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 그리고 혁명가 뱅크시를 - 리얼 뱅크시 [전시]

글 입력 2024.07.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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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를 처음 알게 된 건 <풍선과 소녀> 파쇄 사건 때였다. 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자신의 작품이 104만 파운드 (한화 약 16억 원)에 낙찰되는 순간, 파쇄되도록 설계해 둔 뱅크시. 영상을 보면 그 당시 상황의 충격과 당혹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뱅크시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파쇄한 것일까?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비가 오지 않는 금요일. 안국역에 내려 오레노라멘을 먹고, 그라운드 서울로 걸어갔다. 어쩌다 보니 엄마와 나를 따라, 종강한 언니 그리고 동생까지 다 함께 가게 되었기에 평소보다 좀 더 들떠있었다. 처음으로 가본 그라운드 서울은 생각보다 더 규모 있었다. 지하층을 활용하여 전시 공간을 확보했다. 전시는 총 지하 4층으로,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서는 최소 1시간 이상이 필요했다. 처음 인트로에는 뱅크시의 일생을 간단하게 정리해 두었고, 이 부분을 꼼꼼히 읽어두니 전반적인 전시의 흐름이 더 잘 보였던 것 같다.

 

뱅크시는 익명의 예술가이기 때문에, 직접 기획한 전시 CUT & RUN 말고는 공식적으로 인증한 전시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리얼 뱅크시> 전시는 페스트 컨트롤 (뱅크시의 회사로, 작품을 판매하거나 진품 여부를 판정해 주는 회사) 정식 승인 작품 29점과 영상 작품을 포함하여 130여점이 전시되어 있는 국내 최대 규모 전시이기에, 내용과 작품의 신뢰성에 있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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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을 상징하는 탱크와 그 앞에 팻말을 든 채 서 있는 한 청년. <골프 세일> 작품이다. 1989년 제프 와이드너가 천안문 사태를 기록한 사진, 탱크맨(Tank Man)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제작된 실크스크린 판화 작품이다. 학생들의 민주주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탱크 앞에 비무장으로 서 있는 청년의 사진은 비폭력주의와 민주화운동을 상징한다. 뱅크시는 이러한 사진 속 청년의 손에 "Golf Sale" 이라는 팻말을 쥐어 놓았다.

 

실제로 그는 "우리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기 전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쇼핑이나 가서 자신을 위로하는 수밖에" 라고 말한다. 그 무엇보다도, 그러니까 사실은 민주주의가 정말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뿌리 깊은 자본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청년이 든 골프 세일 팻말로 인해, 줄줄이 전진하는 탱크들은 마치 세일하는 골프 상품을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골프 세일' 팻말을 들게 했을 뿐인데, 청년과 탱크 모두 우습게 느껴지는 광경을 보며... 자본주의 시장이 행사하고 있는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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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사진을 기반으로 전쟁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네이팜> 또한 강력했다. 197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은, 당시 아홉살이었던 어린 소녀 판티 킴푹이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도망쳐 나오는 장면을 담아냈다. 뱅크시는 이 소녀의 양손에 모두가 알법한 두 개의 기업체, 월트 디즈니와 맥도널드의 손을 쥐어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소녀의 곁에는 함박웃음을 짓고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두 거인이 보인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고, 친근하게 다가오던 디즈니와 맥도널드는 사실 미국이라는 초대강국의 큰 자본이 되어준다. 그렇게 돈과 힘을 모은 미국은 국가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전쟁을 하고,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그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곧바로 느껴지는 이 불편하고 기괴한 감정. 뱅크시는 단 한 장면을 통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쟁의 폭력성을 담아내고, 자본주의를 비꼬고, 사회의 계급주의를 풍자해 낸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다. 그가 그래피티를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예술가'가 아닌 '관객'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예술계가 아닌,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전시장이 아닌 길거리로 붓을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정체 없는 예술가, 즉 무명으로 25년간 활동해 온 이유나, 초기작에 자주 보이는 '쥐'의 이미지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런 그의 역설은 길거리, 그리고 벽을 넘어 대중들의 깊은 일상에까지 가 닿는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단순히 그림으로만 전달하지 않는다. 방식은 다양하다. 디지멀랜드를 개장하고, 호텔을 세우고, 가정용품 브랜드를 오픈한다. 뱅크시는 단순히 그래피티를 그리고 다니는 익명의 예술가가 아닌, 혁명가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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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멀랜드(dismaland)는 디즈니랜드(disneyland)와 음침한(dismal)을 합쳐 만든 이름으로, 디즈니랜드가 추구하는 '꿈과 희망'과는 정반대되는 테마파크이다. 뱅크시는 2015년 8월 21일부터 9월 27일, 약 5주간 이 테마파크를 개장하고 실제로 150,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리얼 뱅크시> 전시에서는 디지멀랜드 홍보 영상과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짐작게 하는 회전목마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얘들아, 미안해. 의미 있는 일자리가 없는 것에 대해, 전 세계적인 불의에 대해... 동화는 끝났어. 세계는 기후 재앙을 향해 넋을 놓고 걸어 들어가고 있어. 어쩌면 현실도피 밖에 답이 없을지도 몰라"


