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낯섦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글 입력 2024.07.1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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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경험의 축적이다. 아주 납작하게 눌린 그 모습을 길게 펼쳐보면 그 속에는 우리가 반복하는 일상이 들어있다. 어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수십 년 전에도 비슷했다. 미국인들이 “Hi!”라고 손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듯 조선시대 사람도 그렇게 밥을 먹었고, 서양인들이 포크와 나이프로 밥을 먹듯 중세의 서양인도 똑같은 방식으로 밥을 먹었다. 지금에서야 당연한 이 모든 것들도 처음은 있었다. 자연 속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에스프레소 바에 들렸다. 카페는 좋아하지만, 보통 일을 하거나 혼자 시간 보낼 곳이 필요해서 가다 보니 오래 마실 수 있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에스프레소는 진하기도 하고 양도 적어서 마실 일이 별로 없었다. 룽고로 마신다고 해도 아메리카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커피 잔 하나 올려놓고 1시간 넘게 자리를 차지하는건 눈치보인다.  더욱이 요즘은 날이 더워서 세상 모든 뜨거운 것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번에 마신 게 아마 어림잡아도 6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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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Hillier via Unsplash

 

 

스탠딩 바 형태의 에스프레소 바는 나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서 스탠딩 바라니. 무탈하게 운영이 가능할까 싶은 걱정이 먼저 찾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 분이 에스프레소만 가득한 메뉴판을 보고 다시 나가는 손님도 많고, 이렇게 팔아서 장사가 되겠냐고 부질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이 많다는 푸념을 토했다. 주인 분의 마음도 손님의 마음도 이해한다. 스탠딩 바와 에스프레소라는 문화를 아는 나도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익숙함의 반대는 낯섦이고, 그건 곧 불편한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주인 분은 에스프레소와 스탠딩 바라는 문화를 알리고 싶어 운영하는 카페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은 문화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공간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하는 주류 문화에 편승해서 따라가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확실한 자기 취향이 있고, 그걸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 새로움을 가져오려고 노력하는 사람.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것에 굶주린 나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사람이었다.


모든 문화는 처음이 존재했다. 체험과 경험이 문화로 바뀌기 전, 그 첫 시작 무렵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그 처음이 있었다. 어떤 것은 별문제 없이 받아들여졌고, 어떤 것은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커피는 후자였다. 기독교에서 박해받고 이슬람에게 악마의 음료라고 적대시하던 게 지금은 현대인의 3대 영양소 중의 하나가 됐다. 심지어 아메리카노는 대학생과 직장인에게 생명수다. 아메리카노 수혈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인구 당 커피 섭취 비율이 전 세계 1등을 찍는 이 한국에서 커피가 정치적 박해를 받던 시절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낯설어서 무섭다고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짐작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누구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 어떤 맛인지 눈으로만 보고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일단 먹어봐야 알 수 있다. 어떤 일이건 도전해 보고 경험해 봐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거부감을 이겨낸 것들이 지금의 문화다. 다양성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었다. 새로움을 거부하고 멀리했다면 아마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 없는 지루하고 무료한 삶을 반복하는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못해 유지하고 답습만 했을 테니 말이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낯선 대상에게 두려움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모르는 것은 잠재적 위험이 존재한다. 그 위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생존을 위해 학습한 수단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시절은 뛰어넘었다. 두려움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그러니 더 이상 무작정 피하지 말고 도전하자. 겪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때 멈추면 된다. 회피와 외면은 도태만 낳을 뿐 발전과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제, 오늘, 내일, 그리고 100일 뒤까지 모든 날이 똑같다면 한 번 사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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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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