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인 누구보다 함께인 우릴 믿어 [공연]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하데스타운
글 입력 2024.07.13 17: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영화와 드라마는 촬영 시 다양한 버전의 연기를 했다 하더라도, 관객이 보는 장면은 수많은 버전 중 감독이 선택한 오직 하나의 테이크이다. 물론 영화도 N차 관람을 통해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쫓아감으로써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겐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그 속에서 새로운 포인트를 찾아내는 재주는 없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다지 아쉽지는 않다. 내겐 뮤지컬이 있기 때문에.

 

나는 뮤지컬을 N차 관람 하는 사람이다. 뮤지컬은 관객이 보는 장면의 연기가 매 회차마다 다르다. 전체적인 내용은 같더라도, 그날그날 배우와 관객들의 분위기에 따라, 배우와 상대 배우 간의 호흡에 따라 극의 흐름이 좌우된다. 어제와 다른 감정의 충돌을 마주하고, 디테일을 찾아내고, 그들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나는 매번 작품으로 들어간다. 공연에 더욱 집중한다.

 

나는 뮤지컬을 사랑한다. 대사를 통해 나의 마음을 울리고, 또 한 번 노래로 나의 마음을 둥둥 두들기는 장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새로운 디테일을 발견하는 순간은 매번 짜릿하며, 대사 한 줄 한 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나와 마주할 땐, 내가 이 극과 더욱 친밀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33391_35781_1454.jpg

 

 

내게 "평생 딱 한 편의 뮤지컬만 볼 수 있다면, 어떤 극을 선택할 거냐?"는 질문을 준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하데스타운]을 외칠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극이 2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왔다. 그 누구보다 하데스타운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7월 12일 총 첫 공연 날 샤롯데씨어터로 달려갔다. 너무 행복하게도 총 첫 공연 날의 오르페우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 박강현 님이라 더욱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2년 전 엘지아트센터엔 하데스타운 특유의 냄새와 뿌연 안개가 객석을 덮고 있었다. 덕분에, 극장에 들어서기만 해도 현실 세계와 분리된 느낌이 들었고, 하데스타운으로 향하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샤롯데씨어터의 하데스타운은 너무나 깔끔하고, 또렷해서 놀랐다. HD였는데 이젠 4K인 것 같은 느낌. 아쉽긴 했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분명 자연스럽게 하데스타운 세계로 들어갈 것임을 알기에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0. 하데스타운에 대하여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를 재해석 한 뮤지컬이다. 추위와 가난을 피해 하데스타운으로 내려간 에우리디케와 그녀를 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향하는 오르페우스. 그리고 사계절 중 봄과 여름은 지상에서 보내고, 가을과 겨울은 지하에서 남편인 하데스와 보내는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하데스타운 연출


 

하데스타운의 연출은 이제껏 뮤지컬계에서 보지 못한 연출이다. 회전 무대와 조명 연출은 관객의 몰입감을 증폭시킨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원형의 회전 장치는 하데스타운을 대표하는 무대 연출 중 하나이다. 중심 원을 기점으로 원형 벨트 2줄이 둘러싸여 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에게 향할 때, 일꾼들이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일하는 모습들을 표현할 때 무대 바닥은 돌아간다. 덕분에, 인물들의 고난과 역경이 시각적으로 확 와닿는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리프트를 통해 지하 세계로 내려가지만, 한국 하데스타운은 무대 뒤쪽의 문으로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를 구분한다. 오리지널과 다른 무대 연출이 극의 몰입을 헤치지 않는다. 어떨 땐 오히려 더 깔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런던 하데스타운을 관람한 직후엔 우리나라에서도 리프트를 활용한 하데스타운을 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리프트는 오직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수단으로써만 사용되지 않았다. 하데스가 올라가서 일꾼들을 내려 볼 때도 쓰였다. 하데스가 하데스타운의 통치자, 왕임을 그리고 일꾼들은 아무 저항도 못 하고 그저 일만 하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직도 런던 하데스가 일꾼들을 내려보던 눈빛과 손짓, 몸짓이 잊히지 않는다.

