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테러리스트가 아닌 히어로 - 리얼 뱅크시

글 입력 2024.07.2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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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정체를 숨기는 의인은 여러 창작물에서 숱하게 등장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국에는 홍길동이 그러하며, 현대에는 스파이더맨이나 베트맨 같은 초인적인 영웅들이 자리를 대신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부의 재분배나 사회 질서를 위해 움직이곤 한다.

 

그런 점에서 각종 전시나 활동으로 기득권층과 전쟁을 풍자하는 뱅크시의 행보와 닮아 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더 도발적이다.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리는 '리얼 뱅크시' 전시의 초반부에는 '진짜 뱅크시는 어디에?'라는 제목으로 뱅크시의 행방을 좇는다. 스스로 정체를 숨긴 채 전시를 열어놓곤 그 전시에서 자신의 생김새를 추정하는 글을 수록하다니. '나 잡아봐라~'도 아니고, 뱅크시를 잡고 싶은 입장이라면 기가 찰 노릇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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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뱅크시의 사고와 성격은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리얼 뱅크시' 전시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구조물인 'Disimaland'는 음울하다는 뜻의 Disimal과 디즈니랜드의 합성어를 제목으로 이뤄졌으며, 과거 실제로 지어진 디즈멀랜드를 본따 만들었다. 이는 꿈과 희망을 돈벌이 소재로 하는 상업성과 세상이나 자신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이들을 향한 저격인데, 아이들에게 동화 같은 존재인 디즈니를 상대로 직격탄을 날리는 행보인 지라 무척 과감하고 독보적이다.

 

실제로 당시 디즈멀랜드의 입장하려던 사람들의 수가 하도 많아 인원 제한까지 설정했다고 하니, 그들에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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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멀랜드에 입장하면 뱅크시가 이 공간부터는 자신의 세상임을 공표라도 한듯, 더욱 적나라하게 그의 전시가 시작된다.

 

공식인증을 받은 총 130여점의 관련 작품들로 여러 그래피티나 그림, 특히 304억원에 낙찰되자마자 분쇄기에 갈려 나간 그 유명한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작품 또한 관람이 가능하다.

 

또한, '무능한 작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작가는 훔친다'라는 파블로 피카소의 격언에 그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유쾌함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마땅한 대우나 존경심 같은 뱅크시의 사뭇 진지한 태도도 엿볼 수 있다.

 

전시 입장문에 적힌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한다'는 뱅크시의 말에서 알 수 있는 그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자 노력했음을 알 만 하다.


관람을 마무리할 때쯤 드는 생각이 있을 테다. 전시들로 막대한 돈을 번 뱅크시는 자신이 비판하는 세력과 다를 바 없지 않나?

 

하지만 이는 곧 어불성설임을 알게 된다. 전시가 마지막 장에 들어서면, 자신이 번 돈을 모조리 나눠준다는 뱅크시의 대답이 적혀 있다. 홍길동도 슈퍼히어로도 심지어 도둑인 괴도 키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좋아하고 뱅크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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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주변에는 의사와 슈퍼 히어로가 겹친 큼지막한 사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자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다른 이에게 돌리는 행동은 뱅크시가 그의 발랄한 전시들과는 다르게 매우 진중한 사람일 지 모른다는 인상을 남긴다. 가장 밝은 사람이 실은 마음 속에 가장 큰 우울이 있다는 식의 이치가 존재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스마일 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가 자신의 눈물을 숨기기 위함 일지도.

 

뱅크시의 다양하고 또 유일무이한 매력을 느끼며, 값을 주고 전시를 보는 행위로 자신이 곧 전시의 일부까지 될 수 있는 기회.

 

그라운드서울에서 10월 20일까지 당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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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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