Sorry kids-라고 시작되는 뱅크시의 말에는 디즈멀랜드의 기획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홍보하는 디즈니랜드에 '현실도피'라며 정면으로 돌격하는 셈이기도 하다. 가짜 신체 스캐너와, 일그러진 인어공주, 죽어버린 호박마차 말들. 이 외에도 정치적인 현안을 거침없이 건드리는 뱅크시의 테마파크는 풍자와 반문화로 가득 차 있다. 반감이 들 정도로 적나라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그의 테마파크를 보면 정말이지 아주 씁쓸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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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NN ; How Banksy’s Bethlehem hotel inspired celebrity activists to tell the Palestinian story

 

 

2017년, 뱅크시는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장벽을 마주 보고 있는 호텔을 개장했다. 호텔의 이름은 월드오프(Walled off) (뉴욕의 최고급 호텔(Waldorf)과 유사한 발음을 의도하였다고 한다)로, 벽을 허무는 호텔이라는 의미이다. 뱅크시는 이 호텔을 '세상에서 가장 전망이 좋지 않은 호텔'이라고 소개하며 분리 장벽 문제를 부각시킨다. 호텔의 창문을 열면 오션뷰나 시티뷰가 아닌 월뷰가 나타나는데, 뱅크시를 비롯한 이름 모를 다양한 예술가들의 그래피티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그림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군의 총격에 맞고 사망한 의료 종사자, 이스라엘 군인의 뺨을 때려 수감된 19세 소녀 아헤드 타미미의 초상화 등. 풍자와 저항의 아이콘들이 빼곡하다.

 

자신의 예술 작품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이 아닌, 진짜 대중들이 있는 곳으로 자꾸만 끌어오려는. 일상 속에서의 맞닥뜨림을 만들려는 시도가 인상 깊다. 이러한 시도는 더욱더 심화되어 가정집으로 침투하는 데까지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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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국 크로이던에는 직접 제작한 가정용품들을 판매하는 상점을 열었다. 상점의 쇼윈도를 통한 관람 후 온라인에서 구매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국내총생산 (GDP)은 여러분에게 실망스러운 구매 경험이 될지도 모릅니다. 특히 여러분이 성공적으로 구매했다면 말이죠" 라고 이야기하는 뱅크시의 가정용품 브랜드. GDP (Gross Domestic Product) : The Homeware Brand From Banksy. 실제 판매하고 있는 상품들, 특히 CCTV 모빌이 잔뜩 달려있는 Banksy Baby Mobile 을 보니 뱅크시의 말이 확 와닿았다.

 

웰컴 매트가 유독 인상 깊었는데,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널 때 사용되고 버려지는 구명조끼를 재활용해서 만들어졌다. 평범한 매트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버클과 스트랩이 달려있어 구명조끼로 다시 사용될 수도 있다고 한다. '환영'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이 매트는 그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난민들의 처지를 역설하고 있다.

 

["요즘 내 작품이 가져다주는 돈이 나를 좀 불편하게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죠. 징징댈 것 없이 그냥 모두 나눠주면 돼요. 내가 세상의 빈곤에 대한 예술을 만들면서 그 돈을 혼자 다 쓸 수는 없다고 봐요. 그건 내게도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죠."]

 

그 누구보다 예술 시장을 반대하는 듯하나, 사실은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곤 할 때, 뱅크시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는 뱅크시의 신념이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작품들. 뱅크시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전시 <리얼 뱅크시> 를 관람하고 나니, 단순히 뱅크시라는 아티스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문화예술 플랫폼에서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이 질문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날카롭게 느껴진다. '예술'을 떠올릴 때의 내 머릿속에는 정치적이거나 사회비판적인 내용은 비교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생각해 보니, 모든 예술은 불가피하게 그것들을 머금고 있었다는 것. 그저 미적으로 아름답거나, 혹은 충격적이거나, 이름 모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예술의 것들이. 사실은 정치와 사회와 돈과 환경이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고. 뱅크시를 보며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뱅크시의 과감한 행보는 많은 대중들에게 생각해 볼 틈을 마련해준다. 이제 나의 예술에도 다양한 키워드들이 추가될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틈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들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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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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