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야성과 광기가 점철된 배우의 세계를 그린 명작 - 유리가면 [만화]

글 입력 2024.07.1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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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만화의 세계는 꽤 흥미롭다. 이제는 누가 봐도 구시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소재와 대사가 가득함에도, 그 만화가 주는 강렬한 에너지만큼은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다. 시대를 아우르는 명작이란 그런 것일까.


만화 <유리가면>은 전형적인 고전 만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당히 폭력적인 교육 방식, 나이 차이가 크면서도 여주인공에게 유독 까칠한 남주인공,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천재성을 갈고 닦아 성공의 가도를 걷는 여주인공. 객관적으로 하나하나 따져 보면 비인륜적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는 시련의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 만화를 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일까?

 

 

 

1. 아무것도 아닌 나, 그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


 

이 작품의 주인공 ‘기타지마 마야’는 중국집에서 일하며 얹혀사는 가난한 여학생이다. 실수투성이에 덤벙거리는 성격에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은 물론 엄마까지 그녀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로 취급한다. 그래서인지 마냥 밝아 보이는 모습 뒤로 위축된 성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과거 유명한 여배우였던 ‘츠키카게 치구사’는 ‘마야’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연기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배우’라는 세계를 보여준다. 원래 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보는 것을 좋아하던 ‘마야’였지만, 관객이 아닌 배우로 서게 된 무대는 ‘마야’에게 전혀 다른 강렬함을 안겨준다.


배우는 수천, 수만 개의 ‘유리 가면’을 쓰는 존재. 그저 평범한 소녀인 ‘마야’도 무대 위에서는 귀족이 될 수도, 혹은 유명한 소설 속 주인공이 되거나 심지어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무채색의 ‘마야’ 앞에 펼쳐진 다채로운 세계. 그것은 ‘마야’에게 황홀경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사를 외우고 무언가를 기민하게 포착하여 모방하는 능력이 뛰어난 ‘마야’의 재능이 ‘츠키카게’의 가르침과 여러 혹독한 시련을 거치며 마치 다이아몬드를 갈고 닦는 것처럼 점차 빛나게 되고, 이후 ‘무대 광풍’이라고 불릴 정도의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배우가 되는 성장물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유리 가면>의 주요 매력 중 하나이다.

 

 

 

2. 전혀 다른 환경의 두 소녀가 걷는 길


 

반면, ‘마야’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히메가와 아유미’라는 소녀가 있었다. 유명한 감독인 아버지와 유명한 여배우인 어머니를 둔,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온 소녀. 늘 모두에게 부러움을 받는 소녀.


부모의 유명세와 재능을 물려받아 이미 스타 배우로 활약 중이었던 ‘아유미’는 ‘마야’를 만나게 되고, 그녀 또한 ‘마야’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는다. ‘아유미’는 ‘마야’가 가진 무한한 천재성과 몰입력을 부러워하고, ‘마야’는 ‘아유미’가 가진 부족함 없는 가정환경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두 소녀는 서로에게 라이벌일 뿐만 아니라, 서로를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무대의 소중함, 그 무대에 서기 위해 겪어야 하는 시련,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광기와 에너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서로밖에 없었다. 최종 관문이자 모든 여배우의 꿈의 작품인 <홍천녀>를 두고 둘은 서로를 끌어내리기보다 오히려 서로를 격려함과 동시에 자신의 실력을 쌓아나가며 ‘선의의 라이벌’ 구도와 빛나는 우정 관계를 보여준다.

 

 

 

3. 야성과 광기로 가득 찬 황홀경


 

나는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 계속 언급할 수밖에 없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바로 ‘야성’과 ‘광기’. 이 단어는 배우의 세계뿐만 아니라 <유리가면>이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두 소녀가 자신의 실력을 쌓아나가고 각 작품 속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한 과정은 이성의 영역과는 먼 편이다. 밤을 새워가며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연습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지’를 연기하기 위해 아예 집을 나와 길거리에서 일상을 보내거나, ‘헬렌 켈러’를 연기하기 위해 눈과 귀를 막고 일상생활을 보내거나, ‘늑대 소녀’를 연기하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는 등 누가 보기에도 위험천만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실감 나는 움직임과 감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을 불사르는 두 배우의 모습은 작품 속 주변 인물과 관객뿐만 아니라 만화 너머 독자들까지 소름이 돋게 만든다. 그것은 무언가를 단순히 묘사하는 ‘연기’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미 그 캐릭터가 되어버린 ‘물아일체’의 영역이었다.


<유리가면>의 광기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순정 만화 같은 그림체에도 있다. 분명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순정 만화의 그림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만화 속 캐릭터들이 몰입하는 모습, 희노애락을 연기하는 모습, 고통을 겪는 모습을 굉장히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연극’과 ‘배우’가 소재인 이상 만화 내에서도 다양한 작품의 연극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각 연극의 스토리를 만화 내에 자세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전개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심지어 그 연극들의 대부분이 작가가 직접 창작한 극중극이라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오히려 이를 애니메이션화한 작품들이 그 긴장감을 담아내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


만화 <유리가면>은 단행본으로도 50권에 달하는 긴 분량을 자랑한다. 나도 그나마 애니메이션 시청과 병행하여 내용을 이해했을 뿐, 만화의 모든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심지어 이 만화는 미완결의 작품이다. 1976년에 시작되어 2012년까지 약 35년 동안 연재하였지만, 이후 10년이 넘는 장기 휴재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작품의 최종 장과도 같은 <홍천녀> 에피소드가 시작되기 직전 휴재가 시작되어 독자들의 궁금증과 아쉬움이 상당할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버전에서는 <유리가면>의 결말까지 다루고는 있지만, 원작의 분량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적은 회차 때문인지 원작이 담고 있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광기를 담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크다. <유리가면> 속 두 소녀에게도, 독자에게도 여전히 미지의 존재로 남아 있는 ‘홍천녀’는 과연 언제쯤 베일을 벗을 수 있을까.

 

 

[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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