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이 해도 로맨스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시공사, 2024)
글 입력 2024.07.19 23:1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랑에 관해서라면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사랑은 하나여야 할 것. 부모-자식의 사랑처럼 특수한 방식의 사랑이 아닌 경우, 적어도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만큼은 이 규칙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덕목이 된다. 이 규칙을 위반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을 박탈당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약속했을 때 또 다른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새로운 사랑에 대한 저항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꽤나 빈번하게, 늘 새로운 방식으로 찾아온다. 때때로 찾아오는 낯선 사랑에 너무 쉽게 투항한 사랑은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불륜’은 패배를 선택한 사랑에 붙이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끝내 투항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승리하지도 못한 사랑에 우리는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우리는 일진일퇴하는 모호한 사랑의 답보 상태에 우선 물음표를 붙인 후, 소설 한 권을 들여다본다.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시공사, 2024)를 읽는다.

 

 

13111.png

 

 

1965년 어느 무더운 여름. 한적한 시골 도시에서 우연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와 농부의 아내 프란체스카의 만나게 된, 지극히 평범한 그 사건은 고요하지만 놀랍도록 강렬하다. 그들이 눈을 마주친 순간을 지켜본 우리의 시선에 일말의 불편함이 생겨나기 시작하지만, “의심의 먹구름을 걷고”(15쪽) 바라본다면 우리의 세계가 넓어질 만한 사건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 킨케이드는 그의 생활 패턴으로 인해 결혼 생활에 실패한 뒤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스스로를 “마지막 카우보이”(148쪽)라고 믿으며 사진을 찍고 시를 쓰면서, 언제나 “자기가 만든 세계 속에서 살고”(28쪽) 있던 그에게 프란체스카는 그의 세계에 침공해 그가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게 만드는 강렬한 존재로 다가온다.


한편 프란체스카는 시골에 거주하는 평범한 농부의 아내다. 그녀는 교사에서 농부의 아내로 전업한 뒤 매일 반복되는 삶에 공허함을 느낀다. 그녀가 조용한 일상에 불쑥 찾아온 매력적인 방문자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그녀는 낯선 이에게 “오랜 세월 동안 묵혀 두기만 하고 차마 꺼낼 수 없었던”(68쪽) 속마음마저 내뱉고야 만다. 지금은 그녀가 “꿈꾸던 생활”(같은 쪽)이 결코 아니라는 고백. 그녀에게 킨케이드는 꽉 막힌 삶을 흔드는 “일종의 마법사”(48쪽)처럼 느껴진다. 남편과 아이들이 박람회를 보기 위해 집을 떠난 그 며칠 동안 그녀는 두려운 마음으로, 그러나 용기를 내어 킨케이드와 사랑에 빠지길 선택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지는 순간은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다. 우연이 기회를 준 짧은 순간, 그들의 시선과 육체에 작용하는 것은 “남녀의 끌어당기는 힘”(50쪽)뿐이다. “무한하고도 아름”다운 그 힘이 삶의 일면을 “영원히 변하게 하는”(같은 쪽) 어떤 사태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것에는 정해진 서순이 없으므로 특별한 이유로부터 사랑이 생겨나거나, 혹은 사랑이 먼저 피어난 후에 특별해질 이유가 따라오기도 한다. 예컨대 사랑 이전에 그녀에게서 “지성과 타고난 열정,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고 마음과 정신의 섬세한 부분에도 감동받을 수 있는 능력”(64쪽)을 먼저 발견하거나, 사랑 이후에 그에게서 “방충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지 않”(70쪽)는 섬세함을 찾아낼 수도 있는 것. 사랑은 흔하고 사소한 부분들이 앞과 뒤로 모여 완전히 특별한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일이다.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는 그들 사이에서 발생한 사랑을 거스를 수 없다. “킨케이드는 그녀 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도 그의 안으로 떨어졌다”(150쪽). 그들에게 사랑은 불가역적으로 휩쓸린 추락의 사태다. 그들은 그들에게 발생한 충동과 욕망과 애정의 세계 안으로 기꺼이 몸을 던지며 황홀한 며칠의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나 사태의 발생은 막을 수 없었다고 해도, 사후의 수습은 온전히 그들의 몫으로 남는다. 그들의 대처가 그들의 사랑에 붙는 명칭을 바꾸고 말 테다. 불륜이라는 오명, 혹은 로맨스라는 칭송. 거스를 수 없는 사랑의 사태를 겪은 후 그들은 어떤 이름을 얻을 것인가.


킨케이드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기 전 프란체스카는 “로버트 킨케이드와 무슨 일을 하든, 가족과 매디슨 카운티의 생활에 얽힌 자기의 일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을”(154쪽)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규모로 밀려온 거대한 사랑의 감정은 그녀의 “모두를, 가져가 버렸다”(같은 쪽). 그녀는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의 감정 앞에서 “내 자신을 잃고”(155쪽) 괴로워한다. 사랑 앞에 솔직했던, 그러나 차마 가정을 저버릴 수 없었던 그녀의 비명은 고통스러운 동시에 행복해 보인다. 반대로 사랑에 빠진 킨케이드는 자신의 모든 삶의 방식, 단단히 구축해온 자신만의 세계마저 버릴 각오를 다진다.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여기 머물겠소. 시내라도 괜찮고, 어디라도 상관없소”(163쪽). 그의 각오에도 새어나오지 않은 비명이 섞여있을 테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르는 비명은 사랑의 신음처럼 들린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179쪽)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는 끝내 “다시는 오지 않을”(179쪽) 감정을, 서로를 위해서,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같은 쪽)로 어딘가로 떠나보낸다. 그렇게 다시 우주를 헤매게 된 그들의 사랑이 불륜에서 로맨스로 인정받는 데 걸렸던 시간이 24년이다. 기약도 없이,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그들이 해왔던 것은 “말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213쪽) 사랑이다. 남이 볼 때 로맨스지만 자신이 했으므로 불륜인 사랑. 새로운 사랑은 기존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라는 엄격한 금욕주의의 관점에서라면 결코 용서 받을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격렬했지만 끝내 고요하게 인내했던 그들의 사랑을 이해해보려 노력할 수는 있을 테다. 그 사랑에 대한 희미한 이해마저도 실패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감정 하나를 잃어야만 할 테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차승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