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분열된 퀴어 정체성으로 보는 뮤지컬 '카르밀라'

글 입력 2024.07.20 07: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0423_카르밀라_티저포스터.jpg

 

 

네버엔딩플레이와 라이브러리컴퍼니가 공동 제작한 뮤지컬 〈카르밀라〉는 보도자료에 따르면 “매혹적인 뱀파이어 소녀 카르밀라와 순수한 인간 소녀 로라의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아일랜드 작가 셰리든 르 파뉴가 1872년 출간한 고딕 소설 《카르밀라》는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레즈비언 뱀파이어 카르밀라의 욕망 묘사가 특징적이나, 뮤지컬 〈카르밀라〉에서 이러한 특징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원작 소설에 존재하지 않는 뱀파이어 ‘닉’이 ‘소설 속 카르밀라’의 일부 특성을 넘겨받았기 때문인데, 무슨 연유로 카르밀라는 둘로 분열되어야 했을까?


르 파뉴의 소설 《카르밀라》는 어머니를 여읜 소녀 로라와 아버지, 유모, 가정교사가 함께 사는 저택에 카르밀라가 묵으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카르밀라는 로라에게 자신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지만, 로라는 그의 욕망을 받아들이며 거부하기도 하며 일관적인 반응을 주지 않는다. (로라의 반응을 여성 동성애라는 주제를 우회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하기도 한다) 카르밀라가 로라의 저택에 머물게 되는 기간에 갑자기 마을에서 여자들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간다. 로라도 이와 비슷한 증상으로 몸이 아프던 중, 아버지의 친구인 슈필스도로프 장군의 조카딸 베르타가 밀라르카라는 소녀를 집에 들인 이후 로라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으며, 베르타를 흡혈하는 밀라르카를 잡으려다 실패했고 결국 베르타는 죽었다고 이야기한다. 슈필스도로프 장군이 저택에서 카르밀라와 마주치자, 카르밀라가 밀라르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결국 슈필스도로프 장군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르 파뉴의 ‘소설 속 카르밀라’는 소녀들을 속이고 집에 침입하여 그들은 유혹하며 흡혈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 햇빛을 보지 못하거나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뱀파이어인 ‘카르밀라’가 인간 중심 사회에서 배척되는 이유는 흡혈(섭취)을 통한 살인이다. 그러나 뮤지컬 〈카르밀라〉 속 카르밀라가 가진 뱀파이어의 정체성, 즉 ‘퀴어(괴상한)’ 정체성은 모두 닉에게 부여된다. 퀴어한 정체성과 분열된 ‘뮤지컬 속 카르밀라’는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충족할 수 없는 욕구를 참으며 동물의 피를 흡혈하며, ‘순수한 소녀’ 로라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닉의 흡혈로 인해 강제로 뱀파이어가 된 카르밀라는 가부장제에서 남성의 재산으로 교환 가치가 있는 선물(先物) 자산에서 흡혈을 위한 날카로운 송곳니라는 남근을 부여받으며, 가모장제에서 남성기의 표상을 가진 재생산의 주체가 된다. 여성에 대한 소유권 대신 완력과 흡혈 능력으로의 물리적인 우위를 얻는다.

 

 닉과 카르밀라는 모녀 계보를 형성하는데, 닉은 ‘소설 속 카르밀라’가 로라에게 구애하듯이, 뮤지컬 속 카르밀라에게 광적으로 집착한다. 어린 로라의 아버지를 죽인 닉이 로라까지 살해하려고 하자, 카르밀라는 로라를 살려주면 닉에게 종속할 것을 약속한다. (카르밀라와 어린 로라의 관계는 극에서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로라라는 ‘순수’를 약점으로 잡은 닉은 언제나 카르밀라가 ‘순수한(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자신의 딸’이길 바란다. 어머니로서 닉의 집착과 구속은 카르밀라의 주체 형성을 방해하며 동시에, 어머니라는 비체(abject)가 되어 카르밀라로부터 바깥으로 추방당하며 반목하는 서사의 근거로 작용한다. ‘소설 속의 카르밀라’는 무리 없이 뮤지컬 속의 닉과 카르밀라로 분열한다.

 

닉은 살인에 망설임이 없으며 로라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카르밀라를 기쁘게 하고자 한다. 이러한 욕망은 카르밀라에게 더럽고 추악한 것, 옳지 않은 것, 그러므로 멀어져야 하는 것으로 기능하며 카르밀라가 형성하고자 하는 자아의 경계선이 된다. 그렇게 카르밀라는 닉이라는 경계선에서 멀어지고자, 인간의 피를 흡혈하지 않고 로라를 뱀파이어로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조정.jpg

(캐스트 보드는 주연이 왼쪽에 나오는 것이 관례이나, 뮤지컬 〈카르밀라〉의 캐스트 보드는 닉이 주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닉이 새로운 등장인물 이상, 즉 카르밀라 자아의 일부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로라가 19살이 되었을 때, 마차 사고를 이유로 그의 집에 머물게 된 닉과 카르밀라는 ‘자신을 아빠처럼 챙겨주는’ 친구인 사제 슈필스도로프(이후 슈필)를 만난다. 소설 속에서 로라 아버지의 친구인 슈필스도로프 장군이 뮤지컬 속 로라의 친구로 등장하나, 마초 이미지가 강조되는 ‘장군’에서 무욕과 절제의 ‘사제’로 직업을 변경하며 로라의 ‘순수성’은 유지된다. 로라는 카르밀라에게 ‘엄마 같아/언니 같아’라는 대사를 반복한다. 카르밀라는 흡혈의 욕구를 참으며 결핍된 모성의 위치에 자리하며, 동물의 피를 흡혈하며 성애적 욕구를 대신한다.

