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필립 파레노 주선, ‘목소리’와의 소개팅에 참석하시겠습니까? [전시]

글 입력 2024.07.1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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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스쿨버스 표지. 출처 : 출판사 홈페이지

 

 

'신기한 스쿨버스'는 어린아이를 타깃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친절한 선생님 발레리가 등장해 반 아이들과 함께 누군가의 몸속, 전선 속, 수중 등 다양한 내면으로 여정을 떠난다.


알록달록 색채에 발랄한 그림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전시장에서도 신기한 스쿨버스에 탑승한 것 같은 경험을 누려볼수 있다.


전시장의 형태를 빌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안으로 들어가는 이곳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의 전시 <보이스>다.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7월7일까지 열린 전시로, 현재는 종료했다.

 

 

 

유기체



전시장은 각각의 공간으로만 자리하지 않고, 마치 신체부위처럼 전체로써 하나를 이룬다. 작품 하나하나가 감도 높게 감각을 자극해 마치 몸 속안에 들어와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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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외부에 위치한 작품 '막(膜)'. 사진 직접 촬영

 

 

미술관 입구를 걸어들어가는 길목엔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흙이 가득한 정원을 향해 길게 뻗은 작품 '막(膜)'이 우두커니서있다. 웅웅대는 소리가 귀를 스치고, 구조물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이를 흡수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해당 작품은 전시장의 뇌 역할을 한다. 일종의 송신탑으로서, 전시장 속 신체들에게 신호를 보내주며 관객을 안으로 이끈다.


이 신호는 전시장 곳곳에 '소리'의 형태로 전달되는데, 이에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M1에 자리한 '그라운드갤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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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갤러리 전경, 사진 직접 촬영

 

 

마치 뮤지컬 물랑 루즈를 관람하러 온 듯, 화려하게 반짝이는 네온 사인(작품 '차양'). 그 옆을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조명등.


그라운드갤러리 내부는 초신경처럼 연결되어 있다. 소리를 가장 감각적으로, 연결성이 돋보이는 유기체처럼 그려낸 공간이다.


그라운드 한가운데 위치한 움직이는 벽 옆에는 이따금씩 안무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불청객처럼 공간을 누비다 아무 표정 없이 춤을 추고, 유유히 위층으로 사라진다.


신호가 각각의 작품을 타고 흘러, 안무가의 춤을 따라 에스컬레이터 위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우리의 신체 부위 '귀'가 떠오르기도 하는 지점이다.


바깥의 소리가 안으로, 또 그 안의 빛으로 스며드는 연출이 작가가 전시를 또 하나의 창작으로 대한다는 점을 실감케 한다.

 

 

 

연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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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전시장에 위치한 '눈더미' 작품. 사진 직접 촬영

 

 

전시가 열리는 기간 내내 리움 미술관은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전시를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지만, 그 속의 부속품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눈더미를 병치한 '눈더미'가 그 연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시장 한켠에 가득 쌓인 눈더미는 창문 바깥쪽에 자리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병치 되어있었다. 잠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한 용도 외에는 작품으로서 그곳에 자리하는 연속성을 보여준다.


또 바로 옆에는 하수구를 본뜬 거치대 위로 자그마한 사이즈의 눈사람이 지속적으로 녹아내리는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을 배치해 두어, 계속해서 전시장 속 시점을 뒤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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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전시장의 적색빛 창문. 사진 직접 촬영

 

 

전시에서는 항상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M2 전시장을 둘러싼 창문을 모두 적색의 빛깔로 연출해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술관 안에서만 별도의 시간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제공받는다.


바깥의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미술관 안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눈더미와, 공중을 떠다니는 물고기와, 또 사람의 손길 없이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와 함께 공간에 부유하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공간의 연출을 두고 작가는 '집중력이 부유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렇게 작가는 작품 한 가지만을 두고 사색에 빠지는 경험에서 나아가, 관객에게 공간 전체를 누비며 '전시장'과 '나' 사이 교감의 순간을 선물했다.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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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전시장 블랙박스 내부에서 소리가 흘러나오는 모습. 사진 직접 촬영

 

 

전시는 M1, M2 공간을 이어 외부까지 이어지며 전관을 아우른다. 그야말로 리움미술관 전체를 에워싼 형태의 전시인데, 이 모든 공간을 관통하는 소리가 있다.


이따금씩 '내 이름은'이라는 구절을 읊고 지나가는 소리다. 이는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로 녹음된 작품, '∂A'다.


이 작품은 전시를 관통하는 근본 그 자체다. 미술관 바깥에 위치한 작품 '막'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수집된 서울의 기후, 지면의 진동, 도시의 소음 데이터와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를 조합해, 전시장 전체를 공명하게 만든다. 미술관이 지속적으로움직이고 변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연속성과도 긴밀한 관계를 보인다.

 

이 목소리가 계속해서 해당 구절을 반복해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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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면에 등장한 캐릭터 '안리'의 모습. 사진 직접 촬영

 

 

필립 파레노는 물리적 차원에서의 소리를 표현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것에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이번 주제를 활용했다.


M2 전시장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2층에 올라서면 어느 순간 파란 배경에 '안리'라는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캐릭터에서 모습과 모티브를 차용했다.


해당 캐릭터 역시 작품이다. 제목은 '세상 밖 어디든'으로, 실제 일본의 여러 웹 에이전시가 협력해 철저히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빈 껍데기의 캐릭터안리를 창조해냈다.


제작자는 안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계약서를 작성했고, 이로 인해 안리의 이미지는 그녀 자신에게만 속하게 됐다. 작품은 이러한 가상 세계의 자유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안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최근 크게 퇴색된 저작권법의 현실을 꼬집는다.


필립 파레노와 함께한 목소리와의 소개팅은 우리 마음속에 다양한 감상을 남긴다. 여러분은 어떤 소리와 교감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소통하고 있는가?


 

[김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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