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저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 [드라마/예능]

퀴어 콘텐츠가 그냥 흔한 이야기 중 하나가 된 세상
글 입력 2024.07.2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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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새 시리즈를 맞은 ’남의 연애3‘나 ’모든 패밀리‘와 같은 프로그램을 런칭한 국내 OTT 플랫폼 웨이브(Wavve)가 화제다. 바로 요근래 게이 간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인 ‘남의 연애3‘, 그리고 레즈비언 모모(母母)인 규진•세연과 게이 커플인 백팩•킴의 일상 모습을 담은 ‘모든 패밀리’가 짧은 기간을 두고 웨이브에서 공개됐기 때문이다. 특히 2024년 웨이브의 대표작 중 하나였던 ‘남의 연애3‘의 경우 높은 콘텐츠 순위를 자랑하며 웨이브의 신규 회원 유입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 출연진 중심의 퀴어 관련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성하는 OTT 플랫폼은 웨이브가 거의 유일무이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웨이브는 ‘남의 연애’ 이전에도 ‘메리 퀴어’라는 연애 프로그램을 런칭하기도 했다. ‘메리 퀴어’는 ‘남의 연애‘와는 달리 ’데이팅‘에 목적을 두지 않고 이미 교재 중인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이 프로그램 또한 퀴어 콘텐츠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시청자들에게 좋은 소식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시청자들로 하여금 웨이브가 퀴어 친화적인 OTT 플랫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웨이브의 행보는 여느 국내 OTT 플랫폼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웨이브가 퀴어 콘텐츠에 강세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미 공급이 차고 넘치는 데이팅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퀴어’ 소재를 공략한 데이팅 프로그램은 우리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래전부터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받아온 데이팅 프로그램은 대부분이 보편화된 가족 구성원과 그에 맞는 성별별 역할을 굳건히 다지고 있다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연애를 하지 못한 출연자에게 ‘~한 점이 그의 단점이다‘, ‘~한 특징은 그가 상대 출연진에게 선택받지 못하게 만드는 아쉬운 요인이다’ 등 그를 평가하는 듯한 시청자의 의견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러한 시청자의 평가는 다른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정의 내린 ‘평범한’ 연인 혹은 가족의 조건에 스스로가 부합할 수 있도록 애쓴다.

 

더 문제인 것은 출연자에 대한 평가가 시청자뿐만 아니라 방송 자체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데이팅 프로그램에서는 사회에서 규격화된 전형적인 이성 연인 관계를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화려한 명품 옷을 걸친 채 소위 ‘인플루언서’라 불리우는 이들이 이성과 매칭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MC 패널은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모든 옷차림, 말투, 행동 등에 반응하고 평가를 내린다. 이같은 이성 간의 데이팅 프로그램이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시기에는 출연진의 성격이나 말투를 분석하는 콘텐츠 또는 ‘~한 행동이 이성을 유혹한다’ 등 출연진의 행동만 편집해서 보여주는 릴스가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 자체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으로부터 파생되는 2차 콘텐츠는 은연중에 우리에게 사회적으로 강요된 성 기준을 따르도록 제시하고 있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성소수자는 선택지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남의 연애3’는 '뜨거운 여름, 다시 시작된 남자들의 로맨스! '남'다른 그들의 세 번째 연애 리얼리티'라는 슬로건을 통해 적극적으로 퀴어 데이팅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곳곳에 노출시켰다. 남의 연애 첫 방영 당시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로부터 규탄시위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또한 ‘남의 연애‘ 출연진의 경우 일반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들과는 달리 커밍아웃의 부담까지 함께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감안해야 할 부분이 많다. 출연진들을 향한 악플도 상당하다.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직접 선택하여 즐길 수 있는 OTT 플랫폼 특성상 웨이브 공식 페이지에는 퀴어 콘텐츠를 비난하는 반응이 그나마 적은 편이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이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외부 공간에서 언급됐을 때 그곳에서는 여전히 무수히 많은 비난 댓글이 쌓이는 중이다.


이처럼 여러 변수가 존재함에도 해당 프로그램이 시즌3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조건적인 비난을 덮을 수 있을 만큼의 두터운 마니아층 생성, 성소수자의 연애 서사를 담은 프로그램의 필요성 절감 때문이지 않았을까. 같은 맥락에서 ‘모든 패밀리’ 또한 '남의 연애'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이성애 중심적 가족 관습으로부터 탈피를 시도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한 일부 시청자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이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배울 수 있게끔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중이다.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라로부터 제공받아야 마땅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릴 수 없는 문제점은 해당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이를 기점으로 여러 곳에서 성소수자 권리 보장에 관한 목소리가 커지는 중이다.


미디어 플랫폼에서 퀴어 가족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양성을 포용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지닌 여러 가족 형태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퀴어 소재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층은 소수로 한정되어 있다. 즉 대부분의 대중에게 퀴어 콘텐츠는 선택지에 있을 확률조차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는 퀴어 콘텐츠의 수가 실제로 적다는 이유도 존재하나 퀴어가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 함부로 판단하는 이들의 (약간의) 거만함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퀴어 콘텐츠의 많은 공급도 중요하나 무엇보다 이같은 퀴어 콘텐츠를 많고 많은 콘텐츠 중 일부로 받아들일 콘텐츠 소비자의 마음가짐도 어느 정도 요구될 것이다. 퀴어 콘텐츠가 성소수자의 모습을 어느 방식으로 담아내느냐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대중들이 퀴어 콘텐츠를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본인의 알고리즘에 종종 뜨는 ‘그냥 흔한’ 콘텐츠가 되기를 바란다. 퀴어 콘텐츠가 방영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기사가 나오고, 자신의 의견만 강압적으로 내세우거나 이유 없이 비난하는 댓글이 수천 개 달리고, 출연자가 방송에 얼굴이 공개되었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국내 OTT 플랫폼에서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게 퀴어 콘텐츠가 되었으면 한다. 사회에 퀴어 콘텐츠가 만연해져서 그것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플랫폼 안에 녹아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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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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