 

더 이상 닉을 막기 어려워진 카르밀라는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슈필에게 고백하며 로라가 위험하다는 사실과 뱀파이어는 은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린다. 슈필은 동물의 피를 마시며 인간을 해치지 않는 뱀파이어가 당신이냐고 묻는데 이는 카르밀라가 앞으로 ‘퀴어(괴상한)’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가, 퀴어 정체성을 버린 채 정상성에 편입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죽은 아버지를 대리하여 로라를 ‘소유’한 슈필의 ‘떠보기 질문’에 정답(‘인간을 해치지 않는다’)을 말한 카르밀라는 슈필과 함께 닉을 없앨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순수한 소녀’를 제외한 채, 카르밀라는 가부장제의 대리자 슈필과 뱀파이어라는 퀴어함을 버리는 조건으로 선물 계약을 맺는다.


슈필이 은으로 만든 칼(흔한 남근의 상징물이다)을 닉에게 겨누자, 닉은 로라를 위협한다. 카르밀라가 말리려고 하지만 닉은 카르밀라와 로라의 목을 한 손으로 쥐어 잡는 괴력을 보인다. 슈필은 그때 닉이 아닌 카르밀라를 향해 남근의 상징을 겨눈다. 닉은 자신을 향해서 칼을 겨눌 때보다, 카르밀라를 향해 칼이 겨누어질 때 큰 동요를 보인다. 그렇게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뱀파이어로 카르밀라를 탐했던 레즈비언/어머니로서의 닉은 카르밀라를 지키기 위해 뛰어들며 슈필에게 살해당한다. 닉에게 아버지를 잃은 로라나 애증을 가진 카르밀라가 닉을 처단하지 않은 일은, 마치 가부장제의 남성 권력이 남성의 허락 없이 카르밀라를 탐했던 레즈비언이자 뱀파이어 닉을 단죄하는 모습으로도 비친다.

 

닉에게 종속된 카르밀라는 닉과 생사를 함께하게 되는데 이때 그토록 애지중지 유지되던 로라의 ‘순수함(인간)의 피’가 카르밀라를 되살린다. 비체로서의 닉이 사라지자, 닉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던 욕망을 구심점으로 하던 카르밀라가 구성하고자 한 자아의 경계가 해체된다. 로라를 뱀파이어로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지만, 투쟁 지점이 사라지자 (선물 계약이 이행된 슈필의 축복 아래) 카르밀라는 로라를 흡혈하며 마지막으로 로라를 향한 여성애적 욕망을 표출한다. 동시에 로라가 뱀파이어로 변하며, 카르밀라는 피로 이어진 어머니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비체가 되어 타자로 분리된 퀴어 정체성은 가부장 권력 대리자의 남근 표상을 도구 삼아 추방(살해)되고, 대리자의 허락하에 로라를 취해 떠나는 카르밀라는 이제 무엇이 되는가? 뱀파이어라는 ‘퀴어’한 정체성을 지워야만 되살아날 수 있는 카르밀라는, 앞으로 어떻게 ‘퀴어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야 할까? 정상성 편입을 위한 분투하는 대가로 퀴어는 생명을 걸었다. 그냥 그대로, 퀴어한 채로. 분열되지 않고 카르밀라가 카르밀라일 수는 없을까. 뱀파이어인 채로 레즈비언일 수는 없었을까.

 

뱀파이어도 레즈비언도 아니어진 ‘맹탕의 카르밀라’의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읽어낼 수는 없다. 흡혈을 통해 로라와 모녀 계보를 형성하며 성애적 욕망의 삭제를 요구받는 카르밀라와 영원히 옆에 남겠다는 자아 형성 이전의 영유아기 욕망을 드러낸 로라의 관계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그저 그런 미지근한 실제 퀴어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 삶은 모성과 성애와 식욕과 가학성으로의 흡혈,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만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단어로 설명된다.

 

이렇게 극에서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해피엔딩’은 사랑과 우정의 이성애 중심적 이분법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언제나 로라는 ‘순수한 소녀’라는 의존적인 정체성만을 유지한 채 성장하지 않기를, 어머니로서의 카르밀라를 벗어나지 못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평생 함께 불행하기를 기원하며 동시에 마지막 슈필의 대사처럼 그들을 축복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참고문헌

1. 노엘 맥아피,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앨피, 2022.

2. 손영희, 〈르 파누의 『카밀라』에서 레즈비언 뱀파이어와 어머니의 귀환〉, 《19세기 영어권 문학》 제25권 1호, 2021, p.65-94.



컬쳐리스트_양자연.jpg



[양자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