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노 모어 슈가하이

글 입력 2024.07.3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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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하이 


 

요즘 고민이 하나 있다. 사실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 되었지만 또 조금은 현재진행형이긴 하다. 심각한 것은 아닌데 그 고민은 이래저래 일상 속에서 계속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무튼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시도 때도 없이 달콤한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따져보면 군것질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 먹는 일 자체에도 크게 흥미가 없었다. 매끼 잘 챙겨 먹는 일이 일종의 노동처럼 느껴질 정도여서 식사 때가 다가오면 짜증부터 났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마다하진 않지만, 굳이 몸을 움직여서 겨우 '나'를 잘 먹이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군것질은커녕, 대충 음료로 끼니를 때우거나 연명식처럼 시리얼 따위를 말아먹거나였다. 제시간에 하는 식사 외에 무언가를 먹으면 하루종일 몸이 무거운 것 같은 느낌도 싫었다.

 

그런데 요근래는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저 입맛이 좀 도는 시기가 왔나보다 싶었다. 나라고 365일 식욕이 없지는 않으니까. 다만 그 양상이 여태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숨 쉬기도 어려울 만큼 음식을 밀어넣어도 만족스럽지가 않고, 배가 부른 와중에도 단 음식이 자꾸 당겼다. 거의 매일 소화제를 털어넣으면서도 과식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기간이 한 주, 두 주 늘어나고 몇 달이 넘어갔다. 식사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걸 보면서 자각했다. 지금 나는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다.

 

사실 반쯤은 이미 알고 있기도 했다. 지금 내가 음식을 먹는 건 정말 이걸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걸. 분명 일상을 영위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꾸역꾸역이지만 해야 할 일을 했고 또 종종 아끼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때뿐이었다. 홀로 보내는 시간은 눈 앞에 드밀어진 새까만 먹지 같았다. 어떤 글씨를 써도 묻혀버려서,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아지는 종이. 시야가 새까맣게 둘둘 감긴 기분이었다.

 

극도로 무기력했다. 힘들어도 이것을 해내면 성취감이 몰려올 것이란 기대가 아니라 정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 그렇게 민폐를 끼쳐서 남과 어지럽게 엮일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로 무언가를 했다. 책임감보단 강박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즐거웠지만 동시에 내 무기력이 그들에게 해가 될까 자꾸 조바심이 났다. 질려버리겠지, 우는 소리만 하는 사람은. 그러다가도 또 울컥거리는 마음을 참지 못해서 결국 조금 티를 내고 또 후회했다. 아직도 자력으로 내 마음 하나 건져내지 못하고 징징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다. 그러면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이 비겁하게 차올랐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그 무력한 생각에 골몰하는 것이 두려워서 자꾸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리고 싶었다. 예전의 내가 굳이 음식을 찾지 않아도 되었던 건 음식 외에도 들여다보고 싶은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의 나에겐 그런 것이 없다. 암만 들여다봐도 구미가 당기는 것이 없다. 즐거웠던 것들이 점점 즐거웠던 기억으로만 남고 지금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어졌다. 당장의 무료함과 무기력을 견딜 수가 없는데 그것을 쫓아낼 의욕도 생기지 않아서 그저 음식을 그 공백을 메울 재료로 삼았다.

 

자꾸 배달 어플을 켰다. 소비의 짜릿함, 예정된 만족감. 그런 것들을 슬롯 머신 당기듯 자꾸 끌어썼다. 배가 터질 것 같은 감각 덕분에 다른 생각들이 무뎌졌다가, 또 무료함이 찾아들기 시작하면 유튜브에 먹방을 검색했다. 시청 기록을 보면 가관이었다. 감각적인 즐거움은 내 몸으로 바로 느껴지는 가장 확실한 즐거움. 그 중에서도 특히 단 음식은 가장 효율이 좋았다. 아무리 처져도 혀끝의 달콤함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2만원 정도면 그 일차원적인 즐거움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었다.

 

 

  

노 모어 슈가하이


 

(심각하지 않다고 했지만) 꽤나 무거운 이야기처럼 보여 덧붙이자면, 사실 이건 무릇 사람이라면 다들 느낄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무기력은 인생의 동반자 수준으로 매일같이 내 생활에 따라붙었던 것이라 감정 자체가 큰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빈도의 문제는 있을지 몰라도). 당연한 것에는 굳이 적응할 필요가 없는 법이다.

