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해리의 헤드위그와 나의 손목시계

나는 언제쯤 다시 손목시계를 차고 다닐 수 있을까?
글 입력 2024.07.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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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의 헤드위그


 

해리의, 그러니까 해리포터의 헤드위그가 뭔지 설명을 해야 할까? 이 글을 누른 사람이라면 어차피 알지 않을까. 하지만 혹시 모를 경우, 예를 들어 뮤지컬 <헤드윅>을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이라거나 해리포터의 ‘해그리드’와 ‘헤드위그’를 헷갈린 사람 등이 존재할 경우를 대비해 헤드위그를 대충 소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헤드위그는 <해리포터>의 주인공 해리가(<해리포터>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감히 확신한다) 마법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11살 생일 선물로 받은 흰올빼미다. 시리즈의 처음부터 등장하여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뽐내는 헤드위그는 시리즈 7권에서 전투 도중 죽음을 맞이한다. 해리의 반려동물이자 연락책, 가장 결정적으로는 그의 소중한 친구였던 헤드위그와의 이별은 해리의 유년기에 끝이 찾아왔음을 상징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얼마 전 숨을 거둬버린 내 손목시계는 내 학생기(…)의 끝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은 진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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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목시계


 

같은 손목시계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껏 차고 다녔다. 그해 생일 선물로 손목시계가 갖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려 선물로 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골랐고 어른의 경제력이란 게 어떤 건지 감을 잡지 못하는 열다섯 살이었기 때문에 (내 기억에 따르면) 3만  원 정도 하는 시계를 사달라고 하면서 비쌀까 봐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부모님께 3만 원짜리 생일 선물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여하튼 가격과는 별개로, 그리고 엄마가 너무 남자아이의 것 같다며 못마땅해한 것과는 별개로, 내 손목시계는 지금까지도 내 눈에 가장 예쁜 시계다.


내가 예뻐한 덕인지, 시계 약은 보통 2년 내외로 갈아줘야 한다는데 이 손목시계는 어쩐지 약이 잘 닳지 않았다. 정말 7년 동안 한 번도 건전지를 바꾼 적이 없다. 내가 물건을 너무 아껴 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엄마가 그걸 보고 하다 하다 이제는 시계도 아껴 쓰냐고,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며 농담한 적도 있다.


나도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열다섯 겨울부터 쓴 시계는 스물두 살 겨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멈추었다.


시계가 처음 멈춘 시기는 내가 교환학생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워낙 오래 쓴 시계이기도 하고, 해외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새 시계를 살 생각으로 좀 알아보았는데, 아무리 새로운 디자인을 찾아봐도 지금 내 시계가 제일 예쁜 것 같았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몇 개는 지금 내 시계의 아류작 같은 느낌이라 이럴 바에는 그냥 지금 시계의 약을 바꿔 또 끼고 다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그렇게 했다. 그냥 편의점에서 시계 약을 사서 나 혼자 얼렁뚱땅 갈아 끼웠다. 그렇게 내가 물건을 너무 아껴 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엄마의 편견을 한 번 더 견고하게 다져버리고 나는 독일로 날아간다. 그 반년의 교환학생 기간에도 시계는 잘 버텨주었다. 유럽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내내 시계를 차고 다녔더니 내 팔은 시계 자리만 빼고 타버렸고, 얼굴뿐만 아니라 손과 팔에도 선크림을 잘 발라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주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반년은 더 잘 썼다. 그래서 이번에도 오래 쓰게 될 줄 알았다. 열다섯부터 스물둘까지 쓴 것처럼, 이번에는 스물둘부터 스물아홉까지 쓰겠거니. 그런데 올해 4월쯤, 이 시계는 다시금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학생기의 끝


 

전문가의 손길 없이 내가 홀라당 장기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틈에 고장 나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자주 하는데 그때 물이 들어가서 고장 나버린 걸지도 모른다. 아마 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생계를 꾸리기 위한 과정에서 이 애가 명을 다했다는 점 때문에 더 의미심장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의 손에 헤드위그를 잃은 해리처럼, 나도 생업을 하느라 학생기의 순수를 잃어버린 것이라 과대 해석, 아니 의미 부여해 본다.


헤드위그가 떠난 뒤 해리가 다른 올빼미를 새로 데려왔는지에 관해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마법 세계에서는 올빼미가 정말 전서구로 쓰이는 만큼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데려오기야 했겠지만, 작중에서 헤드위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아마 해리에게 헤드위그만큼 그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아무리 고개만 돌리면 시계가 벽에 걸려 있고 핸드폰 화면에서 바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으며 너도나도 스마트워치를 차는 세상이라지만, 내게는 손목시계가 필요하다. 난 아직도 왼쪽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는 게 가장 편하다. 그러므로 나 역시 손목시계를 다시 살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부터 함께 다닌 그 시계만큼 정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시절보다는 핸드폰 등의 다른 시계에 더 익숙해지기도 했고, 아무래도 그때만큼 한 시계를 오래 차지도 않을 게 뻔하다.


시계를 위한 애도 기간을 가질 겸, 그리고 학생기의 끝맺음을 확실히 할 겸, 새 손목시계를 사는 것은 조금 미룰 생각이다. 그렇다고 지금 손목시계의 약을 다시 바꿀 생각도 없다. 그냥 빈 손목으로 다니다가, 직접 번 돈으로 다시 새 시계를 사는 것이 목표. 그렇다면 나는 언제쯤 다시 손목시계를 차고 다닐 수 있을까? 아직은 전혀 가늠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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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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