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여름은 필름카메라와 함께 [문화 전반]

필름카메라와 함께한 여름산책
글 입력 2024.07.1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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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불가, 기다림, 흐릿함.

 

디지털카메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필름 카메라 만의 매력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삭제하지도 못하고, 필름을 맡기러 사진관에 가서 며칠 동안 현상되는 것을 기다리고, 그렇게 해서 받은 필름 사진은 화질이 흐릿하거나 뿌옇다.

 

이렇게 불편한 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필름 카메라를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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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필름이 주는 소중한 한 컷


 

사진을 찍다 보면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사진은 원래 많이 찍어서 한 장 건지는 거야.’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는 수백 장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보관할 수 있다. 그래서 찍는 것도 쉽고, 삭제하는 것도 쉽다. 순간, 찰나의 가장 예쁜 장면을 잡기 위해 수 십 번 셔터를 누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베스트 컷만 남긴 후 용량을 차지하는 쓸모없는 사진은 바로 삭제할 수 있다.

 

그러나 필름 카메라는 선택권이 없다. 보통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적게는 27장, 많게는 39장 정도 찍을 수 있다. 삭제는 불가능하다. 찍는 사진마다 필름 한자리를 차지하고, 한 롤을 완성해야 사진으로 만날 수가 있다. 수천 장을 찍을 수 있는 무한성의 시대에 되려 유한한 필름은 존재감이 뚜렷하다.

 

기억하고 싶은 가장 예쁜 장면을 소중하게 한 컷 찍을 수밖에 없다.

 

 

 

선명하게 기억되는 장면들


 

촬영 후, 내가 찍은 장면들이 과연 어떻게 나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남아있다.

 

빠르게 지나가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세상에서 기다리는 설렘을 주는 아날로그 매력은 여전히 대체할 것이 없다. 인화된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며, 당시 찍었던 장면을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색감 보정 기술로 흉내 낼 수 없는 필름 카메라만의 색감 또한 추억을 더 아름답게 기억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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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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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

 

 

초점이 나가도, 흐릿해도, 손가락으로 가려도 괜찮다. 그 순간을 담은 한 장 밖에 없는 사진이라는 이유로 내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좋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담은 것이기에.

 

결과물은 흐릿하지만, 기억 속 필름은 선명히 남아있다.

 

 


올여름은 필름 카메라와 함께


 

여름이 시작되던 6월 초, 선물 받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강아지와의 저녁 산책길을 나섰다. 특별한 날, 기억하고 싶은 시절에만 구입했던 필름 카메라인데, 일상의 장면을 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을 찍어볼까 유심히 관찰하고 살피며 걸었다, 매일 걷던 풍경 속에서 다른 것들이 보였다. 들판에 핀 작은 풀꽃, 산책길 표지판, 금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아 이런 게 있었구나’ 그냥 걸어 다닐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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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반소매 티셔츠를 꺼낼 때쯤, 열대야에 에어컨 리모컨을 찾을 때쯤, 마트에 수박이 등장할 때쯤 ‘여름이 왔구나’를 느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무성한 초록색 이파리, 그 사이로 보이는 설익은 무화과 열매, 바람에 흔들리는 작고 노란 들꽃, 하천에 반짝이는 윤슬, 일상의 장면을 보며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심히 지나가던 일상의 틈 사이로 보이는 여름의 살랑이는 순간들은 너무나 푸르고 반짝이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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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는 곤충채집, 가족 얼굴 그리기, 재활용품으로 만들기 등 유심히 살펴보고, 관찰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물론 숙제의 존재는 우리를 괴롭게 했지만, 되려 그런 숙제 덕분에 그 시절의 여름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여름방학도 없고 방학 숙제에도 해방된 어른이 되었지만, 괴로움도 기쁨도 기억할 거리도 없는 무감각한 일상만이 남은 듯하다. 올여름 여름방학 숙제로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스스로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어느 때보다 계절의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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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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