 

다만 이것을 해소하는 방식이 최근과 같은 식습관으로 나타나는 건 나로서도 너무나 낯선 일이라,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산책을 하면 무언가를 동시에 할 수 없으니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졌고, 좋아하던 음악은 질리거나 가끔은 소음처럼 느껴졌으며, 사람들과의 사교적인 대화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다른 즐거운 일들로 내 정신을 쏙 빼놔야 하는데, 즐거운 일들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 기존의 대처법이 먹히질 않았던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습관처럼 생크림 가득 채운 와플을 와구와구 먹었다. 그리고 변곡점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내가 무력하게 음식의 유혹에 당하고 있더라도 할 일은 자꾸 생겨나곤 했다. 그날도 일정을 위해 나갔다가 이후 시간이 뜨는 바람에, 인근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본 참이었다. 한 시간이 채 안 걸려서 도착할 거리였지만 사람에 치이기 싫어 굳이 버스를 탔다. 빙빙 돌아가는 바람에 한 시간 반이 걸렸다. 5분만 걸어도 땀이 쏟아질 만큼 햇볕이 따가웠고, 짐까지 많은 탓에 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밀기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심사는 배배 꼬였구나. 다른 사람 앞이었으면 그런 비아냥도 속으로 삼키고 말았을 텐데, 그날 만난 친구는 굳이 체면치레할 필요 없을 정도로 편한 사이인 터라 좀 못된 말을 농담삼아 던졌다. 친구는 그런 내 꼴을 그냥 웃어넘겨줬다. 네가 그러는 게 하루이틀이냐는 듯이. 언젠가 함께 찾기로 했던 서촌의 한 식당은 내 일정 때문에 또 다음을 기약해야 했지만, 대신 들어간 집 앞의 식당은 기대보다 맛이 더 괜찮았다. 아마 허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웃는 낯이지도 않고, 가려던 맛집도 못 갔지만 괜찮았다. 괜찮지 않은 나 때문에 누군가를 실망시켰다는 자책을 할 필요가 없었고, 또 그런 자책 때문에 모든 게 엉망처럼 느껴져서 주저앉고 싶어지는 일도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카츠를 씹으면서 건조하게 근황을 얘기했다. 나 요즘 상태가 좀 별로라고. 새삼스레 위로를 주고 받지는 않았다. 생활이 녹록지않은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 우리 둘 모두 그저 담백하게 각자의 생활이 갖는 빡빡함을 토로할 뿐이었다. 참 막막하구나 너도, 그리고 나도. 하지만 그렇게 느긋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식사는 참 간만이었다. 앞에 무언가를 틀어두지도 않고, 완벽히 편하지는 않은 상대를 앞에 두고 체할 것 같은 기분으로 턱을 움직이지도 않고, 조금 느린 식사 속도를 남들과 맞추지도 않고, 천천히 음식 한 입 한 입을 즐기면서 먹었다. 우중충한 이야기를 했지만 답답하진 않았다. 적어도 내가 우중충한 상태라는 걸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디톡스 같은 식사를 한 날 이후로는 놀랍게도 강박적으로 음식을 찾는 일이 줄어들었다.

 

물론 아직도 충동적으로 젤리 한 봉지를 먹어치워 버리고 싶고, 기분이 조금 처지면 폭주하듯 배달 어플을 켜 버리는 날이 있다. 다만 내 허기가 음식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조금 더 참아볼 수 있는 힘은 생겼다. 사실 억지로 끌어올린 텐션과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공백을 설탕의 힘으로 채울 필요 자체가 없었으면 하지만... 기질적인 무기력을 영영 떨쳐내진 못할 테다. 또 언젠가는 내 안에 답답함이 가득 차는 날이 오겠지만, 그러면 그때 다시 내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되겠지.

 

약간의 거리감. 내가 조금 괜찮지 않아도 그 사실에 너무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누군가를 앞에 두고 담담하게 나를 내보이는 일. 요근래 그토록 바라던 건 바로 그런 종류의 느슨함이었던 듯하다. 삶의 낙을 하나 둘 잃어가는 기분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나를 다루는 법을 또 한번 알아가는 것도 일종의 재미라면 재미라 칭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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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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