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낭만의 도시 대전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한 도시를 노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오만함
글 입력 2024.07.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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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가기로 했다. 순전히 충동이 일으킨 일이다.


당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친구 두 명에게 우리는 대전 여행을 갈 것이다 통보하고, 그들의 의견을 구했다. 당장 가자. 날짜를 정하고 열차를 예매하는 것까지 일사천리였다.


나는 신나 있었다. 국내 여행도 오랜만인 데다가 이렇게 목적 없는 여행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전 '핫플' 성심당도 내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여행하기. 그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흘러가는 대로 걷다 보니 발길에 차이는 것이 낭만이고 운이었다.


점심은 어죽을 먹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칼칼하고 매운 것이 당기기에 선택한 메뉴.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어죽과 칼국수를 섞어 먹을 수 있다고 하기에 그렇게 해달라 했다. 개인적으로 칼국수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 편인데 몸은 원래 그것을 원했다는 것처럼 기쁘게 칼국수를 받아들였다.


미꾸라지 튀김도 도전해 봤다. 어탕의 베이스가 미꾸라지이긴 하다만 그걸 통으로 튀긴 것은 다소 겁이 나는 선택지였다. 다행히 머리(?)는 빼고 튀긴 모양이었다. 담백한 생선 튀김의 맛이 얼큰한 어죽칼국수와 아주 죽이 잘 맞았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메뉴지만 맛도 좋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행운 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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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라떼를 파는 카페가 있었다. 요새 행운이 좀 바닥난 것 같으니 가 볼까. 3명분의 행운도 남아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웃고 떠드느라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깔깔 웃으면서 걸어갔다.


골목 한 가운데 위치한 카페는 초록색 식물들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하나 남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에 적힌 행운 라떼. 화이트 초콜릿 폼에 식용 네잎클로버를 얹어주는 곳이었다. 인당 한 개의 네잎클로버를 별도로 구매할 수 있고 내가 산 행운은 영수증으로 찍혀 나온다. 행운, 단돈 6000원. 6000원에 행운을 살 수 있지만 무한정 구매할 순 없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행운 둘.


조금 걷고 싶은 마음에 빙수를 파는 카페를 하나 정해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 정해진 길을 중심으로 돌아가 보기도 하고 내키는 골목에 들어가 보기도 하면서 아주 천천히 걸었다. 3명이서 한마디씩 하며 걸으니 30분 거리도 금방이었다. 길을 따라 듬성듬성 위치한 카페들을 구경하다가 골목 중간에서 능소화를 발견했다. 행운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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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하는 소리와 자연스럽게 길을 꺾는 6개의 발. 번갈아 가며 여름의 상징과 사진을 찍었다. J가 꽃에 너무 다가가는 바람에 코에 묻은 꽃가루까지 완벽하게 기가 막혔다.


가려던 카페는 바로 옆 골목에 있었다. 30분 넘게 뙤약볕과 습한 공기 속에서 걷느라 발갛게 익기 시작한 몸을 한 번에 식혀주는 에어컨과 신라호텔 망고빙수 뺨치는 맛에 가격은 10분의 1 수준으로 겸손한 망고빙수. 행운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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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떠들다 대전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 온 츄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조금 경계하나 싶더니 냉큼 다가와 내 손에 얼굴이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츄르를 먹기 시작하던 고양이와 시간을 보냈다. 행운 다섯.


여행 막바지에 맞이한 행운은 꽤나 묵직했다. 대전역에 다 와서는 독립서점 '다다르다'에 들어갔다. 다다르다에 들어가자 온화한 표정의 책방지기가 우리를 맞았다. 가운데에는 '여름'을 주제로 한 책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직접 다 읽어보고 배치했다는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서가에 놓여있는 책들을 기웃거리자 책방지기는 몇 가지 설명을 더했다.


"다음 큐레이션은 '파리'예요."

"파리 올림픽 기념인가요?"

"아니요, 저는 올림픽에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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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무언가에 반대한다는 말을 해본 적은 많이 없다. 소모적인 논쟁을 싫어하는 데서 발생한 일종의 회피다. 이 나이가 되도록 틀린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수없이 이야기했어도 무시하고 살았을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선제적인 피로함.

 

계속 떠올려 봤지만 아무래도 내 '반대'는 학생 때 그친 것 같다. 토론 동아리에서 했던 "저는 OO님의 의견에 반대합니다."라는 멘트 외엔 기억나는 것이 없다. 올림픽을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답은 다음 방문에 듣고 싶었다. 고민하다 고른 책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회원가입 하시겠어요?"

"네."


뒤에 있던 J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 느껴진다.


"네, 수빈님 반갑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다시 방문하더라도 내가 그 질문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 않더라도 돌아올 이유를 만들어두는 것은 항상 어떤 종류의 기대감을 만드니까, 그것대로 또 다른 활력을 만들지 않을까. 중얼거리며 한 입 베어문 소금 크루아상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무래도 재방문 목적에 하나가 추가될 것 같다.


행운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에 나는 늘 동의한다. 대전에 가자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함께 나선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여행 내내 봤던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느낄 수 있는 여유가 내게 있었던 것. 이것부터나 행운과 행복의 시작이었던 것을, 나는 이번에 다시 깨닫고 간다.


p.s

대전에 간다고 했더니 별로 친하지도 않은 지인 하나가 대전 노잼인데 왜 가? 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인상이 팍 구겨졌다. 그 말이 유행할 때부터 누구의 기준으로 한 도시를 '노잼'의 상징으로 만드는 건지 궁금했다.


지독히도 서울 중심적인 사고임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서울 안에 만들어진 많은 인프라와 문화공간들은 그곳이 '서울이라서' 만들어진 것임에 무지하고, 본인이 서울에 태어난 것은 단지 운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어떤 도시를 일컬어 '노잼'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재미를 따지지 말고 도시가 가지는 매력들을 찾아주면 어떨까. 낭만이라든가, 행운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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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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