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기, 뱅크시가 있다 - 리얼 뱅크시展

REAL BANKSY: BANKSY IS NOWHERE
글 입력 2024.07.22 11: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_기본.jpg

 

 

익명의 예술가 뱅크시의 국내 전시 ‘리얼 뱅크시’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뱅크시의 정체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알 수 있다. 뱅크시를 모르는데 ‘REAL'이란 말을 붙일 수 있나 잠시 생각했는데 뱅크시가 설립한 회사 페스트 컨트롤에서 정식 승인한 작품만 전시했다고 하니 납득했다. 적어도 갤러리에 걸린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거짓이 아니라 사실일 테니까.


직접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 행동에 감화되어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있다. 뱅크시가 열심히 전자의 역할을 하면 후자인 나는 열심히 깨닫는다. 알려야 하는 사실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풍자를 담아서 보여주면 나는 놀라고 감탄하며 새롭게 배운다. 이번 전시에서도 많이 배우고 왔다.

 

 

 

상황적 아이러니: 디즈멀랜드


 

우선 이 전시에서 상황적 아이러니를 느낀 디즈멀랜드부터 이야기해 본다.

 

 

20240713_133231.jpg

 

 

[디즈멀랜드: 뱅크시는 2015년 8월 21일부터 9월 27일까지 임시로 설치한 디즈멀랜드를 영국 서머셋 주의 해변 도시에서 개장한다. 뱅크시는 이를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가족 테마파크”로 설명한다. 디즈멀랜드가 해체될 때, 뱅크시는 이 자재를 이용하여 프랑스 칼레에 있는 난민을 위한 거처를 건설하는데 활용했다.]


Dismaland라는 이름을 보고 자연스럽게 디즈니랜드를 떠올린다. ‘디즈 Dis’로 시작해서 ‘랜드 Land’로 끝나는 것, 당연히 디즈니랜드다. 뱅크시 전시는 영어를 잘 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검색해 봤더니 Dismal에는 음울한, 음침한, 기분 나쁜, 형편없는 등의 의미가 있었다.

 

꿈과 희망의 놀이공원 Amusement park가 아니라 멀뚱한 공원 Bemusement park이 있었다.



20240713_125236.jpg

 

 

동선을 따라 이동하니 소지품 검사를 흉내 낸 공간이 나왔다. 디즈멀랜드로 입장하기 위한 구역이다. 검색대에는 무기가 올라와 있다. 옆에 걸린 사진 속 직원들의 얼굴에는 권태와 지루함이 묻어있다. 아이들은 신났지만 어른들은 웃을 수 없는 디즈멀랜드 영상이 끝나고 디즈멀랜드처럼 꾸민 공간이 나타난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했다. 여기 그야말로 포토스팟이었다. 조명이 설치된 성 그림, 무채색 풍선, 그리고 낡아빠진 회전목마. 이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음울하게 꾸며진 공간에서 주말에 전시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은 재미를 느꼈다.

 


20240713_125543.jpg

 

 

[“얘들아, 미안해. 의미 있는 일자리가 없는 것에 대해, 전 세계적인 불의에 대해... 동화는 끝났어. 세계는 기후 재앙을 향해 넋을 놓고 걸어 들어가고 있어. 어쩌면 현실 도피 밖에 답이 없을 지도 몰라.”] - 뱅크시, 2015, 디즈멀랜드


 


뱅크시 시학의 아이콘이자 핵심, 쥐


 

20240713_130824.jpg

 

 

‘쥐새끼 같은’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남들 몰래 나쁜 짓을 하고 얍삽하게 빠져나가는 모습, 사람들이 밤중에 은밀하게 그라피티를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던졌을 법한 말이다.

 


20240713_130842.jpg

 

 

[쥐는 뱅크시의 초기작에서 아주 자주 쓰이는 모티프다.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그는 런던과 뉴욕과 리버풀의 거리에 아주 작은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수많은 쥐를 그렸다. 뱅크시 시학의 아이콘이자 핵심이면서 거리 미술 자체의 상징이기도 한 쥐는 소위 “성공을 위한 경주”라 불리는 것 속에서 불의와 부당함을 마주하는 세계 곳곳 수백만의 사람들 또한 상징한다. (중략) 아포칼립스에도 살아 남을 유일한 동물 쥐. 그의 예술적 자유와 이어져있는, 자유의 훌륭한 상징이다.]

