하지만 전부인 것들이 있다. 모리의 정원은 이 세상의 아주 좁은 공간임에도 모리에게 전부이듯, 작은 연못에도 우주가 담기듯, 모리의 정원에서 박수 한 번으로 이루어진 계약은 소박해 보이지만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던 걸 보게 하고, 새로운 걸 탄생하게 만드는 상호 간의 존중과 교환.

 

그러니까 이 작은 녹음의 우주에 삶의 커다란 가치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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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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