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나 - 리얼 뱅크시 [전시]

발칙해서 더욱 궁금한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
글 입력 2024.07.22 08: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Girl with Balloon(2004-2005).jpg

 

 

아마 뱅크시라는 작가는 몰라도 뱅크시의 그림은 한 번쯤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뉴스에서 뱅크시의 작품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운 경매장에서 낙찰과 동시에 액자 속 그림이 갈리는 장면은 몇 년이 지나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작가 스스로 그림을 파괴하다니. 대체 왜? 특이하니 예술가인 건가 싶었다.


최근 '리얼 뱅크시' 전시회가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렸다. 전에 뱅크시는 얼굴 없는 예술가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전시회가 가능한 건가 했더니 뱅크시가 설립한 회사(어쩐지 작품 중 뱅크시의 예술 활동을 실시간으로 기록한 영상들도 있었다)에서 인증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이번에 열린 리얼 뱅크시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

 

예술계의 반항아로 불리는 뱅크시를 가까이 이해하고자 전시회를 방문했다.

 

 

IMG_8944.jpg

 

 

전시는 여러 층에 걸쳐 펼쳐졌는데, 뱅크시의 영원한 작품 주제 자본주의(보이지 않는 계급사회)가 떠오르는 구성이기도 했다. 뱅크시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에 대한 개괄적 소개를 시작으로 그의 작품들과 관련 영상들이 이어졌다. 벽에 그리는 그라피티 특성상 원작을 직접 확인할 수 없어 감동이 덜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실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나 만든 후 모습이 담긴 영상들이 곳곳에 있어 흥미로웠다.


그전까지는 뉴스에서 접했던 풍선과 소녀라는 작품밖에 알지 못했었는데. 사랑은 공중에(꽃을 던지는 사람), 날고 있는 군인 등 다른 대표작들도 확인하니 뱅크시의 신념이 보였다. 해맑게 뛰고 있는 아이들 옷 위로는 방탄조끼가 입혀져 있고, 웃고 있는 군인은 가지고 있는 총에 비해 턱없이 작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정반대의 개념을 붙여 자본주의의 폐해 혹은 전쟁의 폭력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예술가였다.

 

 

IMG_8960.jpg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Dismaland다. 뱅크시는 동심의 상징이면서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디즈니랜드와 심슨가족을 변형시켜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꿈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디즈니랜드와 대조적으로 사람이 안 산 지 100년이 지나 폐가 같은 고성이 N층 높이의 벽을 가득 채우도록 그려져 있어 위압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한쪽에 벽에는 뱅크시의 말이 적혀 있었다. "얘들아, 미안해. 의미 있는 일자리가 없는 것에 대해, 전 세계적인 불의에 대해.. 동화는 끝났어. 세계는 기후 재앙을 향해 넋을 놓고 걸어 들어가고 있어. 어쩌면 현실 도피밖에 답이 없을지도 몰라. - 뱅크시, 2015, 디즈멀랜드"

 

 

Flying Copper(2003).jpg

 

 

뱅크시 작품이 늘어날수록 점점 마음이 가라앉았다. 전시회를 보며 영화 '기생충'을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기분이 좋아지지 않은 건 내 잘못일까. 혹은 뱅크시의 잘못일까. 아니다. 뱅크시의 작품은 우리가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전쟁의 잔혹함, 자본주의의 차가움. 모두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바꿀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저 사실로서, 문자로서만 인식하고 크게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뱅크시가 내가 곁눈질하며 외면하고 있는 상황을 바로 코앞으로 갖다 놔 마주하게 했다.


전시회를 보고 혼란스러워하는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걸 예상한 걸까. 3&4파트는 뱅크시의 당부가 적혀 있었다. '진짜 뱅크시, 진짜 나' 섹션 3의 설명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뱅크시는 사회의 지도층의 권위와 과도한 통제를 저항하고 우리에게 성찰을 요청한다..(중략).. 그의 태도는 관조적이고 수동적인 대중의 역할을 저항하라고 말한다. 관객의 권위를 회복하고 예술뿐만 아니라 삶의 풍경 전반으로 그의 예술이 유용하길 자처한다."


인터넷에서 망작과 명작 차이를 적은 댓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망작의 특징은 예술가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메세지를 주입하려고 하나, 명작은 관객이 먼저 메세지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뱅크시의 작품은 명작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는 1차원적으로 그림이 예쁘다, 특이하다 생각되지만, 작품을 자세히 뜯어볼수록 그 속에 숨긴 의미가 나오고 의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Love is in the air (Flower Thrower)(2003).jpg

 

 

전시 막바지에는 우스갯소리로 지인에게 "뱅크시는 자본주의가 어지간히 싫은가 보다. 어쩜 좋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겠는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보통 역사 영화에서 바른말 하는 충신이 가장 빨리 죽임을 당하지 않는가.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내는 뱅크시를 향해 너는 뭐가 그리 잘났냐고 비꼬는 눈초리가 그려졌다.


내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위인의 면모를 지닌 뱅크시는 섹션 4(행동하라 지금보다 나아지도록)에서 행동으로 나의 우려를 종식했다. "요즘 내 작품이 가져다주는 돈이 나를 좀 불편하게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죠. 징징댈 것 없이 그냥 모두 나눠주면 돼요. 내가 세상의 빈곤에 대한 예술을 만들어서 그 돈을 혼자 다 쓸 수는 없다고 봐요. 그건 내게도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죠. -뱅크시, 뉴요커와의 인터뷰 중" 실제로 그는 2020년 '게임 체인저'라는 작품을 통해 1,680만 파운드를 벌어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한화로 300억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 밖에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작품의 주제가 되는 단체에 기부했었다. 자신의 신념에 책임을 지는 인물이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리얼 뱅크시라는 전시회 이름처럼, 전시회를 다 보고 나니 단순히 그의 대표작을 더 많이 알게 된 것을 넘어 뱅크시라는 인물에 대한 해상도가 높아졌다. 뱅크시의 진짜 정체가 백인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대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하는 인물이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전쟁 중인 지역에 방문해 그라피티를 그리는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의 당부처럼 내가 현재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 어쩌면 타인의 욕망에 그대로 순응한 결과이지 않나, 경계하며 진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찰하는 사람이 돼야겠다.

 

 

[이도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