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에게 미워해라는 말의 의미는 [음악]

사랑의 모순을 담은 말, '미워해'
글 입력 2024.07.1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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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문장


 

누구에게나 아픈 문장이 하나씩은 있다. 길을 걷다가, 노래를 듣다가, 또는 옆자리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문장을 갑작스럽게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이후 그때 그 장면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게 된다.


나에게는 ‘미워해’라는 말이 그런 문장이었다.


첫사랑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였지만, 그렇게 가볍지도 않은 1년. 그동안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온전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된 우리는 피치 못할 상황으로 이별을 말하게 된다. 더이상 서로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의지할 수 없었다. 당시 조금의 여유도 없이 너무 많은 걸 쥐고 있던 나는 놓을 수 있는 것이 그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을 결심했다.


“우리 그만하자.” 정말 뻔하디 뻔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심해 머금었던 말이었다. 유독 마음이 여렸던 너라 길게 고민했었고, 많이 신중했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울음 참는 소리와 “다 이해해, 근데 나 지금 네가 너무 미워.”라는 먹먹한 말뿐이였다. 아팠다. 그리고 미웠다.


자우림 2집에 수록되어 있는 곡, <미안해 널 미워해>는 그래서 나의 마음을 더 울렸다. 가사를 꼭꼭 씹을수록 첫사랑과 닮았다고 느껴졌기에. 담담히, 그리고 고조될수록 더 짙게 내뱉는 그녀의 ‘미워해’가 사무치게 아팠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미안해 널 미워해



기억나지 않아 어젯밤 꿈조차

지우려고 했던 게 아닌데

잠들지 않도록 널 부르며 눈감았지

사무쳐 그리지는 않았지

미안해 널 미워해 이대로인걸

이해해 넌 그렇게 그대로인걸

꿈꾸지 않기를 눈감으며 기도했지

사무쳐 그립지는 않았지

미안해 널 미워해 이대로인걸

이해해 넌 그렇게 그대로인걸


그래 나 널 지우려고 해

널 보내려고 해 이젠 지쳤어


미안해 널 미워해 이대로인걸

이해해 넌 그렇게 그대로인걸

미안해 널 미워해 이대로인걸

어느새 난 빗물에 젖어 슬픈 새

미안해 널 미워해 이대로인걸


- 자우림, <미안해 널 미워해>

 

 

 

사랑의 모순


 

가사 속의 나는 계속해서 미워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죽을 듯이 미워도 결국 온전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랑의 모순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에게 ‘미안해 널 미워해 이대로인걸’은 자꾸만 ‘널 미워해야 내가 편할 것 같아. 그래야 내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애처로운 외침으로 들리는 것이다.


‘기억나지 않아 어젯밤 꿈조차 지우려고 했던 게 아닌데 잠들지 않도록 널 부르며 눈감았지’ 구절도 마찬가지이다. 꿈속에 자꾸 나타나는 너와 그리웠던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지워지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눈뜨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져 버리는 상황. 또 꿈이었구나. 여전히 넌 날 떠나있구나. 나는 또다시 지워지는 꿈을 아쉬워하며 공허함을 느낀다. 이별이라는 현실과 직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매일 잠들기 전 널 부르며 눈을 감는 동시에, 네가 꿈에 나오지 않기를 또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이젠 정말 기억 속에서 지울 것을, 완벽히 보낼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내 사랑과 이 노래는


 

꽤 시간이 지난 지금, 최근 나는 그를 집 앞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많이 보고 싶던 얼굴이라 반가움이 컸는데, 동시에 나를 미워한다고 했던 그의 말이 다시 내 마음을 쿡쿡 찔러 무서워졌다. 여전히 나를 미워할까. 겁이 나지만 꼭 물어보고 싶던 말을 용기내어 건냈다.


“나 물어보고 싶었던 거 있었는데, 혹시 아직 나 미워해?”


“나 너 한 번도 미워한 적 없었어.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해. 나 정말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널 미워하는 게 안되더라, 나는.”


마음이 또 내려앉았다.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이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이 노래가 더 위안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서야 첫사랑과 겹쳐 보이던 이 노래의 의미를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날 아프게 하는 네가 너무 밉지만, 사랑이 남아있기에 자꾸 변덕스럽게도 그 마음이 옅어진다. 너라도 미워해야 내가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사랑하는 내 자신이 빗물에 젖은 것처럼 애처롭기도 하다.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해야만 하는 마음. 미워해. 미워해. 널 미워해. 자꾸만 반복할수록 되려 너에 대한 내 마음의 크기만 더 짙게 느껴진다. 당신에게 ‘미워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안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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