 

 

 

 

하데스타운의 대표 장면은 "Wait for me"이다. 하데스타운으로 내려간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지하 세계에 가기로 결심한 오르페우스가 "널 향해서" 갈 거라며 다짐하는 대표 넘버이다. 이 넘버의 조명 연출은 감히 세상 최고라고 생각한다. 일꾼들이 한 명씩 조명을 들고 박자에 맞춰 등장한 후 조명들을 천장에 매달고, 객석을 향해 조명을 날린다. 조명들은 진자 운동을 하며 관객석까지 날아오는데, 이땐 정말 압도당한다. 숨도 못 쉬고 온몸이 굳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내 노래가 아름다워 울며 보내 줬어 장벽도 다시 노래 하며 가자"


- Come Home With Me 2 넘버 중

 

 

오르페우스가 하데스타운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노래에 감동하여 장벽이 벽을 열어준다. 하데스타운은 이 장면을 벽이 양옆, 위아래로 열리면서 무대가 넓어지고, 노란 조명이 강렬하게 내뿜는 연출로 표현한다. 춥고, 어두운 지상 세계와 비교되는 하데스타운의 강렬한 노란 열기가 새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출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IMG_3076 (1).jpg

 

 

 

2. 새롭게 돌아온 두 번째 하데스타운


 

가장 눈여겨 보아야할 점은 헤르메스가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젠더 프리란 여성과 남성, 성별에 관계 없이 배역을 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미국과 영국의 하데스타운은 일찌감치 여성 헤르메스가 관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 3월 하데스타운을 보기 위해 영국 웨스트앤드로 떠났고, 여성 헤르메스의 공연을 관람했다. 여성 헤르메스가 이끄는 하데스타운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뮤즈였던 그의 어머닌 한 때는 내 친구였지" 라며 오르페우스를 소개하는 부분에선 '엄마 친구 아들' 엄친아를 소개하는 느낌이 들어 친근하게 다가오기까지 했다.

 

사실 헤르메스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재연 캐스팅이 젠더 프리로 돌아와 매우 반가웠고, 기뻤다. 젠더 프리 캐스팅에 맞춰 "발에 날개 달린 한 남자" 라는 대사가 "발에 날개 달린 안내자"로 바뀐 디테일은 최고다. 여자도 아닌 안내자라니, 정말 헤르메스이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 최초의 여성 헤르메스로 무대 경험만 36년인 배우 최정원 님이 오셨다. 최정원 헤르메스는 강홍석 헤르메스와 최재림 헤르메스의 딱 중간 지점에 있는 헤르메스라고 생각이 들었다. 배우 강홍석 님의 헤르메스는 굉장히 다정하다는 느낌을 받었다. 홍석 헤르메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법을 안내해 주는 것을 넘어,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주고, 심지어 지켜주는 존재다. 오르페우스를 향한 애정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오르페우스의 삶에 깊게 관여하는 헤르메스. 아빠 같은 헤르메스. 반면에 재림 배우님은 형 느낌의 헤르메스라고 생각했다.

 

배우 최정원 님이 표현하신 헤르메스는 안내자라는 제일 기본 역할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동시에 다정함이 새어나오는 신이었다. 냉정하고 카리스마가 있지만, 오르페우스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신. 하지만 다정함을 대놓고 표출하지 않는 신. 최정원 배우님의 강약 조절과 감정 표현은 놀라웠다. 관객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나와 가장 마음이 맞았던 헤르메스였다. 개인적으로 최정원 헤르메스 완전 "호" 였다. 최정원 헤르메스를 강력히 추천한다.

 

 

 

3. 지금 사는 이 세상을 위해


 

 

 

욕심 부리지 않으면 항상 충분할 거라고 우리 잔을 채워주고

함께 그 잔을 높이 들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그리고 지금 사는 이 세상을 위해 즐기며 사는 거야

 

- Livin' it up on top 넘버 중

 

 

 하데스타운은 현재를 즐기며, 현재를 사랑하며, 현재 사랑할 수 있는 것을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4. 혼자인 누구보다 함께인 우릴 믿어


 

하데스타운은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와 차별, 편견 등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 또한 담고 있다.

