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연장의 지각쟁이들에 관하여 [공연]

지연 관객 입장의 이모저모
글 입력 2024.07.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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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몇 달 전에 예매해 놓은 공연을 보는 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일찍 도착한 당신은 프로그램북을 사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일행과 함께 간식을 먹으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누다가 객석에 미리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조명은 어두워지며, 시끌벅적했던 객석이 잠잠해지면서 공연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객석 끝에서 희미한 불빛과 함께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며 들어오자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공연에 막 몰입하고 있던 당신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무대 위에 집중하려 해도 이미 흐트러진 집중력을 곧바로 되찾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어떤 몰상식한 관객은 몸을 낮추지 않아 뒷사람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말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공연 애호가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와 같이 공연 중간에 입장하는 관객들 때문에 관람에 방해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각하지 않고 정시에 도착한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지각 관객들이 영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아무리 조심스레 입장한다고 해도, 시청각적으로 주의가 산만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공연 관람 중 지연 관객으로 인해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연 관객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필자 스스로 그 ‘지연 관객’이 되어 주변 관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실제로 공연에 지각했던 경험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공연장 ‘프로 지각러’, 그들은 대체 왜 늦는 것일까?


 

필자는 올해 초부터 독일에 거주하며 수많은 공연을 관람하였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면서도 각 도시마다 꼭 한 편 이상의 공연을 관람하려 하고 있다. 보통 30분에서 한 시간 전에 공연장에 도착하려 하지만, 해외에서는 아무래도 길이 익숙지 않고 대중교통 시스템에 서툰 탓에 한국에 있을 때보다 공연장에 늦는 일이 훨씬 많았다.

 

처음으로 공연에 늦은 것은 지난 3월 부다페스트 여행에서였다. 뮈파 부다페스트(Müpa Budapest)의 공연 < Les deux Stabats >였는데, 비가 많이 와 길이 막혔고 공연장 바로 근처에서 길을 헤매 5분 늦게 도착했다. 지연 입장이 불가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1부는 포기하고 2부에 들어갈 생각으로 화장실까지 여유 있게 다녀왔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1부 중간에도 입장이 가능하다는 직원의 말을 듣게 되었다. 필자는 가장 꼭대기 층의 미판매석으로 안내받았고, 그 자리에서 공연장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비록 연주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1부를 완전히 놓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기쁨과 이제껏 공연장에서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공간에 들어왔다는 신기함에 다른 모든 아쉬움이 지워진 공연이었다.

 

 

240328-Müpa-Budapest_Les-deux-Stabats.jpg

뮈파 부다페스트의 꼭대기 좌석 시야.

자막 스크린 및 오르간의 파이프와 같은 눈높이에서 공연을 관람해 특별한 경험이었다.

©최민서 에디터


 

4월 도이치 오퍼 베를린(Deutsche Oper Berlin, 이하 도이치 오퍼)의 < The Magic Flute > 공연날에는 공연 시간보다 40분 일찍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베를린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갑자기 중간 정차역이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다른 역에서 내려 세 번이나 환승해 갈 수밖에 없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헐레벌떡 뛰어가 2분 늦게 객석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아직 공연이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극적이게도 필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서곡이 시작되었으며, 왼쪽에 앉은 할아버지가 “운이 좋았네! (Glück gehabt!)”라는 말을 건넸다.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5월에는 슈타츠 오퍼 베를린(Staatsoper Unter den Linden, 이하 슈타츠 오퍼)의 < Sustainable Listening #5 > 공연에 늦었다.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잘못이었는데, 전날 밤을 새운 나머지 공연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잠이 들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버린 것이었다. 곧바로 다시 돌아갔지만 공연 시작 후 거의 한 시간이나 지난 시점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전체 소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공연이었기에 과연 지금도 입장이 가능할지 의문이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 다행히도 여전히 입장이 가능했고, 빠르게 물품 보관소에 가방을 맡긴 후 안내원을 따라갔다. 그러나 공연 진행 상황상 타이밍이 여의치 않았는지 문 앞에서 매우 오랜 시간 기다린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고, 필자가 입장했을 때는 마지막 한 곡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공연 전체를 놓친 것은 처음이었으며 기획과 무대 세트가 독특한 공연이었기에 더더욱 아쉬운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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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츠 오퍼의 아폴로홀(Apollosaal)에서 공연된 < Sustainable Listening #5 >.

무대 구성과 기획이 흥미로웠으나 공연이 끝날 때쯤 도착해 아쉬웠다.

©최민서 에디터

 

 

불과 일주일 후에 슈타츠 오퍼에서 베를린 슈타츠발레단(Staatsballett Berlin)이 선보인 < 2 Chapters Love > 공연에는 기차 문제로 인해  늦어버렸다. 이날은 학교 수업이 늦게 끝나서 곧장 출발했는데도 공연장에 빠듯하게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4월의 도이치 오퍼 공연날처럼 중간 정차역이 취소된 것이었다. 결국 공연장에 15분 정도 늦게 도착했으며, 작품 전체가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무용 공연의 특성상 지연 관객 입장이 제한되었다. 어쩔 수 없이 1부는 물품보관소 옆에 마련된 공간에서 작은 화면을 통해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미션 후 2부는 제자리에 앉아서 볼 수 있었지만, 2부가 너무나 좋았던 만큼 1부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매우 크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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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슈타츠발레단의 < 2 Chapters Love > 1막 커튼콜 모습.

