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원'하지 않은 사랑이라도 - 뮤지컬 ‘카르밀라’ [공연]

‘영원’은 구원의 완성일까, 저주의 시작일까?
글 입력 2024.07.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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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뮤지컬 <카르밀라>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힘은 엄청나다. 지나간 시간은 힘들었던 기억을 미화하기도 하지만,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퇴색시키기도 한다.


어떤 아름다운 것들도 영원이라는 시간을 견디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영원이라는 시간은 그것을 갖지 못한 모든 존재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정작 그것 안에 사는 이들에게는 저주일 수 있다.


뮤지컬 <카르밀라>는 이러한 영원의 저주를 자신의 손으로 끊어내고 싶었던 뱀파이어 ‘카르밀라’의 절실함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삶의 끝을 향한 카르밀라의 절실함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뮤지컬 카르밀라_메인포스터.jpg

 

 

모든 것을 끝낼 수도 있을 것 같던 폭풍우가 치던 날 밤, 카르밀라는 10년 전 카르밀라의 세계에 우연히 들어와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이 되었던 ‘로라’와 재회한다. 카르밀라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다시 카르밀라의 마음을 열어가는 로라와, 카르밀라에 대한 집착으로 로라와 카르밀라의 재회를 계획한 또 다른 뱀파이어 ‘닉’ 사이에서 카르밀라의 감정도, 이야기의 향방도 함께 요동친다.


극 속에서 카르밀라는 로라를 만난 이후 다른 뱀파이어들과 달리 인간의 피를 먹지 않게 되었다. <카르밀라>의 세계관 안에서 뱀파이어들은 비록 한때는 인간이었지만 너무 오랫동안 인간의 삶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이어 왔기에, 그들에게 인간은 단지 자신들에게 잡아먹히는 대상이나 갈증의 대상에 불과했을 수 있다. 하지만 카르밀라는 로라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인지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오히려 끝도 없이 절망적이고 무력해질 수 있는 뱀파이어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카르밀라를 뱀파이어로 만든 이후 계속 카르밀라와 함께해 온 닉은 이러한 카르밀라의 맘을 돌려놓고, 어떻게든 자신의 곁에 두고자 한다. 극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닉과 카르밀라의 관계, 그리고 닉과 카르밀라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들 사이에 흐른 150여 년이라는 시간 만큼이나 얽히고 설켜있었다.


카르밀라에게 뱀파이어로서 영원의 삶을 부여한 닉과 그 삶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카르밀라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란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극 안에서 둘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 많은 공백을 남겨 두었던 것이 오히려 그들이 보냈을 오랜 시간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닉은 ‘서로 충분했던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어쩌면 같은 세계 안에 살게 된 이후부터 서로에게 전부였던 닉과 카르밀라는, 카르밀라의 세계에 우연히 발을 디딘 로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세계를 향해 간다.

 

 

카르밀라_공연사진 (1).jpg

 

 

한 번 시작된 이후로는 절대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관계와 인연이 있다.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가 그렇고, 사실은 카르밀라와 닉의 인연도 마찬가지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을 보면서 카르밀라와 닉의 관계와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를 자꾸만 비교하고,서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계속해서 비춰보게 되었다.


로라를 위해 닉의 곁에 남기를 선택한 카르밀라의 약속과, 카르밀라에 대한 닉의 집착과 소유욕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온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원의 삶을 공유하는 유일한 존재였기에 서로에게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였을 닉과 카르밀라의 세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무엇 때문이었을까?


닉과 카르밀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은 이유가 오롯이 로라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로라의 등장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모두 닉과 카르밀라의 관계에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극이 진행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10년 전 로라와 로라의 가족을 앞에 두고 닉과 카르밀라가 했던 전혀 다른 선택은 생명에 대한 감각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같이 무한하게 느껴지는 시간을 살아가며 닉의 생명에 대한 감각은 무뎌진 것처럼 보였다. 인간의 입장에서 닉에게 느껴지는 불편함과 잔인함은 눈 앞의 생명에 어떠한 무게도 느끼지 못하는 무심함과, 그렇기에 갈증만 남은 상태로 삶을 이어 온 날 것의 욕망 그 자체에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카르밀라는 로라를 통해 눈 앞의 생명의 무게를, 본인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인지하고, 오히려 ‘채워지지 않던 갈증이 채워진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카르밀라는 로라와 다시 만났을 때 너무나 소중하고 무거운 로라의 생과 삶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과 삶을 걸기로 한다.


로라 역시 오랫동안 외로웠던 삶에 온기와 애정을 더해 준 카르밀라를 위해, 떠올리기도 힘들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극복하고자 한다. 극을 보면서 서로에게 구원이자 유일한 온기가 되어 주었던 로라와 카르밀라의 관계가 참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뮤지컬에서 보기 어려웠던 여성 서사여서 더욱 반갑기도 했다.

 

 

카르밀라_공연사진 (2).jpg

 

 

하지만 마지막 로라의 선택을 통해 이어질 카르밀라와 로라의 삶을 떠올려 보면, 어쩔 수 없이 카르밀라와 닉의 모습이 비춰져 한 편으로는 가슴 한 켠이 서늘해졌다. 뱀파이어로서 카르밀라의 삶이 그랬듯 영원을 통한 구원은 또 다른 저주의 시작이었다.


저주하듯 내뱉었던, 카르밀라와 로라의 사랑이 영원할 것 같냐는 닉의 질문들은 둘 앞에 펼쳐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더욱 실감케 한다. 시간의 탓만 할 수는 없겠지만, 카르밀라와 닉은 지난한 시간 속에 어긋나고 뒤틀리며 더 이상 서로의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그것을 견딜 수 없었던 닉과, 그러한 닉의 세계에서 더욱 벗어나고 싶었던 카르밀라는 결국 서로를 ‘끝’으로 몰아 붙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로지 ‘지금’을 생각하게 하는 사랑의 힘은 ‘서로’라는 세계를 더욱 빛나게 한다. 그리고 어떤 마음들은 형태와 의미가 달라져도 서로의 세계 안 어딘가에서 계속 반짝일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카르밀라와 로라가 나누었던 온기는, 끊임없이 서로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기에 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서로가 원하는 것을 마주보지 못했던 닉과 카르밀라의 관계와 달리, 로라와 카르밀라라면 서로의 세계에 다가갔던 온기와 용기로 계속해서 그들만의 세계를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어떤 아름답고 따뜻한 것들도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퇴색되고 식어간다고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지도 위를 거닐 수 있었던 카르밀라와 로라라면 오랜 시간 속 무뎌지고 멀어지더라도 계속해서 서로의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써나갈 수 있지 않을까, 바램 섞인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카르밀라와 로라가 그랬듯 서로의 세계에 다가가고 있는 모두가, 함께 해 나갈 시간의 무게보다는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더 무겁게 느낄 수 있기를, 서로를 생각하는 온기와 용기가 계속해서 함께 마주한 세계 앞을 밝혀주길 바라본다.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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