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먼저 사라지는 것은 나인가, 악마인가 - 등교하는 근식이 [만화]

글 입력 2024.07.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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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불의의 사고를 겪은 이후, 근식의 주변에서는 매주 끊임없는 위험들이 발생한다. 근식은 자신의 피해자인 이웃과 친구들을 구하며 닥쳐온 사명의 정체를 파해쳐 간다.
 

 

웹툰 시장의 확장으로 다양한 웹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리지널 스토리보단 노블코믹스인 팀 프로젝트 웹툰이, ‘회귀, 환생’ 키워드와 같이 주인공의 독보적인 성공을 추구하거나 일명 ‘사이다’ 키워드를 향한 자극적인 소재 추구로 웹툰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이러한 트렌드가 자리 잡은 게 어찌 보면 시장의 당연한 흐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소재의 반복으로 각 웹툰만의 특색이 옅어진 것 같아 아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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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트렌드 속에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색깔을 내세우는 웹툰이나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품 또한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기에, 작가들의 도전을 응원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웹툰을 찾아보곤 한다.

 

오늘 이야기할 웹툰 <등교하는 근식이> 또한 지금의 트렌드를 외면하고, 오히려 트렌드가 외면한 일종의 ‘클래식’을 추구하고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자극적인 현 트렌드 사이에 단비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는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어디에나 있는 근식이


 

<등교하는 근식이>의 주인공 근식이는 2년 전 동물의 형태를 한 ‘무언가’와 만난 후,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는 것을 알게 되고, 2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규칙을 알게 된다.

 

1. 피해자는 반드시 자신의 주변 사람

2. 피해자는 한 주에 다섯 명

3. 하루의 시작은 오전 6시, 끝은 오후 10시

4. 한 주의 시작은 월요일, 일요일은 쉰다

5. 어떠한 사고로도 자신은 죽지 않는다

 

이런 규칙에 따라 자신이 아무리 숨어도 어떻게든 누군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등교를 시작하게 된다. 근식이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주인공에 적합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냉철하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저 남들을 돕고 위하는 ‘선의’를 가진 아직은 미숙한 고등학생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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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의를 가지고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죄책감에 매몰되어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동물이 위험한 순간 손을 뻗는 인물이 자신 때문에 주위의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멀쩡하게 버틸 수 있을까.

 

이러한 그의 모습은 남들을 구하고 감사 인사를 받는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인사를 받는 모든 순간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친구들과 일상 속을 보내면서도 자신이 이런 것을 누려도 되는지 자책한다. 어찌 보면, 그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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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에서 근식이의 상태는 매우 심각한 편이다.

 

가족을 잃었던 사고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이고, 그 시간 사이에 다른 이들을 또 잃은 것은 물론 자신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태이다. 그 전까지 상당히 평범한 삶을 보내다 갑작스레 모든 걸 잃게 된 셈인데, 이 모든 일을 아무하고도 이야기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상태를 이용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상처를 지우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지쳐 바람 앞 촛불과도 같은 상태임을 말한다. 이런 근식이의 심리 상태는 작중 다른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잘 표현되는데, 가족의 흔적을 붙잡고 있거나, 죽은 이의 환영의 모습을 보는 등 아직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도,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상태는 뒤로 미뤄두고 계속해서 남을 구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사람을 망치는 것도 ‘인의’, 사람을 구하는 것도 ‘인의’


 

이 작품에서 근식이와 엮이게 되는 관계는 크게 3가지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근식이에게 주변의 사람이 죽는 대신 불사의 능력을 준 동물의 형상을 한 ‘악마’가 있다. 악마는 단순히 사람과 마주치거나 닿기만 해도 그에게 남의 불행을 대가로 어떠한 능력을 내려줄 수 있다. 이들은 존재 자체가 ‘악’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로 작품에서 가장 큰 비밀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근식이와 이 악마의 관계는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보통의 사람은 이런 악마의 속삭임에 ‘인의’를 내다 버리는데, 근식이는 악마에게 ‘선의’를 보여 남의 죽음을 대가로 한 불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마지막을 장식할 관계로써, 근식이의 발걸음이 어쩌면 ‘선의’를 그대로 돌려주지 않을 수도 있는 세상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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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근식이와 같이 학교를 다리는 친구들이다. 어찌 보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죄책감에 무너져가는 근식이를 가장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태하는 근식이가 처음으로 만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고, 미래와 현명이는 근식이의 비밀을 알고도 그를 위해 그와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이다. 근식이는 이들과 함께하며 잃어버린 일상을 점차 되찾고, 무너진 정신을 다시 세우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게 사람이기에, 불안정한 서로를 기대며 힘차게 시련을 해결해가는 모습에 응원하게 만드는 우정이다.

 

마지막으론, 인외의 존재들이다.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가는데, 보호자라는 등대를 잃은 근식이를 각자의 방향에 맞춰 이끌어주는 이들이다. 물론, 사람이 아니기에 사람을 대하는 법이 서툴러 어색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그를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웹툰에서 악마나 저주와 같은 비일상적인 소재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것을 제외하면 인물,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모두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인물 간의 갈등과 관계는 매우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각자가 미숙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인의’를 버리지 않고 남에게 손을 뻗는 모습이 <등교하는 근식이>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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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세계에서 지금의 트렌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 소재가 트렌드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이기에 잘못하면 독자들에게 외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이야기들 사이에 우리의 일상과 사람의 ‘인의’라는 순수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오히려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읽게 되고 앞으로도 읽고 싶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 사진 출처 : 작가님 SNS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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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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