지연 관객 입장이 불가해 공연장 밖 모니터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최민서 에디터

 

 

얼마 전 7월 초에는 슈타츠 오퍼에서 역시나 베를린 슈타츠발레단이 선보인 < Giselle >에 20분가량 늦었다. 다행히 본래 예매한 자리와 가까운 줄의 가장 끝 빈 좌석으로 안내를 받았다. 공연은 매진이었으나 당일에 오지 않은 관객이 있어 생긴 빈자리를 미리 확인해 두고 안내해 준 듯했다.


우습게도 바로 다음 날 도이치 오퍼에서 베를린 슈타츠발레단이 선보인 < Messa da Requiem >에도 지각을 면하지 못했다. 전날 잠을 거의 자지 않아 멍했던 탓인지, 공연 정보를 분명 확인했음에도 도이치 오퍼가 아닌 슈타츠 오퍼에서의 공연이라 생각하고 슈타츠 오퍼로 향했던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은 슈타츠 오퍼 앞에 도착해 외부에 걸린 현수막 - 슈타츠 오퍼는 매일 그날의 공연 제목을 현수막으로 내건다 - 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스스로 책망하며 곧바로 도이치 오퍼로 이동했더니 공연에 10분 정도 늦었다. 자리를 안내해 준 직원에 의하면, 그날 포츠담에서 오는 관객 십여 명 역시 기차 연착으로 늦게 도착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필자는 3층의 빈자리로 안내받았는데, 함께 공연을 보기로 한 친구들과 옆 자리에 앉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뜻밖에도 시야가 매우 좋아서 기쁜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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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츠 오퍼의 전경.

중앙의 현수막에 그 날 무대에 오르는 공연의 제목이 적혀 있다.

©최민서 에디터

 

 

 

지연 관객 입장, 모두가 행복한 공연이 되기 위해


 

공연장 지각 일대기(?)를 적어놓고 보니 정말 다양한 이유로 지각을 했구나 싶다. (오해는 말아 달라. 전체 공연 관람 횟수가 많아 지각 사례도 많을 뿐, 필자도 대부분의 공연에는 여유 있게 도착한다.) 개중에는 개인적인 불찰로 인한 지각도, 기차 취소와 같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한 지각도 있었다. 

 

‘지각’이란 상황과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안 좋지만, 공연 애호가들이라면 공연에 지각하는 것이 다른 상황의 지각보다도 특히나 가슴 아픈 일이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물론 공연에 지각한다고 개인의 사회적 평판에 누가 된다거나 누군가의 신뢰를 잃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각했을 때 상대가 기다려 주면 되는 상황들과 달리 공연은 나 없이도 정시에 시작되고,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만 행해지기에, 놓친 시간의 공연을 영영 볼 수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한편 공연에 늦은 관객은 본인의 책임이기에 이러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지만, 그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 문제다. 지각 관객은 일종의 ‘관크’ - ‘관객’+‘크리티컬(critical)’의 합성어로, 공연장에서 관람 예절을 지키지 않아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 로 여겨지며 정시에 도착한 관객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제 돈을 주고 티켓을 구매한 관객들에게는 공연 중 방해를 받지 않고 관람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뿐 아니라 공연장과 제작진, 안내원 입장에서도 지연 관객을 관리하는 것은 골칫거리다. 다른 관객과 무대 위 출연진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고 지연 관객을 입장시키기 위해 사전에 제작진과 하우스 매니저가 적절한 입장 시간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안내원들은 공연 당일에 지각하는 관객의 인원과 객석 위치에 따라 재빠르게 안내를 도와야 하는 부담이 있다. 간혹 연출가나 아티스트의 요구로 인해 지연 입장 자체가 불가한 경우, 혹은 관객이 정해진 입장 시간을 벗어나 도착하여 추가적인 입장을 허가할 수 없는 경우,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고 안내원들에게 위협적으로 항의하는 관객을 상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물론 모든 관객이 지각하지 않고 제때 도착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지각하게 된 관객은 공연 중간에 입장 시 다른 관객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기본 예의를 지켜야 하며, 중간 입장이 불가하더라도 이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또 공연에 늦은 상황에 속상해 하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늦게나마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거나 다음에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것이 좋겠다.

 

한편 일반 관객의 경우 지연 관객 입장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역지사지로 자신들도 언젠가 어쩔 수 없이 그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너른 이해심을 발휘해 보는 건 어떨까. 여가를 즐기러 온 공연장에서 관객이 안고 가는 키워드가 '관크'나 '불쾌함'이 되기보다는 '행복'과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관객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갖추기를 바란다.

 

 

[최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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