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원히 흐르지 않을 시간 속에서 - 뮤지컬 '카르밀라' [공연]

글 입력 2024.07.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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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뮤지컬 <카르밀라>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카르밀라_메인포스터.jpg

 

 

뮤지컬 <카르밀라>는 2024년 창작 초연 작품으로, 지난 6월 11일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첫 막을 올렸다. 카르밀라, 닉, 로라, 슈필스도르프라는 네 명의 인물이 오스트리아의 슐로스에서 벌어지는 ‘흡혈귀 살인사건’을 맞닥뜨리며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의 후폭풍에 말려들게 되는 것이 극의 전체적인 줄거리라고 볼 수 있겠다.


‘창작 초연’ 공연은 언제나 내게 기대를 심어준다. 한 번도 무대 위에 올라온 적 없는 극을 감상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객석에 앉아 시작을 기다리는 내내 두근거리게 만든다. (물론 그만큼 아직 정돈되지 않은 부분이 많으면 어쩔까 하는 마음에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이 있다면 재연 때 얼마나 다듬어져 올지 기대하면 된다.) 뮤지컬 <카르밀라> 역시 창작 초연이기에 이런저런 기대감을 가진 채 관람하고 왔다.

 

 


매력적인 빌런


 

카르밀라_공연사진 (1).jpg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몇몇 작품에서는 주인공보다 악역이 더 눈에 띌 때가 있다. 분명 나쁜 사람인데 자꾸만 보고 싶고 궁금하다거나, 그 인물이 이해된다거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매력적인 빌런에게 빠져든 거라고 볼 수 있겠다.


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닉’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특히 내가 관람했던 날, 송영미 배우가 연기한 닉은 정말 대단했고, 매력적인 빌런 그 자체였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 나는 어느새 닉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카르밀라의 여동생이라며 로라에게 자신을 소개하던 닉은 카르밀라와 단둘만 있을 때 갑자기 돌변해 카르밀라를 향한 광기 어린 집착을 드러낸다. 동시에 흡혈귀의 잔혹함을 보여주며 그녀가 어떤 과정으로 인해 흡혈귀가 되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어느 정도의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어 인간의 피 대신 짐승의 피로 욕구를 채우는 카르밀라와 다르게 닉은 망설임 없이 인간의 피를 원한다. 닉도 누군가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것일지, 아니면 그녀의 탄생 자체가 남달랐던 것일지 더 알고 싶었다.


극의 후반부에 나오는 넘버 "Requiem"에서는 카르밀라를 향한 닉의 처절한 절규가 드러난다.


 

오직 너만 바라보면서 지금껏 살아온 나는?

지금 그 감정이 얼마나 갈 것 같아?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아?

 

널 위해 모든 걸 난 줬어

나만큼 널 사랑할 순 없어

 

- M16. Requiem 중

 

 

카르밀라를 향한 닉의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넘버였다. 물론 그 방식이 집착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것이 큰 문제였지만, 그 광기에서 나오는 팽팽한 긴장감이 카르밀라와 닉의 관계성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춰버린 시간이 주는 고통


 

카르밀라_공연사진 (3).jpg

 

 

카르밀라의 첫 등장 이후, 내가 그녀를 보고 가장 처음 했던 생각은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침울하게 만들었을까?’라는 것이었다. 사실 카르밀라를 뱀파이어로 만든 인물은 닉이었고, 그 이후 카르밀라는 자꾸만 피를 탐해야 하는 삶과 함께 영원히 계속될 닉의 집착으로 인해 지쳐버린 것이었다. 자꾸만 바닥을 향하는 시선과 공허해 보이는 눈동자는 ‘지금 그녀의 삶이 껍데기만 남아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로라는 그런 카르밀라와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주일 뒤 슐로스를 떠나 새로운 날들을 시작할 것이라 말하며 짐을 챙기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로 사랑스럽다. 그런 로라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속사정은 있었다. ‘흡혈귀’로 인해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아버지를 잃은 것.


두 인물 모두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지만, 로라는 카르밀라와 달리 과거의 상처를 이겨내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둘에게 있어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닉에게 삶을 빼앗겨 버린 이후로 카르밀라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로라의 시간이 아버지를 잃은 그날에 멈춰 있었다면, 내가 본 로라의 밝은 모습은 아마 없었을 것이라 본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오래도록 살기를 원했다. 한술 더 떠 아예 불멸의 생을 원한 사람들도 있었다. 카르밀라는 ‘영생’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끝을 알 수 없는 생은 영원한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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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로라가 마지막에 내린 선택은 카르밀라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었다. ‘히아신스꽃’을 걸고 카르밀라의 영원한 편이 되겠다 맹세하던 로라는 결국 ‘붉은 피’를 걸고 카르밀라와의 끝없는 생을 맹세하게 되었다. 손을 맞잡고 함께 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그들을 나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떠올리며 말이다.


슈필스도르프와 닉이 함께 흡혈귀에 대해 추적할 때 닉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인간의 피를 탐하는 건 짐승의 피로는 충족될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것이라고. 그간 카르밀라가 짐승의 피를 탐해온 것은 순전히 카르밀라의 자제력에 의한 것이었다. 과연 로라가 카르밀라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인간의 피에 대한 끝없는 갈구, 그리고 그런 자신들을 향한 두려움 어린 시선들을 피해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까지. 그들의 앞에 펼쳐질 험난한 현실을 그들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사랑의 힘이 닿는 곳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그래서 나는 로라의 마지막 선택이 이해가 잘 안되었다. 과연 그 모든 후폭풍을 감수하겠다는 명확한 의지가 있는 선택이었던 건지, 아니면 찰나의 사랑에 눈이 멀어 뒷일은 생각지 않고 벌인 일인지. 자신의 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한 존재가 ‘흡혈귀’임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로라가, 카르밀라로 인해 흡혈귀가 되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비약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

 

창작 초연 공연에 대해 내가 걱정하는 지점은 이런 것이었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부실함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뮤지컬 <카르밀라>는 끝날 때까지 몰입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집에 와서도 찾아 듣게 만드는 넘버가 그 부분을 채워주어서 만족스럽게 볼 수 있었다.


재연 때 더욱 탄탄한 스토리로 돌아올 뮤지컬 <카르밀라>를 기대해 본다.

 

 

 

김지현.jpg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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