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워할 수 없는 나르시시스트 [만화]

완벽한 그의 불완전한 사랑법
글 입력 2024.07.13 19:3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 전, 습관처럼 볼만한 작품이 없는지 OTT의 바다를 서핑한다. 내 취향을 저격할 작품이라며 자신 있게 선보인 AI 픽 작품들을 건조한 눈으로 훑어본다. 근데 웬걸 유치찬란한 제목의 애니메이션들이 즐비하다. 나를 0과 1의 숫자 조합으로 간파할 수 있는 단순한 인간으로 단정 짓는 것 같은 알고리즘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성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감상 기록을 뒤져보면 여러 주인공에게서 내가 사랑했던 모습이 속속들이 보였다. 작품의 주제나 배경에 따라 조금씩 변주가 있지만 포맷은 비슷하다. 차가운 인상, 못하는 걸 찾는 게 빠른 ‘만능캐’, 실종된 싸가지의 남자주인공과, 주위 공기를 밝게 만드는 여자주인공이 실수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을 보는 러브 코미디. 후자의 여자 주인공은 일반적으로도 인기 있는 캔디형 주인공의 전형이지만, 전자의 남자주인공은 왜 마음이 갈까. 난 왜 저런 밥맛 캐릭터를 좋아할까?

 

요즘은 나르시시즘을 컨셉으로 한 콘텐츠들을 찾아보기 쉽다. 자기애가 강한 모습을 숨기고 터부시하던 과거와는 달리 먼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어필하는 태도가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편집한 나르시시스트들은 미끈하게 정제되어 따라 하고 싶은 스타의 모습을 표상하기에 그곳에서 내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나에겐 만화 속 어딘가 결여된 캐릭터가 콧대 높은 고양이처럼 구는 모습이 더 귀여워 보인다. 이번엔 나의 미워할 수 없는 고양이 3마리를 소개해 볼까 한다.

 

 

 

Cool, Cooler, Coolest 

<사카모토입니다만?>, 사카모토


 

IMG_5019.jpg

 

 

모든 일을 스타일리시하게 처리하는 고교생의 이름은 사카모토. 자잘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쿨함으로 세상을 왕따 시키는 그의 풀 네임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점부터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다. 가끔은 과할 정도로 ‘폼’을 중요시한다. 아름다운 꽃에는 벌레가 꼬이는 법이기에 그를 시기 질투하는 무리가 생기지만 과장된, 하지만 우아한 몸놀림으로 그들을 손쉽게 간파하는 사카모토. 그의 유려한 모습은 결국 그를 미워하는 그룹마저 팬으로 포섭해 버린다. ‘등신 같지만 멋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B급 병맛’ 개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답다.

 

미모, 지성, 유연성(…)의 달란트를 타고난 그에겐 추종자가 많아 어디서든 눈길을 끌며 언제나 의도치 않게 팀 킬을 시전해버린다. 같은 교복을 입어도 유독 맵시가 나고, 검은 테의 안경이 날카로운 분위기마저 더해준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는 예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방법-주로 미인계나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으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버린다.

 

하지만 사카모토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수려한 외모나 뛰어난 재능 때문만이 아니다. 가진 것에 초점을 두고 과시하지 않고, 모두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눈높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도와준다. 그 방법이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과장된 몸짓이라 지켜보는 우리에겐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카모토는 웃길 지 언정 우습지 않다. 자신의 나르시시즘적인 성향을 유머로 승화할 줄 아는 모습이 그를 가장 멋스럽게 만든다.

 

 

 

Can you keep my secret? 

<회장님은 메이드 사마!>, 우스이 타쿠미


 

131.jpg

 


학교에서는 전교 회장직을 맡으며 믿음직한 회장님으로 통하는 미사키는 방과후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는 이중생활을 우스이에게 들키게 된다. 우스이는 비밀을 지켜주면서도 은근히 미사키의 주위를 맴돌며 속을 긁는다. 하지만 미사키가 곤란할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나타나 상황을 정리한다. 똑똑하지만 약점을 가진 여자 주인공과 자기 잘난 줄 알고 능글맞은 남자 주인공의 클리셰적인 순정만화물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우스이와 달리 남학생들에겐 엄한 회장 미사키는 특유의 꼿꼿함으로 주위에 적을 만들기도 한다. 똑 부러진 성격으로 주어진 일을 잘 해내지만, 리더의 자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포용하는 능력도 필요하기에 갈등을 겪는다. 이에 우스이는 미사키를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지나가듯 한마디를 던지며 자리를 비켜준다.

 

이것이 그의 조금은 얄미운 자기애성 캐릭터를 중화시키는 매력이다. 융통성이 부족한 미사키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서도 스스로 깨닫고 무리에 섞일 수 있게 손을 건넨다. 만인의 연인이 아닌, 오직 그녀만을 위한 조력자로서 말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순애는 비과시적이다. 비밀은 간직할수록 달콤한 것처럼.

 

 

 

별똥별에 맞을 확률

<장난스런 키스>, 이리에 나오키


 

IMG_5020.jpg

 

 

태어나고 보니 모든 게 완벽한 군계일학 이리에는 어려운 게 없다. 부유한 집안, 한 번 읽으면 모든 게 기억 나는 두뇌, 곱상한 외모까지 빠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 싸가지는 깜빡 잊어버리셨는지 코토코에겐 한없이 차갑다. 그러나 어느 날 별똥별을 맞고 집이 내려앉은 코토코는 아빠 친구의 집이자 짝사랑하는 이리에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둘은 상극이라 계속해서 삐걱대지만, 각자가 가진 장점이 너무나 다르기에 서로를 채워가게 된다.

 

이리에는 부족한 것이 없기에 인생이 권태롭다. 손수 힘들여 얻은 것이 없으니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소망도 없고, 오히려 소망을 쫓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을 바보 취급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 냉소적인 태도로 늘 일관한다. 그런데 자꾸 실수를 반복하고도 예쁘게 웃어 버리는 코토코가 재앙이라 느낀다. 그런 그녀의 긍정적인 태도가 이리에의 삶에 변곡점이 된다.

 

너무 많은 걸 가져서 아이러니하게 의욕이 없는 그가 코토코라는 강렬한 태양을 만나 녹아내리는 모습은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 타인에게 준 상처에 대한 약간의 징벌적인 효과와 함께 몸만 커버린 그가 정신적으로 성숙해 간다는 사실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재앙인 줄 알았더니 마음에 박힌 별똥별이란 걸 인정했을 때 더 빛이 났다.

 

*

 

과시는 지독한 콤플렉스의 반작용이다. 자신을 태양계의 중심으로 굳게 믿고 있다면 다시 주위를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밤하늘 위 먼지 같은 점에 애정 어린 이름을 붙여 준 목동이 없었다면 아무도 별을 올려다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를 찾아 열렬히 지지해 주는 상대방이 있어 오늘도 내가 더 빛날 수 있다. 그 사실은 잊지 말고 반짝이자. 이젠 그가 나라는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을 차례다.

 

 

[김영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