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황의 연속, 다섯수 [영화]

글 입력 2024.07.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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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9로 끝나는 나이, 그러니까 이를테면 9, 19, 29, 39 등을 십진법으로 구획된 나이의 마지막 관문이라 하여 이 시기에 불운이 오기 쉽다고 믿었고, 아직도 그러한 통념이 잔재해 있다.

 

과연 그러한가. 두 번의 아홉수를 경험한 내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그 두 해는 내게 불안보다는 기대나 설렘을 더 안겼던 시기였다. 아홉 살 무렵엔 “드디어 내 나이도 두 자릿수가 된다니”라는 생각에, 열아홉 살 무렵엔 “내가 드디어 성인이 된다니”라는 생각에 말이다.


외려 내게 많은 불운을 안겼던 시기는 막바지인 아홉수가 아닌, 이도 저도 아니게 애매하게 끼인 ‘다섯수’였다. 열다섯, 그러니까 중2 즈음에는 격동의 사춘기를 한참 통과하고 있었다. 지금은 스펙트럼이 더 넓어진 것 같지만, 당시에 “중2”는 그 텍스트만으로도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오죽하면 ‘북한도 무서워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겠는가.

 

당시를 복기해 보면, 그리고 근래에 주변에서 청소년들을 마주할 때면 미성숙한 사고와 면모들이 보이지만, 당시엔 내가 마치 다 큰 것처럼 굴었던 것이 부끄러운 사실이다. 마냥 아이도, 마냥 어른도 아닌 그 과도기 때 나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반에서는 또래들 무리에 적당히 잘 섞이기 위해 늘 분투해야 했다. 반 대항 축구 대회에 출전할 때면 골을 잘 넣어 반 아이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던 남자아이, 팔다리가 늘씬하고 패션 센스가 뛰어나 뭇 여자아이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사던 여자아이, 영재학급 출신으로, 시험만 끝나면 답을 비교하기 위해 모인 아이들이 책상을 에워쌌던 아이 등.

 

안타깝게도 당시에 나는 운동을 잘하지도, 팔다리가 늘씬하지도, 공부에 뛰어난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뭐든 보통 정도에 그치는 평균의 중2였다. 가시적인 무언가로 나를 증명해 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한 생각들은 점차 몸집을 불렸고 불안과 걱정이 나를 지배했다.

 

그러한 과거가 있는 내게 <인사이드 아웃2>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인사이드아웃 2.jpeg

 

 

근 10년 만에 돌아온 후속편에서는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심경을 반영해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과 같은 기존 캐릭터들에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 캐릭터가 추가됐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는 ‘기쁨’과 ‘슬픔’을 주된 캐릭터로 내세워 ‘슬픔’ 역시 인생의 일부임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면, 금번 시리즈에서는 컨트롤 본부를 지배하게 된 ‘불안이’와 그를 저지하려는 기존 캐릭터들 간 갈등이 주된 골자다.


영화에서 라일리는 선망하는 하키 팀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한참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불안이는 라일리의 목표를 이뤄주고자 센터를 장악해 라일리에게 계속해서 불안을 주입한다. 초반에는 불안이의 자극이 경기에서 라일리에게 좋은 성과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 내기 위한 과정 가운데 라일리는 점차 진정한 자신과 유리되어가고 불안과 걱정은 점차 심화된다. 급기야 라일리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과호흡을 겪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때 기존 감정 캐릭터들이 불안이를 진정시키고 라일리의 자아를 다시 이식하면서 라일리도, 컨트롤 본부도 안정을 되찾게 된다. 결국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교훈은 결코 어렵지 않다. 지나친 불안은 병만 키운다는 것. 자아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 어찌 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익숙히 들어온 주제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그리고 적용하기 어려운 주제가 또 있을까.

 

당장 열다섯의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스물다섯의 나 자신만 보더라도 말이다. 애매하더라도, 평범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고 스스로를 감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지만 나를 포함해 모든 ‘라일리’들이 어떤 모양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에 집중하며 이 과도기를 잘 견뎌내길 바란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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