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크린, 오페라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공연]

음악극에서의 영상 기술 활용에 관하여
글 입력 2024.07.1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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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청각 예술(음악), 시각 예술(미술), 언어 예술(문학)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이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도, 두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공존하기도 한다.

 

여러 요소가 결합된 이른바 ‘종합 예술’의 극치로 ‘음악극’을 꼽을 수 있다. 흔히 아는 뮤지컬, 오페라,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통 예술 중에는 창극이 이에 해당한다. 음악극에는 배우(가수)의 노래와 연기, 그들의 의상과 분장, 오케스트라와 같은 연주단의 반주음악, 무대 장치와 미술, 조명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여기에 영상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고, 그 활용도가 점차 증대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작품에서는 영상이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특히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무대에 오른 오페라들을 중심으로 음악극에서의 영상 활용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오페라에서의 영상 활용 유형과 사례


 

오페라에서 영상이 활용되는 방식은 작품마다 제각각이다. 우선 영상이 투사되는 스크린의 위치부터 다양하다. 무대 뒤쪽 벽면에 투사되는 경우, 무대 앞쪽 막에 투사되는 경우, 상부에 매달린 스크린에 상영되는 경우, 그리고 바닥에 스크린이 설치되는 경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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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owanschtschina > ©Monika Rittershaus

무대 위 카메라맨이 유리잔과 배우의 손을 클로즈업해 촬영하고 있으며,

이것이 좌측 상부에 매달린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다.

 

 

영상의 내용과 역할에 따라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극의 배경을 나타내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영상으로, 인물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다. 하늘이나 자연, 건물 등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예로 들 수 있다. 전통적 방식의 무대 장치가 아닌 영상으로 배경을 표현함으로써 극의 사실성을 높이고 표현력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또 극의 서사와 관련된 일러스트나 그래픽이 상영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슈타츠 오퍼 베를린(이하 슈타츠 오퍼)의 < Violetter Schnee >와 < Madama Butterfly >에서는 전면의 망사막에 일러스트 영상을 투사하였고, < La fanciulla del West >에서는 후면의 벽에 극의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영상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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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oletter Schnee > ©Monika Ritters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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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dama Butterfly > ©Gianmarco Bresad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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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fanciulla del West > ©Martin Sigmund

 

 

둘째는 영상이 극의 전개를 이끌어 가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인물이 포함되는 경우다. 이는 다시 두 가지로 세분될 수 있는데, 하나는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장면을 보여주는 유형이다. 주로 무대에 없는 등장인물이 같은 시간에 다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거나 다른 장소에서의 상황 설명을 위한 영상이 상영된다. 이는 사전에 녹화되기도 하고, 공연 중 실시간으로 송출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도이치 오퍼 베를린(이하 도이치 오퍼)의 < Intermezzo >를 살펴볼 수 있다. 1막 제1장에서 주인공 슈토르히와 아내가 싸운 후 무대 위에는 집에 있는 아내의 모습이, 무대 상단 절반을 차지한 스크린에는 주인공 슈토르히가 택시에서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는 모습이 보인다. 슈토르히가 문자를 보내자 무대에서는 여자의 핸드폰 알림이 울린다. 또 2막 제1장에서는 무대 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공연 전 대기실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상단의 스크린에는 공연장 내의 오케스트라 피트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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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mezzo >의 1막 제1장 ©Monika Ritters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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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mezzo >의 2막 제3장 ©Monika Rittershaus

 

 

영상이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른 방식은, 영상으로 무대 위 장면을 확대하거나 관객의 시선과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경우다. 이는 대개 무대 위에 카메라맨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직접 올라가서 촬영하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특정 인물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인물 개개인의 표정 또는 행동을 강조하거나, 특정 사물을 비춤으로써 극의 전개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또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방향, 예를 들어 객석 정반대에서 촬영하거나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촬영함으로써 관객이 카메라 없이는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도이치 오퍼의 < Nixon in China >에서는 무대 위 여러 등장인물 중 중요 인물의 행동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가 적극 활용되었으며, 슈타츠 오퍼의 < Chowanschtschina >에서는 다양한 구도의 카메라 연출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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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xon in China > ©Thomas A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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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owanschtschina > ©Monika Rittershaus

 

 

