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새로 산 물건이 부서졌다

글 입력 2024.07.15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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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니와 기차를 타고 가까우면서 먼 곳에 다녀왔다. 기분 좋은 여행이 아니라 일종의 장정에 가까운 목적이었다. 대충 상황을 말하면 이렇다.

 

새로 산 물건에 문제가 생겼다. 당장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다. 만지면 소리가 나는 시끄러운 상품이기에, 전날 택배로 도착한 상품을 아침에 뜯어 봐야 했다. 아침에 눈 뜨기 무섭게 상품을 만지며 설레하던 기쁨은 삼십 분을 가지 못했다. 상품을 잘못 만져 부순 것에 가까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는 허망망을 감추지 못했다. 부서진 것을 보고 있으니 꿈인가 싶기도 하고, 모든 생각이 사라지기도 했다. 정신을 차린 후 상품 판매처를 통해 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았고, 연락을 해 보니, "수리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걸리는 게 있었는데, 수리 비용에 배송비를 합치면 그 금액이 상품 값에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꽤나 떨어져 있지만 직접 찾아가 수리를 받아오기로 했다. 무게가 있는 제품인지라 가족 중 한 명과 함께 했다.

 

수리 예약이 오전이 잡혀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잠이 많은 나의 가족은 집에서 나가기 직전까지 꼭 가야 하느냐고 투덜거렸고, 기차에 앉자마자 다시 잠에 들었다. 역에 도착해서 상품을 수리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여섯 시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언니와 단 둘이 어디로 간 오랜만의 사건이었다. 둘이 어디를 갈 일도 그리 많지 않지만, 항상 누군가가 적어도 하나가 따라 붙곤 했으니까. 언니와 그날 한 것은 상품이 수리되는 동안 날씨에 대해 말하기,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백화점 쇼핑하기, 무거운 물건을 보며 무겁다고 하소연하기 따위였지만, 그게 나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 마음인가 싶기도 하다.

 

새로 산 물건을 고장낸 게 처음에는 그저 슬펐다. 아무 생각 없이 만져댄 내가 미워지기도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까지도 귀찮았다.(언니만이 아니라 나 또한 그랬다.) 물건을 고치고 돌아와서는 뿌듯했고, 돌아와서는 며칠 자지 못한 피로가 사라지도록 잤다.

 

좋지 않은 일이 꼭 끝까지 좋지 않은 일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그날 했다. 결과적으로 물건을 잘 고쳐졌고, 귀찮음은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의 일이었으며, 돌아오며 몸에 묻어 있던 피로도 이제는 형체가 없다. 무엇보다 언니와 함께 한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한 게 없는데도.

 

객관적으로 이날 일은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고, 따지자면 별 일 아닌 하루에 불과하다. 이러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내 일상이 무척 지루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가지 알 수 있다. 이날의 일 속에서 나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두 가지를 다 얻었다는 것. 최근에 이와 비슷한 좋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도 긍정적으로 바꾸어볼 길을 모색해 보고 싶어졌다.


주제에서 조금은 벗어난 이야기지만 언니에게 한 번 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겠다.

 

 

[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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