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뱀파이어라는 정체성 - 뮤지컬 카르밀라

주변화된 정체성으로서의 뱀파이어 독해하기
글 입력 2024.07.1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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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카르밀라_메인포스터.jpg


 

지난 6월 11일 네버엔딩플레이와 라이브러리컴퍼니의 공동 제작 뮤지컬 <카르밀라>가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개막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뱀파이어 소녀 '카르밀라'와 순수한 인간 소녀 '로라'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을에서 10년 전과 같은 흡혈귀의 공격이 발생하자, 로라의 오랜 친구이자 독실한 신자 슈필스도르프는 흡혈귀의 뒤를 쫓고, 카르밀라는 정체를 숨긴 채 로라와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며 닉은 그런 그들을 질투심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카르밀라>는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작품의 문법, 일종의 클리셰에 충실한 구성을 보였다. 뱀파이어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묘사, 인간과 뱀파이어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설정. 그러나 이 작품이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과연 무엇이 클리셰인가?'를 관객에게 되묻는다는 점이다. 작중 "뱀파이어가 마늘을 싫어한다던가 인간을 홀리는 마법을 부린다가 하는 소문은 다 거짓말이에요"라는 닉의 대사처럼, <카르밀라>가 뱀파이어 클리셰를 대하는 태도는 충실한 차용과 적극적인 해체라는 이중성을 띤다.

 

 

04. 뮤지컬 카르밀라_유주혜 이재림.jpg


 

<카르밀라>가 던지는 질문은 비단 극 중 클리셰적인 모티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카르밀라>의 소재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근대의 중심주의적 사고를 해체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닮아 있다. 근대 서구 사회는 이성, 합리성, 근대성, 거대 담론을 중심으로 모더니즘을 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심에 반하는 것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중심이 주변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근대 사회는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적 구분조차 인위적인 권력 작용에 의한 것임을 깨달은 이후의 사조에서는 그러한 구분 자체에 도전하며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념을 끊임없이 의심하였다.


작중 카르밀라는 뱀파이어이자 여성 퀴어라는 교차된 정체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교차성에 집중하여 논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이는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성이 지극히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따라서 여성 퀴어라는 정체성이 불러일으키는 중첩된 사회적 맥락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 내에서 둘의 사랑이 이토록 간접적으로 표현된 것은, 아마 카르밀라가 아주 어릴 적부터 로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설정이 자칫 소아성애적인 해석으로 흘러갈 수 있으며, 오히려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은유로 남겨 두는 편이 둘의 순수한 사랑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카르밀라_공연사진 (1).jpg



여성 퀴어는 오랜 기간 남성과 이성애자라는 중심부에 밀려난 주변부에 위치해 온 정체성이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뱀파이어 역시도 그러한 주변부의 정체성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뱀파이어를 그린 여러 작품을 떠올려 보면, 뱀파이어는 넘치는 힘을 제어하지 못해 인간을 살상하고, 그리하여 인간 위에 군림하며 공포에 떨게 만드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물론, <카르밀라>는 뱀파이어 정체성을 닉과 카르밀라에게로 세분화해 부여함으로써, 닉을 통해 그러한 잔혹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반해 카르밀라는 앞서 언급했던 절대적 강자로서의 뱀파이어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카르밀라는 인간의 눈을 피해 어두운 숲에 숨어 살고 이주를 반복하는 생활양식이나, 인간을 살상하지 않고자 본능을 거스르면서 짐승 피를 취하는 억압된 식성, 혹은 영원한 삶으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함이라는 뱀파이어의 이면을 드러낸다.

 

카르밀라가 슈필스도르프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았을 때, 카르밀라는 뱀파이어라는 정체성은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님을 털어놓는다. 만약 당신이었다면 다를 것으 생각하는지 질문하며, 카르밀라는 뱀파이어로서 자기 삶은 악행으로 퇴치되어야 할 것이 아닌 하나의 존재 양태임을 설파한다. 더하여 카르밀라는 말한다. 인간은 늘 신을 앞세워 인간이 아닌 것을 배척해 오지 않았느냐고. 인간을 중심에 두고 비인간을, 혹은 주류 사회를 중심에 두고 소수자를, 주변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배척하는 중심주의의 허구성과 모순을 뱀파이어인 자신도 결코 모르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정상성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중 하나는 정상성의 규범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미학적으로 해체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뮤지컬 <카르밀라>가 남긴 여운은 길고, 예술을 창작하거나 향유하는 현대인으로서 우리 앞에 남겨진 길도 길다.

 

 

 

김채영.jpg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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