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 - 이곳에 예술은 없다

글 입력 2024.07.1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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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하고 튀어나올 듯한 큼지막한 눈동자. 사과보다 열 배는 더 큰 얼굴. 웃는 듯, 울먹이는 듯, 씰룩거리는 입술. 하비에르 카예하(Javier Calleja)의 특별전 ‘이곳에 예술은 없다’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런 얼굴을 띠곤 했다.

 

스페인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 하비에르 카예하(Javier Calleja)가 국내 첫 대형 단독 전시를 야심차게 열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냉큼 달려가보니 기존의 전시 규칙과 예상을 깬 그의 예술이 ‘이곳에 예술은 없다(No art Here)’라는 제목으로 자유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하비에르 카예하는 기막힌 우연과 기질과 타이밍을 타고난, 여기에 더해 질주하는 끈기의 자질까지 모두 갖춘 아티스트다. ‘이곳에 예술은 없다’는 충격적인 전시 제목과는 정반대로, 그는 예술의 뿌리를 타고난 환경에서 자라났다. 하비에르 카예하의 증조부는 무려 피카소의 미술 선생이었다. 예술의 피를 충분히 물려받을 수 있음에도 그는 오랫동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고, 체조 선수로 활약하며 마치 예술과는 관계없는 미래를 꾸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운명적으로 씨앗처럼 심어두었던 시각 예술에 대한 꽃이, 때를 타고 피어났다. 20대 중반에 마침내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하비에르. 작디작은 작업실에서 창작을 시작해 세계 곳곳에 전시를 올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예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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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하비에르 카예하의 작품들은 직관적이다. 그는 현학적인 현대미술에 염증을 느끼며 대중들과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방식들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관람객이 작품의 감상을 마무리하도록 설계하는 전시를 추구해왔다.

 

 

왜 내가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죠? 나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어떤 것을 찾아야 했어요. 나의 작품에는 무언가 있지만 나는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관람객이 그것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아요.

 

- 하비에르 카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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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시선을 끄는 크나큰 눈을 가진 귀여운 소년을 메인 캐릭터로 그려온 하비에르. 얼핏 보기에 그저 단순해 보이는 원형의 캐릭터들을, 관람객으로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솔직히 난감하기도 했다. 전시회에는 그 어느 곳에도 설명문이 없었다. 이런 전시는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그래서 온전히 지금 현재, 하비에르가 빚은 작품들을 받아들이는 오감에 감상의 추출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표현한 것처럼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Simple but not easy)’는 생각이 문득 솟았다.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옷을 입은 예쁜 아기 곰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 얘기하지

 

너의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

어떤 비밀이라도 말할 수 있어

까만 작은 코에 입을 맞추면

수줍어 얼굴을 붉히는 예쁜 아기 곰

 

- 동요, 예쁜 아기곰

 

 

하비에르 카예하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어릴 때 따라 불렀던 ‘예쁜 아기곰’이 떠올랐다.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를 가진 예쁜 아기 곰. 동요에서 화자는 아기 곰에게 ‘어떤 비밀이라도 말할 수 있어’라 읊는다. 하비에르의 소년들에게도 마치 나의 오래된 비밀들을 이야기해 주고 싶은 열망이 일었다.

 

그가 그린 소년들은 마치 구름 같은 사연들을 눈동자 뒤로 한가득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초록, 파랑, 노란색의 채도가 높은 눈동자들을 보고 있자니 일과 삶에 치인 충혈된 눈동자 같기도, 물을 머금은 듯한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자니 아직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도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그 무엇 하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눈에는 그 모든 양가의 감정이 녹아있나니, 하비에르가 작품을 곧이곧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될 따름이었다.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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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활짝 웃고 있지 않아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눈물을 뚝뚝 흘리지 않아도 하비에르의 작품에서는 어떠한 정서의 밀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헬리콥터처럼 부풀어 올라 마치 머리 전체가 빙글빙글 돌아갈 듯이 커져있는 헤어스타일을 보면, 방종이 아닌 크고 넓은 자유로움을 떠올릴 수 있었다. 팔을 뻗지 않고 몸에 딱 밀착해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고지식한 성질을 유추하다가도 침대와 한 몸이 된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가 아닌지 또 다른 상상에 가닿았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두상의 크기들. 쌓아놓은 두상의 탑을 보고 있자면 모든 두상들이 바라보는 방향과 시선이 다르다.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정을 이끄는 가장의 무게가 될 수도 있고, 경쟁과 압박의 사회처럼 모두가 탑을 쌓듯이 위로 올라가려는 형태로 보일 수도 있겠다. 정답도, 해설지도 없는 이 전시회에서 모두가 비슷하면서도 또 완전히 다른 감상을 할 것을 예상하니 다른 이들이 받아들인 ‘두상 탑’의 세계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회를 나오는 발걸음이 어쩐지 조금 애틋했다. 이름도 배경도 모르는 하비에르의 두상들에게 잠깐이나마 정이 생긴 것 같았는데, 그 많은 얼굴들의 비밀을 열어보지 못하고 나온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하비에르가 우리에게 건네고 싶었던 시선이 아니었을까.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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