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자보다 현자가 어려워 - 퍼펙트데이즈 [영화]

히라야마 아저씨의 성인(聖人) 도전기
글 입력 2024.07.21 18: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이 글은 영화 [퍼펙트데이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카이트리 아래, 도쿄 한복판의 한 허름한 주택에 중년의 남성인 히라야마가 홀로 살고 있다. 그는 매일 새벽, 청소부의 빗자루 질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 집을 나선다. 그는 청소 도구가 보관된 차를 몰고 도쿄 타워가 훤히 보이는 시부야로 향한다. 그의 직업은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 시민들의 냉대, 동료 청소부인 타카시가 걸어오는 실없는 말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할 뿐이다.

 

일을 마치고 퇴근한 그는 목욕탕에서 일터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단골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점에 들러 문고본을 사와 이부자리에서 읽고 졸음이 밀려오면 스탠드를 끄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의 하루 일과. 영화는 단조로운 그의 일상을 본연 그대로 -가감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며-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심심한 일상 사이에서 히라야마의 아기자기한 면모를 보여준다. 우는 아이를 달래주고, 우거진 수풀 사이로 드는 광선을 필름 카메라에 담으며, 나무 밑동 사이에 피어난 새싹을 조심스레 옮겨 담아 집으로 데려오는 그만의 행복 추구법. 그것을 소개하는 것이 영화 [퍼펙트데이즈]의 주요 플롯이자, 히라야마의 매일이다.

 

common (3).jpg

카세트 테이프도 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퍼펙트데이즈]를 보기 전, 단조로운 일상 속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남성이 주인공이라는 것만 인지한 채 영화관을 찾았다. 원체 일본영화를 좋아하기도 했고 ‘작은 일에 감사하라.’라는 행복에 관한 명언 중 으뜸을 달리는 명제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기에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보았다.

 

예상대로 훌륭한 영화였다. 고요하고 절제된 연출과 플롯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내가 예고편을 본 뒤, 추측했던 것 보다 훨씬 고차원적이고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느껴졌다.


[퍼펙트데이즈]의 예고편에서는 주어진 일상에 만족하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대도심에서 안빈낙도를 누리는 청소부의 이야기를 예고했지만 본편의 흐름은 이러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행복의 문턱으로 들어서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 잔잔한 영화의 분위기와 상충되는 강렬한 투쟁이 주인공 히라야마의 마음속에서 요란을 피우고 있던 것이었다.

 

 

common (6).jpg

 

 

히라야마는 비범하다. 앞서 설명했듯 그는 알람도 없이 청소부의 빗자루가 내는 미세한 소리를 듣고 깨어나 새벽 댓바람부터 하루를 준비한다. 잠에 취해 뒤척이거나 알람을 껐다 키기를 반복하는 나의 아침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이불을 정리하고, 분무기로 화분에 물을 뿌려 생기를 돋게 하며, 밤새 자란 수염을 정갈하게 한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새벽 법회를 준비하는 스님처럼 일사분란하다.


게다가 히라야마가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장인의 면모까지 느낄 수 있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깔끔하게 정비된 각종 청소, 수리도구를 허리춤에 둘러맨다. 청소일 따위 대충 해도 된다는 타카시의 핀잔을 귓등으로 넘기며 조각상을 닦는 것처럼 소중하고 섬세하게 좌변기나 소변기를 닦는다. 심지어 히라야마는 더욱 깔끔하게 청소하기 위해 직접 만든 청소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타카시의 대사에서 밝혀지기도 한다.


그리고 퇴근해서 한다는 게 목욕하기, 새싹 옮겨와 화분에 심기, 책 사기, 사온 거 읽기. 이 정도이다. 그의 하루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니 ‘햇빛 러버’ 디오게네스를 비롯한 각종 철학자와 성인들. 그리고 [나는 자연인이다]의 출연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처럼 욕심 없이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사소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히라야마.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도심의 성인인 것일까.

 


common (5).jpg


 

그의 잔잔한 일상은 본지 오래된 조카, 니코의 등장으로 사소한 변화를 맞이한다. 엄마와 다툰 뒤 가출한 키노는 히라야마의 집에 찾아와 잠시 눌러앉게 된다. 그리고 니코는 자신을 두고 몰래 출근하려는 히라야마를 붙잡아 함께 일터로 향하게 되기에, 이 지점부터 그의 일상에 타인이자 가족인 니코가 함께하게 된다.

 

그러나 히라야마가 조카와 함께 하루를 보낸다고 해서 그의 일상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처럼 자주 찾는 신사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일을 마친 뒤 목욕탕에 가 목욕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그의 일상은 여전히 충만하고 잔잔하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고는 동행이 생긴 것뿐인 그의 일상. 그리고 그 짧았던 동행과의 이별. 그 과정에서 조카를 데리러 온 여동생과의 재회.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과 다시 접촉하는, 비일상의 순간에서 히라야마는 남들과 같은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그렇게 다시 피어난 욕심이라는 감정은 그가 자주 찾는 선술집의 주인이 전 남편과 재회하는 순간을 엿보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녀를 흠모했던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히라야마는 그 광경을 목겨하고 혼란을 겪는다. 그는 일본 아저씨의 필수품인 담배와 캔 맥주에 기대어 기저에 꽁꽁 억눌러왔던 자신의 인간다움을 다시 꺼내보게 된다.

 

 

commo0n.png

 

 

영화에서는 히라야마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명확히 제시되지는 않는다. 그가 꿈을 꿀 때 스치는 기억의 편린을 흐릿하게 묘사하거나 원어민의 영어를 알아듣는 히라야마의 행동, 여동생의 대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게 그의 과거를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렇기에 왜, 어떤 연유로 그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을 추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남들과 같은 삶에서 고통을 느껴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성인의 삶을 추구했다는 것은 정황 상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뱁새가 황새를 따라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기 십상이다. 언제나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던 히라야마는 갑자기 일을 그만둔 타카시 탓에 과도한 업무량에 치이자 대체 인력을 보내지 않은 청소 업체에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일상을 침범한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자신이 한낱 인간이었음을 깨달은 성‘인’히라야마는 평소처럼 출근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그러나 표정이 어딘가 오묘하다. 그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지은 채 밝아오는 햇살을 맞으며 일터로 향하고 감독은 그의 표정을 오랫동안 보여주며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사실, 엔딩 장면을 보며 그의 표정을 읽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멍청하게 스크린을 바라보며 ‘이렇게 해야 칸 남우주연상을 받는구나.’ 라는 하릴없는 생각을 하며 크레딧이 최대한 늦게 올라오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감히 그의 삶을 유추할 수 없었다. 히라야마에 비해 나는 월등히 작은 존재였으니까.

 

 

common (4).jpg

 

 

조금 억지를 부리더라도 [퍼펙트데이즈]를 다룬 다른 글과는 차별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본 오피니언을 썼다. 그럼에도, 진부하더라도 영화의 명대사로 이 글을 갈무리 지으려 한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자전거를 타며 이 대사를 돌림노래처럼 읊는 니코와 히라야마. 영화는 관객을 다음 돌림노래의 순번으로 지정한다. 영화 초반부의 히라야마처럼, 온갖 욕심을 내려놓은 성인처럼 살기는 힘들지만 그들의 삶을 체험시키기 위해 돌림노래로 관객에게 최면을 거는 것 아닐까. 이 기회에 한 번 생각해보자. 왜 우리는 다음은 다음일 뿐이고. 지금은 지금일 뿐인, 당연한 명제를 거스르며 살고 있는지.

 

 

 

김한솔.jpg

 

 

[김한솔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