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재했으며, 존재하고, 존재할 것인 '근대' [미술/전시]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나는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展의 <호텔 아포리아>에 대한 평론
글 입력 2024.07.1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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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적도의 무더운 적란운을 따라 무리를 지은 비행기가 신풍 神風과 함께 날아간다. 그것을 바라보는 얼굴이 사라진 사람들, 아니 얼굴이 지워진 사람들이 있다. 앞선 내용은 올해 6월 4일부터 8월 4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展의 작품 중 하나인 〈호텔 아포리아(2019)〉의 내러티브다.

 

작가인 호추니엔은 싱가포르 출신의 예술이며 좁게는 동남아시아, 넓게는 아시아 전체의 역사와 시대성(특히 근대성)을 탐구하여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호텔 아포리아〉가 전시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 제국주의와 동시대의 자본주의의 제국적 태도를 주제로 삼고,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다중적인 경험 요소가 작용한다.

 

 

  

전시에서의 경험


 

우선 전시장인 스페이스 1에 들어서면 전시 서문의 역사적 무게를 표현하는 듯 무거운 암흑에 저항 없이 노출된다. 암흑이 압도하는 공간 속에서 대형 스크린이 뿜어내는 빛을 향해 자연스럽게 이끌리는데, 이 스크린은 검은 망사 혹은 발이 쳐진 다다미방 혹은 료칸의 구조 속에 놓여있다.


공간은 마치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방의 티브이에서 전시 일본의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십분 간격으로 모든 스크린이 동기화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스크린 모두가 특정 시간대를 동시에 발화하는 순간, 전시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상호작용을 하며 관객은 섬뜩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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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추니엔, 호텔 아포리아, 2019, Photo: Chaelin OH. 아트선재센터

 


 

근대와 현대의 구분, 근대 비판의 필요성


 

전시를 아우르는 테마를 하나로 축약한다면 '근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now)의 시대를 떠올릴 때 근대(modern)보다는 현대(contemporary)를 생각한다. 시기 구분론을 따랐을 때, 아시아의 현대는 대체로 1945년 세계 전쟁이 끝난 뒤로 설정된다. 현대라는 단어는 낡은 것들에서 새로운 미래로 향함을 강조할 때 주로 쓰인다.

 

이러한 구분은 근대와 벽을 하나 놓은 듯이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애초에 이 구분은 과거와 연결된 수많은 현대의 산물을 보면 많은 의문이 뒤따른다. 우리가 그 흐름을 자각하고 근대의 시스템이 가진 한계가 명백해질 때, 우리는 근대의 끝에 도달했으며 바야흐로 포스트 모던의 시기다.

 

포스트 모던이 가진 가치는 우리가 탈근대화 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가져야 하는 비판적인 시선을 생성한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근대는 왜 비판과 함께 바라봐야 할까? 근대는 현재를 이끌게 하고 유지토록 하는 전례 없는 변화를 일으켰다. 근대야말로 현재의 국제법, 군대, 경제, 종교, 언어, 시간의 구분까지 하나로 통합시키며 보편적이고 강력한 체제를 성립하게 했다.

 

하지만 계몽으로부터 출발하는 과학의 시대라는 흐름이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의 시대로 흐르며 근대는 대대적인 개편을 위해 차별과 배제란 도구를 사용했다. 새로운 공동체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만들어진 체재는 근대의 뒷면을 낳았고, 식민주의, 전쟁, 민족주의에서 변모된 전체주의로 형성되어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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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추니엔, 〈타임피스〉, 2022-2023, Photo: Chaelin OH. 아트선재센터

 

 

 

근대의 구축과 포스트메모리(Post-memory)로서의 역사 공유


 

베네딕트 엔더슨은 그의 책 『상상된 공동체』에서 근대 서구 민족주의의 기원을 제시하고 그것이 식민주의를 통해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지적한다. 독일에서 시작된 변증법적 역사관을 일본이 전유하면서 받아들인 결과는 대동아 공영권이란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변모했다.

 

역사는 그의 작업처럼 흐릿한 망사 사이로, 구름의 형태처럼 투과되고 전유된다. 다만 이 흐름은 과거를 통해 학습할 수 있다호추니엔은 근대를 전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아시아의 독특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또한 스페이스1과 2의 영상 설치 작업들은 직접적으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전세대의 공동의 트라우마를 소환하는 기억 방식인 '포스트 메모리(Post-memory)'로 역사를 재해석하며, 현재의 모호하고 실체가 사라진 근대성을 시각화하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역사를 기억해야만 할 때를 수면위로 떠올림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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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추니엔, 〈시간(타임)의 티(T for Time)〉, 2023-2024, 아트선재센터

 


 

근대성과 역사적 성찰의 다각적 탐구

 

전시는 전반적으로 비밀스럽고 어두운 사실을 단순히 시각화하는 것을 넘어서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어둠의 압도감이나 대형 프로펠러를 통한 감각적 체험은 포스트 메모리의 한 방식 같았다.

 

하지만 영상이나 작품소개글에 쓰인 역사는 ‘신풍특공대(이하 가미카제)’를 주로 비추어 근대성의 단편적인 모습만 비추는 듯 했으나 전시의 나머지 부분인 스페이스 2의 〈시간(타임)의 티〉, 〈타임 피스〉와 아트홀의 〈미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2011)을 통해 작가의 관점을 다각적으로 보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텔 아포리아〉는 단순히 시각적 체험을 넘어선다. 그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와 시대성, 그리고 그 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근대와 현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우리의 역사적 인식을 넓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는 우리가 받는 다원론 없는 근대적 역사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현재의 우리가 근대와의 수많은 연결고리를 증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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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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