이처럼 영상이 중심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그 연출 방식은 다시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세분될 수 있다. 먼저 영상의 촬영 방식이다. 앞서 언급했듯, 공연 중 사용되는 영상은 사전 녹화될 수도, 실시간으로 송출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카메라맨과 스태프를 관객에게 보이는 연출 방식도 작품마다 다르다. 보통 이들은 검은 옷차림을 한 스태프 그 자체로 출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부 작품에서는 이들을 극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참신한 연출이 시도되기도 한다. 특히 < Chowanschtschina >에서는 카메라맨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살구색 복장을 입고 극의 진행 전반에 참여하는 연출이 특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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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owanschtschina > ©Monika Rittershaus

 

 

한편 영상 속 인물과 무대 위 인물의 상호 인지 및 소통 여부도 작품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영상과 무대는 두 개의 분리된 시공간으로 존재하여, 각각에 출연하는 인물들이 독립적으로 연기한다. 그러나 두 시공간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반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상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시공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연출도 가능하다. 일례로 슈타츠 오퍼의 < Melancholy of Resistance >에는 영상과 무대의 인물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노래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Staatsoper Berlin_Melancholy of Resistance.jpg

< Melancholy of Resistance > ©William Minke

 

 

 

오페라에서 영상 활용의 명과 암


 

이렇듯 오페라를 비롯한 음악극에서 영상 기술을 활용하는 것의 기본적인 목적은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관객에게 확장된 시청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다. 특히 영상이 중심적으로 사용되는 사례들을 보면, 무대에 직접 구현되기 힘든 장면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연출을 통해 공연이라는 예술 장르가 가진 시공간적 제약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상은 장면 간 연결이 필요할 때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무대 전환을 해야 하는 경우 영상 송출을 통해 시간을 버는 동시에 앞뒤 장면을 더욱 자연스럽게 이을 수 있다.


다만 모든 것에 일장일단이 있듯, 영상 기술의 도입 역시 장점만 지닌 것은 아니다. 우선 영상을 활용하지 않는 공연에 비해 관객의 집중이 분산된다. 특히 극 중 언어가 모국어가 아닌 관객이 대다수인 오페라의 경우, 영상이 없더라도 관객의 시선은 무대와 자막의 두 곳으로 분산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에 영상까지 더해지면 한 번에 제공되는 시청각적 정보가 매우 많아서 극의 진행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관객은 영상으로 인해 색다른 공연을 경험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관람 중 금세 피로를 느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둘째로 영상이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압도하는 경우, 자칫 주객전도가 될 우려가 있다. 물론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일부 장면에서 영상이 주가 될 수는 있지만, 공연 전반에 걸쳐 영상의 비중이 과하게 높은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영상 예술’이 아닌 ‘공연 예술’을 관람하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 Melancholy of Resistance >는 ‘필름 오페라’라고 명명되어 여타 오페라들과 기획 의도 자체가 다르다. 그러나 이를 다른 오페라들과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자면 - 물론 그 영상의 완성도와 연출이 훌륭했지만 - 무대 위 실연의 비중이 조금 더 높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가수들을 통해 직접 객석으로 전달되는 에너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단점이라기보다는 당연한 것이지만, 영상이 쓰이는 경우 기술 오류의 리스크가 있다. 무대 장치나 조명, 음향 등 다른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영상 역시 우발적인 기술 결함 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며, 영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오늘날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7월 12일 < Melancholy of Resistance > 공연 중에는 대형 스크린의 영상에서 1초 정도 지연이 발생했다. 이 정도는 관객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수준이지만, 이것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거나 그 지속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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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lancholy of Resistance > ©William Minke

 

 

 

나가며: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오페라의 새로운 세계


 

오페라에서 영상 활용 비중의 확대 양상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오페라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공연예술로 발돋움하였다.

 

다만 그 활용 방식에 있어서는 영상이 무대 위 극의 전개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동시에 관객에게 신선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연출가와 영상 디자이너, 카메라맨의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도 영상 기술을 통한 오페라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

 

다음은 영상을 적극 활용한 세 오페라의 공식 트레일러 영상이다. 각 작품에서 다채로운 영상 기법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 Melancholy of Resistance >

 

< Nixon in China >

 

< Chowanschtschina >

 

 

*

대표 이미지는

슈타츠 오퍼의 < Chowanschtschina > 중 한 장면.

©Monika Rittershaus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32기_최민서.jpg

 

 

[최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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