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안의 감정을 찾아서 [도서]

글 입력 2024.07.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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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 생뚱맞게 그림책의 매력에 빠졌다. 책이라면 질색하는 초등학생들로 가득한 아동센터에서 근로하며 도리어 내가 그림책 애호가가 돼버린 것이다.

 

독서가 싫다며 몸을 비틀어대는 아이들 옆에 붙어 제대로 읽고 있나 곁눈질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그림책을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얇고 딱딱한 책의 형태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그림책을 읽기에 나는 너무도 어른인 것 같았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이 지나 다시 펼쳐 든 그림책은 내게 예상 밖의 뜨거운 울림을 선사했다.

 

 

 

누구에게나 불안은 존재하기에


 

친구와의 우정, 부모님의 사랑 등 그림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비교적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미자 작가의 <불안>은 그림책에 대한 나의 얄팍한 편견을 단번에 깨트렸다.

 

이 책은 ‘불안’이라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예고 없이 찾아오고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이 감정에 소년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결국 끈을 잡아당겨 마음 깊숙이 숨어 있던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 행복, 기쁨과 함께 불안도 내 안의 감정"

 


이 책은 불안이라는 어두운 감정을 다채로운 빛깔의 깃털을 지닌 ‘새’로 표현했다. 또한 책의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 전체적으로 화려한 색감의 일러스트 역시 눈길을 끈다.

 

조미자 작가는 불안을 무채색으로 낙인찍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색으로 그려냄으로써 불안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하나의 ‘감정’으로 인정한다. 사랑. 행복, 불안, 그 외에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감정까지.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에 흑과 백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의 끈’을 풀기까지


 

책에서 새는 소년을 계속 따라다닌다. 이는 불안이 특별한 상황에만 발현되는 것이 아닌, 항상 우리 곁을 맴도는 감정임을 보여준다. 또한 새는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년이 긴장하는 상황에서는 새의 크기가 커지고, 여유롭게 수영할 때는 새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불안과 소년의 관계가 매우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어, 읽을 때마다 매번 책 곳곳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발견하게 된다.


 

“너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쩌면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책에는 ‘불안의 끈’이 등장한다. 책 앞부분에서 소년은 새를 만나기 위해 그의 발목에 묶인 끈을 잡아당긴다. 불안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소년은 새의 한쪽 다리에 묶인 끈을 푼다. 이제 그에게 불안은 회피하고 싶은 불청객에서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로 변화한 것이다.


불안은 오롯이 홀로 마주해야 하는 감정이다. 그래서인지 <불안>에는 소년의 부모님이나 친구 등 주변 인물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소년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직접 불안의 끈을 푼다.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거쳐 결국 불안에게 ‘괜찮니?’라고 말을 건네는 소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책은 결말을 맞이한다.


<불안>은 달콤하지만은 않은, 때로는 씁쓸하기도 한 감정을 조명한다. 불안을 소재로 풀어나가는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이야기는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을 것이다. 나는 왜 어른이 되어 갑자기 그림책에 빠졌는가. 그 해답은 그림책이 그려내는 보편적인 ‘감정’에 있었다.

 

<불안>은 그저 어른이라는 이유로 꽁꽁 감싸두었던 내면의 수많은 감정을 일깨운다. 몇 장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펼쳐 든 순간 마음속 깊숙이 파묻힌 감정의 좌표를 안내할 것이다.

 

 

[양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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