 


20240713_130803.jpg

 

 

그 쥐새끼가 뱅크시를 만나면 다른 의미가 된다. 무력하지만 어디에나 있는 존재, 내쫓고 싶지만 박멸할 수 없는 존재. 가만 생각해 보니 약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권위를 가진 누군가가 꼴 보기 싫어해서 그 아래 있는 사람이 없애려고 애를 쓰지만 사라지기는커녕 별안간 어디서 튀어나온다. 아니꼬워도 방법이 없다.


[“그들은 허가 없이 존재한다. 미움을 받고 쫓기고 잡히고 학대당한다. 그들은 더럽고 불결하고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산다. 그렇지만 마음만 먹으면 완전한 문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당신이 지저분하거나 존중받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의 결정적인 역할 모델은 바로 쥐다.”]


뱅크시의 쥐를 다시 보며 생각한다. 나는 저 쥐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었나.

 

 

 

브랜달리즘, 틀려먹은 소비자 철학과 포식적 기업주의 기계



20240713_132705.jpg

페스티벌(자본주의의 붕괴), 2004-2005

 

 

야외 축제처럼 보이는 상황 중에 기념 티셔츠를 구매하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을 면면이 살펴보면 반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만 같은 펑크, 고스, 히피. Destroy Capitalism 이란 문구를 사기 위해 착실하게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순응자들. 누구도 티셔츠의 메시지를 실천하지 않는다.


비합리적 구매자로서 쓸모없는 소비를 잘하고 있는 입장에서 공감과 반성을 했다. 십수 년 전에는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 자본주의적 문화가 그른 것 같아 아나키즘을 마음에 품었는데 이제는 누구보다도 소비 지향적인 사람이 되었으며 한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비를 조장하는 소비 요정의 역할도 담당했다. ‘그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구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지성적인 소비 생활을 이어갔다.

 

여전히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필요하지 않더라도 고민하다가 산다. 늘 사고 싶은 걸 찾아다닌다. 반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만 같은 밴드의 공연에 가서 굿즈를 사서 돌아온다. 의도는 사라지고 먹고살기 위한 판매자와 소비할 수 있음에 즐거움을 느끼는 구매자만 존재한다.

 

 

20240713_132024.jpg

세일 오늘 마감, 2006


 

[뱅크시의 작품 중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미지지만 그가 공식 웹사이트에서 작품을 판매했을 때 한정물량이 소진되면 본 이미지를 걸어 공지하곤 했다. 이 작품은 16~17세기에 제작된 성서의 장면을 전용하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절망하는 모습을 간결한 스텐실 드로잉으로 처리했지만 그리스도의 자리에는 판매 마감을 알리는 빨간색 포스터가 대체되어 있다. 뱅크시는 자본주의가 생산한 소비문화의 지배가 집단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고 있으며 신앙과 종교, 자본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전시된 작품 수가 적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풍성한 정보를 전달하고 작품 정보를 놓치지 않게 캡션에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그 정성 덕분에 좋은 관람을 하고, 관람하는 동안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영어나 영어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까지 배려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번 전시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영어와 익숙하지 않은 서양(미국과 서양)의 문화이다. 시작부터 등장하는 Walled off 호텔에서 Waldorf의 패러디를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HMV는 한국인에게 친숙하지 않은 레코드샵이다. 뱅크시의 책 ‘Wall and Piece’를 몇 번 언급하는데 그의 그림이 존재하는 Wall를 말하는 동시에 War and Peace를 연상케하는 것 기분 탓일까? 하는 추측만 했다.

 

많은 영상 자료가 있지만 번역이 없어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영상에서는 메인 메시지가 아닌 그 뒤에 따라붙은 괄호 안의 말이 진짜인데 영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건 메시지가 아니게 된다. ‘어디에나 발전 가능성이 있다’ ‘폭격 이후로 시멘트를 반입할 수 없다.’ 두 메시지가 연달아 등장하면 본론은 당연히 후자다. 하지만 번역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영상을 파악해서 봐야 한다.


곧 초중고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보다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공간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