 

하데스타운 속 나의 최애 넘버는 "If it's true"(그게 진실이면)이다. 지하 세계로 내려와 자본주의의 혹독함과 매정함을 몸소 느낀 오르페우스가 없는 힘을 쥐어짜 내면서, 자아를 잃고 기계처럼 일만 하던 일꾼들에게 용기를 주는 장면을 좋아한다. 이기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권력과 자본 앞에 주저앉았던 미약한 존재들이 본인의 존재뿐만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모습. 그리고 결국에 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현실에 함께 대항하는 모습이 벅차도록 좋다. 혼자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함께 연대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연대를 외치는 하데스타운이 좋다.

 

혐오와 분열이 만연한 세계에서 서로를 믿으며, 함께 한다면 우린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의지가 남아 있다면 길이 있을 거야

길이 있다고 믿어

혼자인 누구보다 함께인 우릴 믿어

함께라면 누구보다 강하리라 믿어

우리는 생각보다 강해

저들보다 수도 많아 소수는 저들이야

 

- If it's true 넘버 중

 

 

 

5. 중요한 것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하데스타운의 결말은 그리스 신화의 결말대로 끝이 난다. 지상 세계에 도착하기 전,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는 결말 그대로 말이다. 헤르메스는 우리에게 말한다. "왜냐고 묻지마 다 와서 왜 그랬었는지". 처음 하데스타운을 관람했을 때, 나는 속으로 "돌아보지 말지. 왜 그랬어." 라며 오르페우스에게 질책 아닌 질책을 했다. 많은 관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점 때문에 하데스타운을 더욱더 좋아한다. 관객들의 생각을 읽고,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극이기 때문에.

 

긴 정적 끝에, 안타까움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순간을 지나 헤르메스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미상관 구조의 연출은 우리를 울리기에 충분하다. 뒤를 돌아본 사실에 대한 절망감, 죄책감, 후회가 흘러나온 오르페우스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헤르메스는 그를 다시 맨 처음으로 돌려보낸다. 오르페우스는 또다시 에우리디케에게 첫눈에 반한다. 나는 아직 촉촉한 눈빛으로 에우리디케를 보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에서, 결말이 어떤지는 다 잊어버렸어도 그들이 서로 사랑했음은 무의식중에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이 보여서 매번 마음이 아리다. 이 때문에 하데스타운을 10번 관람한 나는 Road to hell 1부터 울컥한다. 이번 공연은 저번 공연의 연장선이겠지 하는 마음 때문에. 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모질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밝아질 세상을 보았죠

 

우리 다시 또 다시 부르리라

 

- Road to Hell 2 넘버 중

 

 

"그 순환 속에서 씨앗들은 영글고 사람들은 살아가고."

"땅은 죽어가겠지만, 결국 이 땅은 살아나 태양도 다시 뜰거야."

 

결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지만, 하데스타운을 볼 때마다 결말은 매번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마음 속으로 "이번엔 다를거야, 다를 수도 있어"라고 중얼거리며 오르페우스를 응원했다.

 

우리는 누구나 힘들고 두려워한다. 하데스타운은 만약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실패"를 하였더라도, 다시 하면 될 거라고, 또 다시 힘을 내면 다음 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희망과 응원을 건넨다.

 

 

7C2C9D5E-5ABD-42AE-9F8F-6D0068EBEFCF (1).jpg

 

 

모든 배역이 주인공이 되고, 더 나아가 관객 또한 주인공이 되어 사랑과 연대를 이야기하는 하데스타운이 다시 돌아와 무척이나 행복하다. 하데스타운을 온 마음을 다해 환영한다.

 

 

 

에디터 최서영 태그.jpg

 

 

[최서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