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전공생의 피노 컬렉션 첫 방문기 [미술/전시]

《흐르는 대로의 세상(Le monde comme il va)》 전시 리뷰
글 입력 2024.07.13 13: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회화, 바느질, 설치,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형식으로 예술과 삶을 매개하는 개념미술가 김수자(1957년생). 보따리를 활용한 작업으로 '보따리 작가'라는 별칭을 가졌다. 피노 컬렉션은 김수자 작가를 "꺄트 블랑쉬"로 선정해 세계적으로 사랑 받아 온 그의 작업 세계를 《흐르는 대로의 세상(Le monde comme il va)》으로 선보인다.

 

"꺄트 블랑쉬"는 '백지 수표'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전시 기획부터 실현까지의 전권을 위임 받은 작가를 의미한다. 신선한 현대미술 소장품과 안도 다다오의 아름다운 건축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피노 컬렉션의 첫 한국인 꺄트 블랑쉬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주말, 전시를 보면서 발견한 몇 가지 재밌는 장면과 전시장에서 느낀 것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KakaoTalk_20240712_190618501.jpg

 

 

높이 9m, 지름 29m - 김수자의 보따리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To Breathe - Constellation (호흡 - 별자리). 김수자는 거울을 통해 (구) 증권 거래소의 커다란 돔 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보따리로 형상화했다. 포토제닉한 바닥 거울은 신체를 대체하며, 타인을 관찰하고 반영한다. 관람객은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천체, 혹은 구체 속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낀다. 여전히 별자리가 보편적인 스몰톡 주제일 만큼,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인에게 이 작품 제목은 그야말로 '먹히는' 컨텐츠다.

 

 

KakaoTalk_20240712_185447595_02.jpg

 

 

난해함의 정점, 개념미술

 

전시장을 속속들이 누비면서 눈에 담은 장면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다. 프랑크푸르트와 파리를 오가며 작업하는 '안네 임호프(Anne Imhof)(1978년생)'의 〈Punching Bags (샌드백)〉.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보여주는 개념미술 작품을 '철통보안'하는 가드의 모습은 어떤 미술 작품보다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앉아 있지 않고 작품에 이렇게나 가까이 서 있는지, 교대는 언제인지, 점심은 먹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따분하고 뾰족한 전형적인 프랑스인의 표정이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KakaoTalk_20240712_185447595_07.jpg

 

 

프랑스의 바늘 여인

 

김수자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유목'이다. 대표작 〈바늘 여인〉은 도쿄, 상해, 델리, 뉴욕을 배경으로 한 4개의 다채널 비디오 작품이다. 단정한 포니테일을 한 흑발의 작가는 번잡한 거리 가운데 가만히 서 있다. 자신을 바늘, 이국적인 세상을 천으로 빗대어 사람들 사이를 꿰뚫고 세상을 잇는다.

 

작은 사각형의 암실의 각 면에 비디오가 배치되어 있어 가만히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주변을 서성이거나 날 지나치는 외국인들에 둘러쌓인다.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세상과 나를 이어보고자 애쓰는 같은 한국인 여성으로서 작품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KakaoTalk_20240712_185447595_04.jpg

 

 

이것은 현대미술인가 관람객인가

 

장장 2시간을 보내고 출구를 향해 가다 또 한 번 카텔란의 작품을 마주했다. 메인 돔 공간의 비둘기 박제는 물론, 2 전시실을 누비던 휠체어 탄 노인들까지. 전시관 곳곳에 존재하던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1960년생)'의 초현실적인 조각과 설치를 보고 나니, 이제 사람도 작품처럼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알고보니 그는 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I...I...I...〉를 집중해서 찍고 있던 관람객이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다 일어서는 관람객의 인기척에 소리를 질러버린 유쾌한 에피소드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KakaoTalk_20240712_185447595_05.jpg


 

파리는 유구한 미술사와 훌륭한 미술관으로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자 미술의 도시라는 칭호를 가졌다. 19세기 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루브르와 오르세, 20세기 미술을 한데 모은 퐁피두 등 막강한 고전 및 근대 미술관과는 달리, 현대미술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땅한 미술관이 없어 아쉬움을 남겨왔다. 그 결점 아닌 결점을 채운 것이 바로 2021년 5월에 개관한 피노 컬렉션. 감각적인 컬렉션과 매번 신선한 울림을 주는 기획전으로 파리 대표 현대미술관으로 우뚝 섰다.

 

직접 방문해 본 공간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트랜드를 적극 반영하는 융합형 미술관의 구조를 표방하고 있었다. 누구든 자유롭게 컬렉션에 대해 논할 수 있도록 진분홍 가방을 멘 직원이 매 전시관을 거닐고 있었고, 종잡을 수 없는 설치 미술을 장엄한 가드가 지키고 있었다.

 

피노 컬렉션은 형식과 관습을 벗어난 자유로운 작품을, 최소한의 규칙과 통제 속에 자유롭게 관람할 것을 보장한다.

 

 

 

컬쳐리스트_김예화.jpg

 

 

[김예화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