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할 자격, 사랑할 조건 - 뮤지컬 '카르밀라' [공연]

이런 내가, 그런 너를 사랑해도 될까?
글 입력 2024.07.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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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플레이와 라이브러리컴퍼니가 공동제작한 뮤지컬 '카르밀라'가 지난 6월 11일 화요일 막을 올렸다. 뱀파이어 창작물의 시초로 여겨지는 동명의 소설 '카르밀라'(셰리던 르파뉴 )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극은 뱀파이어 '카르밀라'와 인간 소녀 '로라'의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카르밀라에게 남다른 집착을 보이는 또 다른 뱀파이어 '닉', 그리고 로라를 동생처럼 여기며 보호하려 애쓰는 슐로스 성당의 부제 '슈필스도르프'도 함께 무대를 채운다. 네 명의 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카르밀라'의 이야기는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1관에서 9월 8일까지 이어진다.

 

 

뮤지컬 카르밀라_메인포스터.jpg

 

 

 

알 수 없는 이끌림, 사랑에 빠지다


 

공연은 카르밀라가 로라를 처음 만나던 순간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성에 들어온 어린 로라에게 카르밀라는 단호한 축객령을 내리지만, 순수한 로라의 편견 없는 호의에 이내 애정을 느끼게 된다.

 

인간을 해치고 '흡혈'해야만 하는 뱀파이어의 본성에 회의감을 느끼는 카르밀라와 달리, 더 오랜 세월을 뱀이어로 살아온 닉은 흡혈 행위에 대해 어떠한 거부감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저도 인간인 척 인간들을 속인 뒤 그들을 공격하는 행위에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흡혈귀라는 정체를 알아버린 어린 로라를 여느 인간처럼 처리하려던 닉으로부터 로라를 보호하기 위해, 카르밀라는 닉의 곁에서 쭉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로라를 떠난다.

 

10년 후,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 마차 사고를 겪은 두 자매가 로라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사실 이는 카르밀라를 데리고 로라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한 닉의 계략이었다. 로라는 기억을 잃어 카르밀라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에게 왜인지 모를 끌림을 느낀다.

 

무대 위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문득 의문이 드는 시점이 있었다. 세상에 염증을 느끼다가도 로라에게는 마냥 약해지는 카르밀라의 모습이나, 카르밀라를 자기 곁에 두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 애초에 닉은 카르밀라를 불멸의 뱀파이어로 만든 장본인이다 - 닉의 집착, 그리고 마냥 카르밀라가 좋다며 다가가는 로라의 사랑에서 이유를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인물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감정의 기류만을 포착할 뿐, 어느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는 않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왜 사랑에 빠졌을까?"라는 질문을 되뇌며 인물을 눈으로 좇다 보니 어쩌면 그것이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말 그대로 이유 없는 이끌림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 좋아하게 되어버린 후에야 좋아할 이유를 찾는다고들 하지 않나.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이들이라고 생각하니, 곧 그들이 '왜' 사랑하는지에서 '어떻게' 사랑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사랑을 시작해버린 세 인물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 감정을 표출한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카르밀라, 닉, 로라 모두 아주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르밀라는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밖에 없는 본능을 가진 흡혈귀가 된 자신의 처지를 원망한다. 인간인 로라를 사랑하여 그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어하고, 자신이 이성을 잃고 로라를 해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카르밀라는 흡혈귀라는 정체를 들키면 로라에게 거부당할 것이라 생각해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고, 로라를 사랑하면서도 너무 가까워지기를 꺼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림받을 미래가 두려운 것이다.

 

한편 닉은 카르밀라를 곁에 붙잡아 두기 위해 그를 강제로 뱀파이어로 만든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카르밀라를 사랑하는 만큼 저 역시 사랑받고 싶은 마음보다는 소유욕이 강해보인다. 그를 곁에 두고 '통제'하고 싶어하며,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더라도 자신을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로라는 이른바 가장 '평범한' 방식으로 사랑한다. 괜히 마음이 가는 카르밀라에 대한 호감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었던 건 아마 로라가 인간이고, 상대방도 인간일 것이라 생각한 덕분일 테다. 하지만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쉬운 사랑으로 일단락시켜서는 안 될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카르밀라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아파한다. 카르밀라의 정체와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드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끝내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단단한 인물이다.

 

 

 

사랑할 자격, 사랑할 조건


 

카르밀라와 로라의 사랑에는 '뱀파이어'라는 정체성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뱀파이어는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위험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가까이해서는 안 되고 사랑해서는 더더욱 안되는 이들이라는 인간들 사이의 통념으로 인해 카르밀라는 배제와 핍박의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닉은 애초에 인간과의 동화를 바라지 않지만, 인간을 사랑한 카르밀라에게는 종족의 장벽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잃고 평생을 두려워하던 흡혈귀라는 존재가 카르밀라라는 것을 알게 된 로라는, 상대방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마냥 자신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부족한 내가 감히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단념하기도 하고,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기도 한다. 내가 누구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가 사랑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하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조건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한 고민의 해답으로 이 공연의 마지막 장면을 제시하고 싶다. 카르밀라와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뱀파이어를 처단하겠다던 슈필스도르프는 극의 마지막에 신에게 "살아있는 모든 것에 축복을 내려달라"라고 기도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뱀파이어도 포함된다. 그렇게 아끼던 로라가 카르밀라와 함께 뱀파이어로 살아가기를 선택하였기 때문일 테다.

 

나와 다른 이들을 구분하는 울타리는, 이미 소중한 누군가가 그 너머에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사라지는 허상이다.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축복이, 내 친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일 수도 있는 모든 이에게 축복이 내리길 바라본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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