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은쟁반 위의 하얀 하이힐, 나의 유모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7.12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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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형의 매끈한 은쟁반위에 하얀 하이힐 한 쌍이 놓여있는 모습의 작품 <My Nurse 나의 유모>는 서로 다른 오브제와 물질을 이질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으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부각을 나타낸 머레 오펜하임(Meret Oppenheim)의 작업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대표작이다.

 

 

나의 유모.jpg

Meret Oppenheim, My Nurse, 1936/67, metal plate, shoes, string, and paper

 

 

은쟁반 위 하얀 하이힐은 연한 갈색의 밑창이 위를 향하도록 뉘인채 아이보리색 끈으로 서로 묵여있다.

 

다만 힐의 얇고 뾰족한 기둥 끝부분은 둥글한 종이술이 층층히 달려있어 본래 신발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은쟁반, 힐, 끈, 종이의 상이한 물질성의 조합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오히려 그것들을 취사선택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저자성이 강조되는 양상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다양한 물질들을 조합하는 방식은 오펜하임이 당시 파리의 초현실주의 그룹과 함께 활동한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에 첫번째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였고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근대의 이성중심주의에 반발하며 초현실주의 그룹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비이성의 견지에서 자동기술법, 정신분석학 등을 참조하며 무의식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오펜하임 또한 이시기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자코메티, 만 레이 등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초현실주의의 미적 언어를 탐구했다. 오펜하임은 일명 <털로 덮힌 아침식사>로 초현실주의 그룹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오브제.jpg

Meret Oppenheim, Object, 1936

 

 

할 포스터는 그의 저작 「강박적 아름다움 Compulsive Beauty」(1993)에서 언캐니 개념을 통해 초현실주의 작업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언캐니란 프로이트가 만든 개념으로, 억압에 의해 낯설게 된 익숙한 현상이 회귀하는 것으로써 성적인 충동과 폭력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코메티의 조각, 한스 벨머의 인형 등과 더불어 오펜하임의 조각 작업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오펜하임은 이 조합을 통해 무엇을 암시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는 작품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힐의 형상을 통해 유추할 수 있겠다. 하얀 힐은 마치 닭다리를 연상시키며 갈색톤의 밑창 때문에 전체적으로 은쟁반 위에 올려진 통닭처럼 보인다. '나의 유모'라는 제목과 하이힐이라는 요소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여성을 표상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은쟁반 위에 서빙된 여성의 신체는 끈으로 묶여 음식처럼 제공되었다.

 

이 지점에서 오펜하임의 작업을 페티시즘, 에로티시즘, 카니발리즘 등의 개념을 접목시켜 정신분석학 담론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더 깊이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전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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