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하철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사람]

글 입력 2024.07.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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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마지막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종강 직전, 나는 방학 때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학교에서 주관하는 산학 실습 인턴에 (다소 급하게) 지원했고, 최종 선발이라는 너무나도 감사한 결과를 얻었다.

근무지는 서울이었다. 그중에서도 강남. 맞다. 출퇴근길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지하철들을 타고 다녀야만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모두 집에서 도보로 20분이 안 걸리는 곳에 다녔던 나는, 대학교가 슬슬 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던 시기가 되어서야 대중교통 등하교를 처음 겪어보았다.

나는 인천에 살고 있었고, 내가 다니는 학교는 경기권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기숙사 생활도, 자취도 하지 않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지하철로 편도 2시간이 넘는 긴 여정을 떠나야만 했다.

내가 타는 지하철은 수인분당선이었고, 1호선이나 2호선처럼 수요가 많은 열차가 아니어서 지하철 치곤 배차 간격이 꽤 있었다. 9시 수업을 듣기 위해선 6시 30분쯤에 집에서 나와야 했고, 지하철 선로에 시간을 버리면서 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침울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몇 가지 좋았던 점은 앉아서 갈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앉아서 가는 동안 이것저것(미리 휴대폰에 다운 받아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보기, 메모장으로 과제하기, 부족한 잠 마저 자기 등)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도 웬만하면 앉아서 오고 갈 수 있었던 게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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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평화로운 대중교통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이번 방학이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겨울이 아닌 여름 방학 말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더운 날씨에 만원 버스, 만원 지하철을 거쳐 강남으로의 출퇴근이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출퇴근길 지옥철 탑승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타왔던 모든 만원 지하철은 다 가짜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꽉꽉 들어찬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있다. 당연히 앉아서 가는 건 상상도 못 한다.

그렇게 사람이 꽉 차 있는 지하철에 타 출퇴근을 하다 보니 특이점이 생겼다. 휴대폰을 잘 안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끼리 너무 붙어있다 보니 휴대폰을 편하게 들어서 사용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출퇴근길의 내 휴대폰은 그저 노래를 들려주는 용도로 사용된다.

휴대폰을 보는 대신 내가 택한 것은 ‘사람 관찰’이다. 출퇴근길 지하철이 나를 너무나 지치게 하는 요소였기에 나는 매번 텅 빈 눈으로 지하철에 타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휴대폰도 하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변에서 함께 부대끼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다른 직장인들도 내 눈과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다들 공허한 눈으로 영혼 없이 손잡이를 잡은 채 서서 사람들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따라 휘청거리는 콩나물 같은 모습이었다. 너무 더워서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건가 싶을 때쯤 믿기지 않는 방송이 나온다.
 
“우리 열차 냉방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게 된다. 편하게 입어도 더운 날씨인데, 지하철 안에는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얼마나 더울까’, ‘이렇게 출퇴근을 몇 년간 해오셨을까’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그런 분들을 보면 나의 마음속 투덜거림이 좀 잦아들게 된다. 지하철에서 매일 같이 마주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 고된 출퇴근길을 겪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겪는 이 잠깐의 고생이 그들에게는 매번 반복되는 당연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여름에는 긴 와이셔츠에 불편한 바지를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리고, 비가 올 때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든 채 끈끈한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며, 겨울에는 꽁꽁 싸매 둔하고 무거운 몸으로 지하철에 타 긴 시간을 서서 간다. 진이 다 빠진 채로 회사에 도착해 일을 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다시 또 콩나물 지하철에 타 집에 오고, 씻은 뒤 저녁을 먹으면 눈꺼풀은 무거워진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이것을 반복.

그래서 나는 출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출퇴근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는 ‘지옥철’이라는 표현도 자중하겠다고 다짐했다! 단지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에 그런 표현을 붙이는 게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일도 지하철에 타 많은 사람들을 마주칠 것이다. 그 지하철에 타온, 타고 있는, 탈 모두가 다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가 생기 있게 빛나도록 만들어줄 (취미, 여가 생활 같은) 행복한 요소들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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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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